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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만파식적]
  • 교수신문
  • 승인 2002.0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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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6 10:18:50
이혜숙 / 경상대·사회학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온지 얼마 안 된 80년대 초반의 일이다. 어떤 여교수가 논문을 발표했는데 느닷없이 옆에 있던 한 남교수가 “연구하는 게 저렇게 힘이 들면서(그 여교수 얼굴이 피곤해 보였는지) 집에서 살림이나 편하게 하지 왜 학교에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학교에 와서 처음 듣게 된 여성비하 발언이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그 남교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수적인 지방 소도시에서 겪게 될 문화적 충격에 일일이 마음 쓸 것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순발력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에도 교수사회에서 그런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것과 그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실제로 1998년도 한국여성개발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가 몇 명인가, 몇 살인가, 주부의 역할과 학문을 잘 병행할 수 있는가, 남편의 직장은 어디인가, 남편의 직장 때문에 거리가 먼 이 학교에 근무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여교수가 남교수에 비해 더 잘할 수 있는 장점을 꼽아 보라, 남학생과 함께 밤늦게까지 실험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성차별적 질문을 전임교수 임용과정에서 여교수들이 받았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주변에서 일어난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여성이 좋아서 여성 옆에 앉는다. 여성이 있으니까 분위기가 좋다. (연약한) 여성도 저렇게 잘 견디는 것을 보고 많은 위안을 얻었다. 방학인데 (아이들 돌보지 않고) 왜 학교에 나오느냐. 여성이 왜 그런 무거운 주제를 전공하느냐. 나이로 볼 때 위니까 반말쯤 해도 되지 않느냐. 술 맛 떨어지게 분위기 깰거면 그만두고 나가라. 미인을 보면 먹고 싶다” 등 이었다.
성회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성희롱 사례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라고 대부분의 일간 신문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조목조목 예까지 나왔던 말들이 여전히 교수사회에서 계속되는 것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한 남교수들의 무지와 무시를 정말 실감한다. 어떤 여학장은 학장회의에 참석한 관계자가 느닷없이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어이없었던 경험까지 있었다.
또 여성이 시부모 상을 당했을 경우는 종종 회람이 돌고 남성이 장인, 장모상을 당했을 때는 회람이 도는 경우가 전혀 없는데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교수사회라고 해서 다른 사회집단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특히 교수사회의 경우는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데서 오히려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집단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앞의 보고서는 여교수들의 구체적인 성차별 경험사례로 대학내 활동에서 남교수에 비해 불리함을 입은 빈도가 62.7%이며 의사결정시 영향력 행사가 불리하다는 응답자도 40%가 넘어서 여교수들의 소외감이 전반적으로 퍼져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여교수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 속에서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소외와 배제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는 국립대의 경우만 보아도 2000년 현재 여학생의 비율은 44%에 이르는 데도 여교수의 비율이 9%, 행정보직 여교수의 비율이 1.6%라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현재의 40대 중반이상인 대부분의 교수들은 성평등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성별 분리교육의 영향으로 여성과 자연스럽게 일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또 직업의 성격상 교수는 재교육을 받을 기회도 거의 없어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교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교수 채용목표제 등이 제기되면서 교수사회에서의 남녀불균형과 여교수의 지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채용목표제와 더불어 교수사회에 만연돼 있는 잘못된 성문화를 개선해 여성전문인력이 좀 더 평등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다양한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교수 자신은 물론이고 전체 교수사회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안제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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