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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세계를 설명하는 수학자와 문학 연구자의 사유 방식
[북리뷰] 세계를 설명하는 수학자와 문학 연구자의 사유 방식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3.23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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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수학의 필하모니』김홍종 지음│효형출판│2009│440쪽
『싫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 진형준 지음│살림│2009│ 253쪽

이공계와 인문계는 세계를 바라보고, 읽고, 해석하며, 사유하는 언어 자체가 다르다. 그러나 통섭과 융합이라는 요즘의 화두를 반영해서일까.
최근 각각의 언어를 통해 세계의 해명을 시도하는 책들이 국내 저자에 의해 출간됐다. 먼저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재직 중인 김홍종 교수가 낸 『문명, 수학의 필하모니』를 보자.

이 책은 단순한 수학 개론서가 아니다. ‘사상과 수학’, ‘예술과 수학’, ‘사회와 수학’, ‘기술과 수학’등의 목차가 보여주듯이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이른바 인문, 사회 과학의 대상이라 불리던 현상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술과 수학’ 장을 보자. 수학과 교수답게 저자는 논리적 공백이 없이 명쾌하게 예술에 대한 수학적 접근을 행하고 있다. 음악에 대해 우리는 평소 수학과 가장 동떨어졌고, 낭만적이며 감성적이라 여긴다. 그런데 저자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옥타브가 사실은 정교한 음의 비율에서 나온다는 점을 밝힌다. 그림에 대한 부분에서 조화수열을 논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수학적 균형이 있는 바로 그곳에 예술적 미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수학적 합리성의 산물


‘사회와 수학’의 장에선 더욱 경탄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민주주의=다수결에 의한 결정 정도로 알고 있던 인식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에 의하면 일반적인 다수결 제도의 문제는 유권자의 38%의 지지를 받은 자는 선출이 되지만, 나머지 62%의 의사는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결선 투표제 등의 발상을 담은 쌍쌍비교법이다. 그 외에 순위마다 차등으로 점수를 부여하는 보르다 셈법, 최소득표자탈락제 등이 있고, 단조기준, 사퇴자와 무관한 기준 등이 논의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합리적 선거제도로 △과반수 기준 △콩도르세 기준 △사퇴자와 무관한 기준 △ 단조기준을 만족시키는 제도를 들었다.

물론 이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로우 교수의 이론처럼 ‘불가능’하다는 언급도 잊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수학적 한계’에 대한 중요한 성찰 거리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분배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상세하게 고찰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저자의 논의는 정치에 대한 국상학적 접근을 시도한 말년의 스피노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질적인 가치들과, 자의적인 결정 및 변인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양적이고, 외생적인 제도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정치에 대한 외생적 접근법은  실증주의적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정의와 같은 가치를 수량화시킨다는 점은 늘 난점이다.
그러나 수학적이고 외생적인 합리성은 정치의 결정 심급을 투명한 제도에 정위시킨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권력자나 대중의 변덕, 혹은 비이성적 충동에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 체제의 구축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싫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을 보자.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상상력은 창의력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개념이다. 본성적으로 지루함과 반복에 대해 ‘싫증’을 내는 힘으로서 요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유하는 주체의 개별성과 질적 특징이 강조된다. 저자인 진형준 홍익대 교수는 불문학이 전공이다. 이 책은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을 토대로 한 책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만이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만이 상상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는 말로 화두를 던진다.

인류 진보를 거부하는 상상력


저자는 “상상력은 절대로 첨단 과학문명을 이룩한 현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상상력의 산물인 신화와 제의, 그리고 예술 등”은 현대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어서 저자는 “나는 오히려 상상력의 시대를 인간이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는 믿음이 의심받는 시대가 온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진보라는 논리로는 측정할 수 없는 지평에 상상력이 자리한다는 의미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새로운 인식론’이라는 장이다. 바슐라르의 신과학의 정신에 빗댄 신인류학정신이 주제인데, “로고스 중심주의를 부정하면서 그것을 부분으로 감싸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신인류학의 새로운 인식론은 “인간과 세상을 계량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서의 수학적, 외생적 관점과 다르다.

그렇다면 그 핵심적 내용은 무엇일까. 여기서 저자가 제시한 ‘반객관적 인과론’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에 의하면 반객관적 인과론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인과성’을 부정하는 인과론이다. 그래서 “현실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원인을 현상 자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 혹은 더 먼 곳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의 원인이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 지배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반객관적 인과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불충분하기 짝이 없다. 저자는 연대기적 시간을 벗어난 상대적이고 질적인 시간이나 신비주의, 상상력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상상력 속에서 시간은 반복되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하고 되돌려지기도 한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 안에서 그렇게 상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 아닌가. 상상을 하는 것과 실제로 반객관적 인과성이 관철된다는 말과는 다르지 않는가’라는 반문에 답할 법하지는 않다.
이는 엄밀하게 규정된 개념이나 이론적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문학 전공자 특유의 경향에서 나왔다 할 수도 있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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