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3:10 (토)
“학생중심으로 보자” … “절대평가 결과로 상대평가 안될 말”
“학생중심으로 보자” … “절대평가 결과로 상대평가 안될 말”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4.06 14:2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의평가 교육업적 반영, 교수사회의 엇갈린 시선

‘惡貨가 良貨를 驅逐할 위험요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대학이 교수들의 교육업적평가에서 학생들의 강의평가 부문을 부각시킴에 따라 교수사회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연구중심’, ‘교육중심’ 대학을 막론하고, 만만찮은 연구업적을 요구받고 있는 현실은 제자리인 채 강의평가 결과가 신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자 일단 교수들은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2005년부터 2년간 교수학습개발센터장을 지낸 길양숙 강원대 교수(교육학과)는 “교수가 일과의 대부분을 수업으로 보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교육의 질 평가가 연구에 비해서 소홀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학들이 교육의 질을 점검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지만, 문제는 강의평가 자체에 대한 불신을 바로잡지 못하는 데 있다. 정용각 부산외대 교무처장(사회체육학부)이 지난해 말 국립대 14곳, 사립대 43곳의 교무처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수업적평가 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강의평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국립대 14.3%, 사립대 39.5%로 나타났다.


강의개선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강의평가라는 도구를 ‘피드백 자료로만 활용하느냐’ ‘교육업적평가 지표로 쓸 것이냐’라는 점에서 교수들 사이에도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 대학이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학생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 강의평가가 교육평가도구로 적합하다는 관점이다. 논문처럼 강의결과도 투명하게 공개해야한다는 최생림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형식에 그쳐왔던 강의평가에 인센티브제, 승진제한 등 업적평가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은 바람직하다.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강의의 질을 제고하는 측면에서 교육업적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반면 이상태 한국해양대 전체교수회 회장(선박전자기계공학부)은 “연구(논문)평가는 대여섯 번까지 검증과정을 거친다. 강의평가는 몇 번을 검증하느냐”며 “학년별 선택과목의 경우 학생들은 이해관계(학점)가 걸리면 수강을 포기하고 고학년 때 듣는 경향이 있다. 학점을 잘 받고 싶은 학생들의 심리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고 맞받았다. 실제로 학생들은 강의평가를 할 때, 학점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치부하거나 미덥지 못한 익명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평가자(학생)와 피평가자(교수) 서로가 ‘강의평가는 형식적일 뿐’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별탈없이 시행돼 왔다는 게 강의평가의 재검증을 요구하는 이유다. 교육업적평가에 반영 정도를 높여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구분이 보다 명확해진 상황에서도 서로 믿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강의평가 논란에서 강의평가 자체에 매몰되지 말 것을 주문하는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학생을 존중했느냐’ ‘수업준비를 충실히 준비했느냐’처럼 흔히 쓰는 강의평가 설문문항들은 절대평가에 적합하다. 문제는 절대평가 설문지로 교수의 교육업적을 상대평가 하겠다는 데 있다.”
강의평가가 교육업적평가를 좌우하게 되는 상황이 자리잡으면 수업환경은 어떻게 바뀔까.

한태영 광운대 교수(산업심리학과)는 대학이 강의평가를 점수화하는 데 기업의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한 교수는 완전히 선을 긋는다. “기업에서 사원은 인사평가에 ‘적응’해서 온전히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노력해 기대치의 생산성을 내면 된다. 하지만 대학 교육은 다르다.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원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연수에서 ‘재밌는’ 강연을 경험한 것으로 직무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태영 교수는 “교수신분에 영향을 주는 ‘인사결정’에 강의평가를 활용한다면 ‘평가’를 좋게 만들 수는 있어도 학생들의 지식수준을 끌어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교수의 수업권한과 자율성이 침해될 것이라는 논란도 중요하다. 조벽 교수는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는) 유일한 소통창구라는 강의평가의 순기능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교수들의 수업권 침해는 강의평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강의평가의 취지는 교수의 ‘자유성’을 감시하자는 것이지 ‘자율성’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교수가 학생에게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을 충실히 이행할 때 교수는 ‘자율성’을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강의평가가 업적평가에 목적을 둔다면 강의평가 점수의 객관성을 규명해내는 연구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강의개선이 목적이라면 강의에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고려가 뒤따라야한다.
교육평가 분야를 전공하는 교육학과 교수들도 “강의의 질을 객관화하려면 수많은 개별적 변수들을 검증해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합리적인 대안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더군다나 정작 평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학생들이 강의평가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강의평가 논란을 무색하게 만든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제발 2009-04-07 13:44:45
성적 확인을 위한 초조함과 짜증 속에 의무적, 기계적으로 2번이나 3번 주욱 내려 찍는 학생들도 많고...
당연히 신뢰성에 의문이 많이 가게 됩니다.

번거로워도 마지막 수업 시간에 카드 나눠주고 평가를 하거나 (강의 마지막에 교수가 나가고 평가 후 한 학생이 걷어서 행정담당자에게 전달) 자발적 평가만 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