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중을 동원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다. 저명한 대가들을 동원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유명세 있는 작가들의 전시를 좀 더 선호한다. 따라서 주류 미술관에서 젊은 작가들의 실험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작업이 설 자리는 극히 비좁다.
빈약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대안공간의 작가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대다수의 대안공간들이 접근성이 극히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다. 하루 관객이 10~20명에 불과한 전시 공간에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는 빛이 바래기 십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근래 떠오른 대안 가운데 하나가 지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운영되는 미술관, 또는 문화센터와 젊은 예술가, 비주류 장르 작가들의 결합이다. 주지하듯 지역문화센터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콘텐츠의 빈곤이다. 미술의 경우 지역문화센터의 콘텐츠 빈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관 위주의 전시장 운영이다. 물론 대부분의 지역문화센터들이 대관심사를 거쳐 전시 여부를 결정하지만 찾아오는 작가 중에서 택하겠다는 수동적인 발상으로는 높아진 지역주민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 보다 능동적인 전시장 운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상 대부분 비전문가로 구성된 지역문화센터의 인력으로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는 무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 몇몇 지역문화센터들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서울 노원구가 운영하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는 지난 2008년 6월 개관 4주년기념으로 설치와 마임, 음악 공연을 한데 결합해 회관 공연장을 일시적으로나마 낭만과 꿈이 넘치는 해변가로 탈바꿈시킨 공공예술프로젝트 ‘노원아트오아시스’를 선보였다. 프로젝트의 기획자는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문화센터와 유능한 외부기획자가 결합한 사례다. 기획에 참여한 양 교수는 “미술전시의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평가하면서 “미술을 다시 생각한 기획이었다. 구청측은 행정을 맡고 행사 전반은 기획자에게 믿고 맡겨 그 어느 전시보다 자율적으로 진행됐다.
주민 참여도 높았고 반응도 뜨거워 사실 놀랐다”고 전시 소감을 밝혔다.
구청 건물을 리모델링해 ‘강남구청 복도안에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청의 시도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곳에서는 지난 2008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3개월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시리즈’라는 전시를 열었다. 사실적인 리얼리즘 회화와 환타지를 소재로 한 작품, 그리고 추상회화를 망라해 관객들로 하여금 현대문화의 첨예한 쟁점 가운데 하나인 ‘현실과 가상’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만든 이 전시는 관내 지역 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전시를 주관한 것은 금산갤러리다. 이 전시는 상업화랑과 지역문화센터의 행정력이 결합한 사례다.
서울 송파구가 운영하는 예송미술관은 2008년 12월에서 2009년 2월에 걸쳐 개성있는 사진작가 성남훈의 전시를 개최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것은 관내 한미사진미술관이다. 지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전시장과 지역미술관의 협력으로 송파구민들은 분쟁지역 티베트의 수행승을 다룬 성남훈의 문제적인 작품들을 향유할 수 있었다.
분명 작가와 지역문화센터 모두에게 이러한 전시는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무엇보다 많은 관객이 찾는 전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특히 지역단체의 든든한 재정과 홍보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한편 지역문화센터의 입장에서 이러한 시도는 내실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성공을 거두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선 전시를 기획할 우수한 전문 기획자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외부의 전문 기관이나 기획자에 의뢰하는 것이 그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역문화센터 자체의 전문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다. 이는 센터 고유의 일관된 개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현실적인 접근 전략도 필요하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기획한 이은주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팀장은 “지역문화센터의 전시가 보다 관객친화적인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낯설게 보일 수 있는 참신한 시도들을 지역의 일반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 이은주 팀장은 도슨트를 비롯한 교육프로그램의 확충을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지역미술센터가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가 단체로부터 예상되는 반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짚어보아야 할 과제다.
외부 작가들을 위해 전시 공간을 제공하는 일은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는 전시 기회의 감소를 뜻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