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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에 갇힌 죽은 학문은 하고 싶지 않아요”
“상아탑에 갇힌 죽은 학문은 하고 싶지 않아요”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9.03.3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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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어사교육’ 연구 나선 이병민 서울대 교수

“그동안 영어사교육 시장은 학문적 연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이병민 교수는 영어사교육포럼  대표를 맡아 ‘영어교육 철학과 방향을 정립하기 위한 대안’ 모색에 나섰다. 『외국어학습 교수의 원리』등의 역서와 저작을 출간했다.

우리사회의 영어열풍은 광적인 수준이다. 사교육 시장이 잠식하는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새 정부는 영어몰입교육을 표방하면서 사교육 열풍을 부채질했다.
붕괴된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영어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공교육을 일으키면 사교육이 없어진다는 식으로 영어사교육을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을 좇는 것”이라고 이병민 영어사교육포럼 대표(48, 서울대 영어교육과·사진) 는 지적한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모태로 올해 3월 영어사교육포럼이 출범했다. 영어사교육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상설연구조직이다. 포럼 대표를 맡은 이병민 서울대 교수는 오래 전부터 영어사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동안 영어사교육 시장은 학문 연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얼핏 고등교육과 영어사교육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교수는 그러나 “영어교육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영어교육학은 미국, 영국 중심 학문을 그대로 수입하면서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영어문제는 그런 미시적인 부분만 가지고선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영어교육 현상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이 교수는 “학계에서 언어정책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 문제의식이 부족했다”고 강조했다. 

영어사교육 현상을 설명하던 그가 갑자기 “모두가 영어를 잘 하고 싶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끝이 어딘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어 “영어를 많이 접한 사람이 오히려 더 영어를 잘 하길 원한다. 영어를 괜찮게 구사하면서도 더 잘 하고자 한다면 원어민이 돼야 한다는 뜻인데, 한국인이 원어민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상황이 이런데도 전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포럼에는 대학 교수를 비롯해 영어사교육 현장전문가, 전현직 교사, 학부모 등이 참여한다. 활동 방향은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영어사교육 실태, 현황을 알리고 △영어에 과도하게 낀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연구조사 사업을 진행해 포럼의 입장을 제시하며 △영어교육 철학과 방향을 정립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교수는 “나라마다 언어정책을 세우고 여기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우리는 거꾸로  각종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상위 언어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이라며 “핀란드, 싱가포르 같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와 우리나라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국민 전체가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쪽으로 몰입교육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포럼은 올해 상반기 ‘영어사교육 실상을 캔다’는 주제로 연속 세미나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24일 ‘어린이 영어전문학원의 현황과 실태’를 주제로 1회 포럼을 개최했고 앞으로 ‘엄마표 영어 어떻게 볼 것인가’, ‘국제중, 외고 대비 영어사교육 현황과 실태’, ‘영어캠프, 조기어학연수, 조기유학 현황과 실태’, ‘영어사교육 현황에 대한 평가와 제언’ 등의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 연구년을 맞은 이 교수는 영어사교육 현상을 두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활로를 모색할 계획이다. 그는 “상아탑 안에서 죽어 있는 학문을 하고 싶지 않다”며 “더 이상 응용·순수 학문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학자 자신만을 위한 학문이 아닌, 영어사교육과 관련한 책을 쓰는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한국멀티미디어언어교육학회 상임이사, 한국영어교육학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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