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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넥투스’, 그대의 暗默知를 광장에 세워라
‘호모 코넥투스’, 그대의 暗默知를 광장에 세워라
  • 조동기 동국대·사회학
  • 승인 2009.03.16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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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대화로 읽는 학술키워드_ 15. 오타쿠] 사회학자는 어떻게 보나

오타쿠 문화는 흔히 탈근대적 영상문화의 번성과 정보기술의 발달과 선택적 친화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기호의 폭발에 따른 현실과 가상 간의 경계 흐리기, 극사실(hyper-reality)의 만연, 영상기술과 정보통신망의 발전이라는 조건 속에서 오타쿠적 문화는 쉽게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시뮬라크르만으로 구성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정보기술이 만들어내는 극사실에 몰두하는 오타쿠는 가상세계의 인간, 호모 비루투엔스(Homo Virtuens)입니다. 이러한 오타쿠의 이미지는 비현실성과 부적응성입니다. 오타쿠 문화에 대한 보다 전통적인 이해도 부정적인 인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기능주의자 로버트 머튼에 의하면 주어진 목표와 수단에 대한 개인의 적응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오타쿠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는 적법한 규범(수단)을 모두 거부하는 ‘은둔’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기능적’이지 못한 부적응자입니다.

정보사회의 소외형 인간


비판이론이나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오타쿠는 소위 ‘생활세계의 체계화’나 ‘탈전통화’에 수반되는 존재론적 불안감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됩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끊임없이 확장돼 개인의 일상생활 속으로 침투하게 되면서,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우려하는 개인들의 불안감이 전도돼 자폐적 은둔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오타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사이버공간에서 오타쿠는 비방이나 비하의 의미를 나타내는 부정적 낙인이 되고 있으며, 중독과 쉽게 결부되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타쿠는 전자적 보호막의 안전함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한 채 현실에 관여하지 않고 온라인에 몰두하는 ‘마우스 포테이토’(mouse potatoes)로서, 변태나 잠재적 범죄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은 치료를 통해 정상을 회복해야 되는 환자들입니다.

그러나 오타쿠는 단순히 현실과 단절된 부적응자나 병리자도 아니고 존재론적 불안감을 신체에 대한 집착으로 전도시키는 나르시스트도 아닙니다. 이들은 일반적이지 않는, 때로는 ‘기이한’ 관심이나 취미를 가지고 있고 현실 사회와의 관계형성 능력이 부족하지만, 해당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적 지식과 마니아적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를 부정적 의미로 범주화시키는 것은 사회심리학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당히 조심하면 ‘보통’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나 ‘변태’적인 오타쿠로부터 위해를 당하지 않으며, 정상적으로 살아가면 사회부적응자가 되지 않는다는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화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현대 도시인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장치가 됩니다. 나아가서 소수의 문화에 대해 오명을 씌움으로써 주류의 문화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정치적 효과도 있습니다.

개방적 연대의 가능성 주목


일찍이 사회학자들은 주변인(marginal man)이 가지는 사회변혁의 원천으로서의 가치에 주목해 왔습니다. 주변인은 주류 집단이 가지지 못한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정체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오타쿠는 다분히 주변인이며, 이런 측면에서 그 긍정적 가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은둔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관심거리에 대해서는 몰입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기 어려운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경쟁사회의 단순한 피해자나 낙오자가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타쿠들이, 문제가 많고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도피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기보다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책임감을 인식하고, 현실의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나아가서 역설적이지만 정보사회에서 오타쿠의 ‘연결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타쿠는 더 이상 닫힌 동굴에 칩거하는 고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집안에 고립돼 있지만 통신망으로 연결돼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호모 코넥투스(Homo Connectus)입니다. 이러한 존재양식의 변화로 말미암아 전문가적 마니아로서 오타쿠가 지니고 있는 풍부한 암묵지가 일반 사람들에게 더 쉽게 공유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타쿠적 존재들이 사적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아가 집단지성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개방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희미한 가능성을 ‘미네르바’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조동기 동국대·사회학

필자는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보사회이론』등의 저서와 「사이버공간의 일탈유형과 사회통제의 특성」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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