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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의 현대성 고민에서 배울 것은 없는가
‘MoMA’의 현대성 고민에서 배울 것은 없는가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03.16 15: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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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首長 바뀐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제

지난달 23일. 대우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배순훈 전 KAIST부총장이 국립현대미술관 17대 관장으로 임명됐다. 미술계에는 비교적 낯선 CEO출신 유명 외부인사의 관장 임명에 대해 문화부는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국립현대미술관도 CEO형 관장을 영입해 운영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배순훈 관장 역시 “미술계의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밖에서 구하면 오히려 새로운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력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미술계는 이 낯선 신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수집을 통한 소장품 확보의 한계

신임 배순훈 관장이 당장 직면하게 될 국립현대미술관의 오랜 난제 가운데 하나가 소장품 수집이라는 문제다. 소장품 수집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은 국군 기무사령부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는 일이나, 줄어든 관람객수를 늘리는 일, 그리고 정체된 운영을 활성화시키는 일에 비해 당장 해결해야할 심각한 사안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신임 관장이 3년 임기를 마쳤을 때 그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수집과 관련해 제기된 여러 문제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수집 예산의 확충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의 ‘현대성’ 고수 방침을 계승한 ICA는 상설 소장품을 갖지 않고, 미술작품의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 수집과 운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출처= www.boston.com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체 발행한 미술관 연보·백서에 따르면 2007년의 1년 작품구입비는 약 48억원으로 이는 25억원에 불과하던 2002년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대된 수치이기는 하지만 작품 한 점의 가격이 1억원을 쉽게 웃도는 (작년에 문제가 됐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작품가격이 80억원이다!) 미술시장의 현 상황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러한 예산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작품 기증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은 1986년 과천 이전 이후 작품 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2007년을 기준으로 전체 8천400여점 가운데 약 3천점 정도가 기증 작품일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구입 작품과 기증 작품의 비율이 50:50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이렇듯 기증에 크게 의지하는 작품 수집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기증에 의지해서는 소장품의 내용과 질을 짜임새 있게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장품의 내용과 성격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에 걸맞게 능동적으로 구성하려면 우연적인, 불규칙 변수로서 기증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작품구입비의 확충은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수집과 관련해 빈번히 제기되는 다른 문제는 소장품의 시대, 장르별 편중과 불균형이다.

전체 소장 작품 가운데 1980년대 미술의 비율이 2007년 기준 45% 정도로 지나치게 높다. 또한 다른 장르에 비해 회화의 비중이 40% 정도로 매우 높다는 것도 문제다. 이에 비해 전체 소장품 가운데 뉴미디어, 설치, 공예, 디자인이나 건축분야의 비중은 턱없이 낮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의 편중과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내 유일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전 시대와 전 장르에 고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당위성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즉 모든 시대와 모든 장르의 균형을 도모하는 가운데  미술관을 특징짓는 고유한 특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지 않는 수집 정책을 견지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단지 몰개성의 ‘저수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기관장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director's choice'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즉 기관장의 의지로 그의 임기 동안 일관성을 지닌 개성있는 작품군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 컬렉션에 해당 기관장의 이름을 부여해 책임과 명예를 동시에 부여하자고 제안한다. 가령 ‘배순훈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 명망있는 미술평론가들이었지만 이념적 편향성을 지적받곤 했던 전임 오광수 관장이나 김윤수 관장과는 달리 신임 배순훈 관장의 경우 비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제안은 그의 임기 안에 시도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물론 이 때 취임 직후 그가 강조했던 대로 미술계 내부의 대화와 의견수렴이 중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수집과 관련, 또 하나의 이슈는 작품 수집에서 그 명칭에 내재된 ‘현대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통상 ‘현대적인’으로 번역되는 ‘modern’이 아니라 ‘동시대적인’으로 번역되는 ‘contemporary'를 채택한 영어 명칭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보듯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의 ‘현대성’을 유독 강조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 수집 정책의 방향과 실천에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에 관해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의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알프레드 바를 위시한 MoMA의 초기 관장들의 고민은 현대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고전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분명히 ‘Museum of Modern Art'라는 명칭에 모순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술관에 소장될 수 있는 작품의 연한을 50년으로 제한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1947년 MoMA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 회화작품 27점을 매각했는데 알프레드 바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 두 미술관은 “이 작품들이 현대라는 범주에서 고전이라는 범주로 넘어갔다”는데 동의했다고 한다. 1953년 여러 가지 이유로 이 50년 기준과 소장품 매각 정책은 중단됐다. 하지만 MoMA는 미술관의 ‘현대성’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ICA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ICA는 처음으로 그 명칭에 ‘Modern’이 아니라 ‘Contemporary’를 사용한 기관이다.

1936년 MoMA의 분관으로 설립된 ICA는 2000년까지 상설 소장품을 갖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었다. 보존과 불변성을 회피하는 항구적인 동시대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일이다.

ICA 실험정신이 시사하는 것

기관 관장인 클로츠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모험적인 시도(아방가르드)가 일단 인정되고 고전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여기서는 전시될 수 없고 다른 기관으로 옮겨져야 한다. 고전을 축적해 명성을 얻는 일은 ICA와 무관하다” 이러한 시도들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너무 급진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험 정신만은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초창기 MoMA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계처럼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순훈 관장은 취임 인터뷰에서 “투자제안을 위해 세계 금융계를 노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여기에는 정부가 함께 나서 문화적 비전을 보여줘야 하며 건축물이나 전시도 격에 맞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당하지만 자칫 알맹이를 놓치고 겉포장에 치우치게 될 것을 우려케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알맹이란 물론 내실있는 소장품과  거기에 부합하는 충실한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이다.
배 관장의 3년 임기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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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 2009-03-18 16:09:24
'수장'은 首長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