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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경기대 등 총장선출 과정 잇달아 개입
덕성여대·경기대 등 총장선출 과정 잇달아 개입
  • 권형진 기자
  • 승인 2009.03.2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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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관치 부활’ 논란

교육당국이 임시이사 파견 대학의 총장 선출 과정에 개입하는 정황이 잇따라 포착되면서 ‘관치 부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과거 참여정부에 관여했거나 코드가 맞지 않은 인사를 솎아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대학 운영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현 정부가 표방하는 대학 자율화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관치 논란의 진원지는 최근 총장을 새로 선출한 덕성여대와 차기 총장 선출에 들어간 경기대이다. 둘 다 임시이사 파견 대학이다. 이태일 총장의 임기가 4월로 끝나는 경기대는 지난 16~20일 총장후보자를 공개모집했다.

 

그런데 원서접수가 시작되자마자 교육과학기술부 고위간부가 직접 이 총장에게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이번 총장 공모에 참여해 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이 총장은 2003년 10월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참여정부 인사다.

교과부의 해당 고위간부는 이러한 소문에 대해 지난 18일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정이사 체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임시이사 파견 대학을 정상화시키는 데는 교과부도 책임이 있다”며 “하루빨리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불출마를 권유했다”고 강변했다.

오히려 이 총장 측은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향후 총장 선출과정에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둔 듯하다. 경기대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는 오는 25일 서류 심사를 통해 총장 후보자를 6명으로 추린다. 소견 발표를 들은 뒤 4월 1~2일쯤 후보자를 3명으로 압축해 이사회에 추천할 예정이다.

앞서 덕성여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참여정부 여성부장관 출신의 지은희 총장이 지난해 12월 12일 구성원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직후 교과부는 덕성여대에 종합감사 계획을 통보했다(12월 23일). 3일 뒤인 26일, 이사회는 지 총장을 임기 4년의 총장으로 다시 선출했다.

이 과정에서 교과부는 임시이사들을 동원해 지 총장 연임 저지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경기대(2008년 7월~)와 덕성여대(2008년 9월~) 임시이사들은 모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됐다.

 

덕성여대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선거 후 당시 교과부 고위간부가 이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가 끝난 뒤 총장을 선출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사 7명 중 3명은 다른 이사들과 달리 ‘종합감사 결과를 보고 나서 총장을 선출하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이사는 “감사 후 총장 선출 요구는 지 총장에게 사퇴하라는 것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뚜렷하게 드러난 비리도 없고 구성원들이 합의한 방식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한 사람을 단지 전 정부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현 정권의 코드에 맞는 사람을 앉히기 위한 개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코드에 맞지 않는 인사를 솎아내기 위해 대학 운영에 개입한다는 논란은 임시이사 파견 대학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난 16일 시작된 동덕여대 종합감사도 ‘표적감사’ 논란에 휩싸였다. 박경양 이사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진보 성향의 이사 3명을 겨냥해 교과부가 감사에 착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현 이사진의 임기가 오는 7월 8일로 모두 끝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의혹은 커지고 있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총장 선출 방식에 합의한 후 느닷없이 감사 실시를 통보해 왔다. 학내에서는 임시이사가 파견된 후 구 재단이 복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사회 파행으로 장기간 이사장과 총장을 못 뽑고 있는 데다 운영과 관련해 민원이 많이 제기돼 사실 조사 차원에서 감사를 실시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최근의 현상에 대해 한정이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국장은 “과거 몇몇 대학들의 임시이사 교체 요구에 ‘임명은 우리가 하지만 이사회 운영에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라던 교과부가 정권이 바뀌자 말을 뒤집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모토가 대학 자율인데 퇴진을 종용하고 감사로 압박하는 것은 ‘관치의 전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뉴라이트 교육단체인 자유교육연합의 이명희 상임대표(공주대 교수)는 “임시이사 파견 대학은 교과부에 감독 권한이 있다. 정상화에 방해 되는 사람이 총장으로 나올 때 사퇴나 불출마를 말하는 것은 정상적인 권한 행사로 봐야 한다”며 “오히려 감독권을 엄격하게 행사해 하루빨리 정상화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과부가 너무 방치해 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불거지고 있는 ‘표적감사’ ‘관치’ 논란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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