●일시 및 장소: 2000년 10월 13일, 교수신문사 회의실
●참석자: 김상곤(한신대·경영학, 민교협 교수노조연구팀장) / 김영규(인하대·행정학, 인하대 교협회장) / 윤병선(전교조 정책실장) / 김재환(편집차장, 사회)
김상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는 대학과 교육정책에 상당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그동안 교수들이 단체등의 여러 활동을 통해 대학·교육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시정요구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학교육 자체를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가 지식인으로서, 학문의 재생산자로서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고민했다. 하나는 현재처럼 임의조직으로서의 단체를 통해 활동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법적 지위와 협상력을 가진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수차례 논의 끝에 임의조직을 통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노조건설이 검토되었다. 민교협내부에서는 교수노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교수의 계급적 지위에 대한 시각
김영규: 일반인이 보기에 교수의 지위는 높은 것 같지만, 실제적인 경제적 지위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대학이 기업화되고, 재단의 저비용·고효율 정책으로 교수의 경제적 지위는 하락하고 있다. 솔직히 교수들에게 계급의식, 노동자의식을 심어준 것은 정부와 재단이다. 사립학교법 개악으로 교육부가 재단에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주었다. 교수의 지위가 하락하고 있는 마당에 노조 건설은 교수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윤병선: 전교조는 89년 출범당시 교사뿐만 아니라, 교수, 직원도 함께 참여하자는 입장을 가졌다. 전교조 내에 교수위원회를 두었고, 여기에 수백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전교조는 교수노조 건설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사회: 전교조가 출범할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교수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교수도 노동자다’라는 규정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추진 주체들 내부에서는 교수를 ‘신중간층’으로 규정하는 논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수가 노동자인가라는 일반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김영규: 현재의 사학재단은 독점자본화돼 있다. 이로 인해, 교수들의 지위가 대학내에서 대단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대학이 기업화돼 있다면, 학생은 소비자이고, 교수는 임금노동자로서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교수를 임금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이 교수의 입장에서는 타당하다.
윤병선: 전교조 당시 문제되었던 ‘교사가 노동자인가’하는 문제는 회고하자면, 무의미한 논쟁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탄압의 주요한 근거였다. 전교조는 10년 투쟁속에서 그 논쟁을 종식시켰다. 지금은 아무도 교사가 노동자냐하고 묻지 않는다. 교수노조를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이 집요하게 공격해 올 것이다. 교수주체가 먼저 ‘나는 노동자인가, 아닌가’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권리, 학문연구의 권리, 임금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수가 노동자냐, 아니냐의 논쟁은 사실상 불필요하다.
교수자치조직의 한계와 노조의 필요성
사회: 하필이면 노조인가, 민교협이나 기왕의 다른 조직으로는 그런 활동이 불가능한가.
김영규: 현재까지의 교수평의회, 교수협의회는 법적인 단체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협은 총장이나 재단과 협상을 하거나 예결산 심의나 정책결정 등에 참여하지 못한다. 대학내에서 교수는 현행법상 무력한 지위에 놓여있다. 학생들은 물리력이 있고, 직원들은 노조가 있으나, 교수 조직인 교협은 협상권이 없는 저항권에 불과한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만큼 확실한 조직은 없다. 사교련과 국교협에서 전국대학교수회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그 조직 또한 압력단체에 불과하다.
김상곤: 현재의 교수조직들은 협의체적 수준의 조직으로, 자치와 자율조직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민교협은 교육과 사회 양부문의 민주화를 위해 나름대로 헌신적인 노력을 해온 조직이다. 우리나라 교육부문의 방향은 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입안, 실시돼 왔다. 현재의 조직은 법적인 권한을 보장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노조를 추진하게 되었다. 물론, 자치·자율조직은 노조와 별개로 필요하다.
김상곤: 노동조합법에서 공무원의 노동권이 인정됐으나, 61년 군사정부에 의해 폐기되었다.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은 군사쿠데타의 유물이다. 이런 규정을 현정부가 고집한다면, 그것은 정권의 성격자체가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군사정권을 유지·답습하는 것이 된다. 민교협은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지난 11일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국회에 청원했다.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교수들 내에서는 이와같은 군사정권의 유제적 요소가 청산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일반적인 법논리와 인권논리로 보아서 이 문제는 더 이상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민교협 교수들의 입장이다.
김영규: 전교조처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교수의 자율적 운동을 전향적으로 바라본다면 말이다. 문제는 언론인데, 과거처럼 권력과 결탁하여 탄압의 근거를 제공하지 말고 전향적이고 혁신적으로 교수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낙관적으로 보지만, 최악의 경우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싸우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사회: 교수노조의 건설을 위한 경로와 방법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김영규: 쉽게 접근하자면, 대학마다 상당한 정도로 조직화돼 있는 교협을 발전시켜 노조를 건설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교협의 위상이 문제될 소지가 있다. 다른 방법은 개별적으로 노조에 가입하는 방안일 것이다. 단계적으로 보자면, 1단계로 교협을 활용하는 방안, 2단계로 각 대학 교수의 개인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으로 중앙에서 지부를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일단계 과정에서 법이 개정돼 교협이 법적기구로 바뀔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법적제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김상곤: 교수노조는 전문연구직 노조로서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정책의 민주성을 확보하는 자기목표를 가진 조직이다. 따라서, 교육관련 노조와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전교조와의 연대와 함께 대학노조와도 대학내 구성원으로서의 연대가 필요하다. 대학강사노조와는 학문의 후속세대이고, 활동을 이어받을 성격의 조직이기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 국교협, 사교련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국대학교수회와도 자율적인 기구로서 제휴하면서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해나갈 부분이 있다. 교협은 대학내에서 유니언샵으로 구성되지만, 노조는 기본적으로 개별 교수의 가입조직이다. 개별교수들이 노조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공감하고 참여하게 하기위해 여러 가지 방안들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것이 추진주체들이 할 일이다.
사회: 끝으로 교수노조와 관련, 덧붙이고 싶은 의견은.
윤병선: 법개정이 돼 순리대로 풀리기를 바라지만, 징계나 탄압을 각오하는 결의를 들으니, 전교조 10년의 역사가 떠오른다. 추진과정에서 전교조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다. 사안별로 정책연합도 가능할 것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에 대한 공동대응등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규: 교수들이 얼마나 자기 처지를 깨닫고 노조건설의 대열에 참가하느냐가 관건이다. 통제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하는 교수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대학별로 빨리 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 시급한 과제이다.
김상곤: 정부나 언론이 교수노조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여지는 없다. 단, 언론의 보수적 속성 때문에 이 문제에 부정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있다. 이 문제는 교수들이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교수들이 대학사회에 만연한 포괄적인 통제나 신자유주의화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교수노조 건설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 어려움들을 풀어갈 잠재력이 교수집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도록 추진기획단에서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한단계 진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정리 : 김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