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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생각해야 할 의무
[딸깍발이] 생각해야 할 의무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독문학
  • 승인 2009.03.23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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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시절  어느 교수 이임강연에 초대 받은 적이 있었다.
평소 그림자도 밟아볼 기회가 없었던 은사님이 직접 초대를 해 주신 것은 영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어두운 밤에 나침반 없이 별을 보며 길을 걸어 가야만 하는 학생에게는 하나의 큰 행운이기 때문이었다.

로터문트 교수의 강연제목은 ‘생각해야 할 의무’였다. 로터문트 교수는 학위 논문인 ‘詩에서의 패러디’와 교수자격 논문인 ‘바로크 문학의 감정과 예술성’으로 1960년대 독일학계에서 이미 명성을 확고히 한 다음, 교수생활의 대부분을 오로지 ‘20세기 독일 망명문학’ 연구에만 학문적 정열을 집중시킨 학자였다.

‘생각해야 할 의무’는 한 인간이 학자로 살며 겪어온 인생에 대한 회고조의 사담이나 고답적인 윤리학 강의가 아니라, 1935년 나치시대의 내적 망명객 중 한 사람인 요아힘 귄터가 쓴 ‘생각해야 할 의무’라는 에세이에 관한 것이었다.

귄터의 에세이는 헤겔과 쇼펜하우어 철학에 관련된 것으로 헤겔 사후 쇼펜하우어에 의해 ‘적’으로 규정되며 ‘죽은 개’ 취급을 당하던 당시의 헤겔과, 이러한 철학적 상황에 의해 발생된 대학교육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귄터는 헤겔, 셸링, 피히테 등에 의해 독일대학 내 확고히 자리잡았던 인문학적 사유방식이 쇼펜하우어의 헤겔 해체 작업의 결과인 세계관적 사고로 대체됨에 따라 쇼펜하우어적인 사유가 대학사회를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학교수들이 개인의 관점이 아닌 공식화된 세계관을 지닌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귄터는 의문을 제기하며 헤겔의 ‘대학본질에 관한 개념’이야 말로 ‘생각할 능력’을 제시하는 대학교육정책의 기본 사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귄터의 이러한 에세이에 대해 로터문트는 귄터의 공격 대상이 겉으로 보기엔 쇼펜하우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니체라는 것이었다.

히틀러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나치를 추종하던 당시 독일 철학자들은 정치적인 노선이나 종교 내지 정신적인 배경으로 볼 때 히틀러와 니체는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봤으며 이러한 니체의 철학적 배경은 당시 나치 독일의 대학교육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었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히틀러 나치 대학교육 정책입안자들이나 관료들은 세계관적 사고를 바탕으로 교수를 임용했고 또 퇴출 시켰다.
그들에게 적합한 대학교수들은 ‘민족’과 ‘국가사회주의(나치)적’ 세계관에 충실한 자들이었고, 이에 반대 되는 사상의 소유자들은 부적격자였다.

로터문트는 귄터의 주장이 외적으로 볼 때 당시의 대학교수 임용에 관한 정책을 문제 삼은 것 같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세계관에 충실한 자들이 대학 교수자리를 독차지할 경우, 대학에서 ‘생각할 능력’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 세계관에 충실한 자들에 의해 그들의 교수 후속세대가 형성된다는 무서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한 상황이 오면 인문학적 사고는 더 이상 대학에서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로터문트 교수의 강의 요지였다.

로터문트 교수는 그의 강의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학 교수들이 세계관에 충실한 자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대학교육 정책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히틀러 철권통치 시대에 내적 망명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체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숨겨진 글쓰기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제를 밝혔다. 그것은 메타포였다.

로터문트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는 ‘생각해야 할 의무’를 지닌 인문학 교수들이 주요 청중이었고 일부 대학교육 정책입안자들도 참석해 있었다.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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