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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장학금 남기고 떠난 서정우, 이옥란 교수
[화제의 인물] 장학금 남기고 떠난 서정우, 이옥란 교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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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5 00:00:00
어느 시에도 나오듯이, 앞모습을 꾸미고 앞모습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 꼭 필요한 것, 그렇다고 자신에게 아주 쓸모 없는 것도 아닌, 오히려 내게도 필요한 것을 손에서 털어내는 것의 어려움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2월 25일과 27일, 서울과 부산에서는 원로교수 두 분의 아름다운 떠남이 있었다. 정년퇴임을 맞은 서정우 연세대 교수(65세·신문방송학·사진 왼쪽)와 이옥란 신라대 교수(65세·영어영문학·사진 오른쪽)가 그 아름다운 뒷모습의 주인공들이다. 서 교수와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각각 1억 원과 3천만 원이라는 장학금을 ‘마지막 선물’로 남겼다.

1972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신설과 함께 교수로 와서 30년 간 굳건히 자리를 지킨 서정우 교수와 1979년 신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호 교수로 발령 받아 영문과가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 이옥란 교수. 이렇듯 두 교수는 고집스레 한 자리를 지킨 성정까지 비슷하다. 서 교수가 신문학회장, 공익광고협회장 등을 지내며 많은 저서와 연구논문을 통해 한국 언론학의 토대를 닦았다면 이 교수는 도서관장, 여성대학원장, 여성문제연구소장 등을 맡아오면서 대학교육과 아울러 여성교육의 기틀을 닦은 모습 또한 비슷하다. 다만 장학금을 남기게 된 사연만 조금 다를 뿐이다.

서정우 교수 자신이 고학생 출신이었다. “미국 유학 갈 때 주머니에 50달러밖에 없었다”는 말처럼 유학 시절의 곤궁함을 평생 잊지 못한 그가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언론에 뜻을 두고 싶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꿈을 접어야만 하는 학생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늘 안타까움으로 남았습니다. 제가 평생 몸 담아온 학교에 해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자, 언론 발전을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세대는 장학금에 그의 호 ‘草薰’(풀향기)을 붙여 운영하기로 했다.

이옥란 교수에게는 IMF라는 전국민의 경제 위기 속에서 학교를 떠난 제자들을 지켜본 아픔이 있다. 이 교수는 다만 그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23년 간 몸담았던 대학을 떠나기가 아쉬워 조금의 성의를 보인 것뿐입니다. 비록 많지 않은 돈이지만 이 돈이 씨앗이 돼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학업을 중단했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 교수와 이 교수는 퇴임 후에도 각자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힘닿는 데까지 일할 계획이다. 서 교수는 연세대 특임교수로 3월부터 대학 새내기들을 맞게 된다. 이 교수는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벌일 꿈에 부풀어있다. 사회복지시설이나 불우시설에서 무료 영어강좌를 하는 것. “지식인은 자신의 지적 인프라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그의 믿음이 뒷받침된 결정이다.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교수에게는 더없이 기쁜 일이다.

새 마음으로 새내기들을 만나고,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있는 인생을 살겠다는 두 교수에게 정년이란 새로운 젊음으로 향해 가는 반환점일 뿐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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