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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점술과 부시
[딸깍발이] 점술과 부시
  • 교수신문
  • 승인 2002.0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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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6 09:22:44
한국인들은 점을 많이 본다. 연간 1천만 명 정도가 점을 본다고 하니 가히 점의 왕국이라 불릴만하다. 점을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앞날이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내일의 운명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사람들은 무엇에 의지해 안정감을 찾고자 하고 또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한다. 한국사회가 그 만큼 불안정하고 불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이유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기보다는 외적인 힘에 의해서 개인들의 운명이 결정돼 왔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노력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외부의 힘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결정될 때,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을 알고 싶어하게 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점을 많이 보는 이유를 더욱 확인하게 됐다. 한국인의 삶이 한국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이뤄지기보다는 미국의 정책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반만년 한국역사에서 미국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60년이 채 되지 않았다. 2차 대전 후 한국이 미국의 지배권에 속하게 되면서 한국의 운명은 미국에 영향을 받게 됐다. 미국의 대외 정책은 대통령이 바뀌면서 크게 바뀌었고,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로 한반도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남북한 7천만 한국인의 운명이 부시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점쟁이들도 한국사람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각자 타고난 개인들의 사주팔자가 아니라 한국에서 수만 리 떨어져 사는 조지 W. 부시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 또한 미국 정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도 부시가 아닌 다른 당의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한국의 상황은 현재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점과 부시의 대외 정책에 대한 한국정부나 한국인의 반응에 따라서도 부시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시의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호응하고 앞장서는 일부 정치인들이 대다수 한국인의 운명을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지도 잘 알게 됐다.

한 개인의 운명이나 한 나라의 운명은 미리 결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국민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숙명론과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설적으로 부시의 방한은 좋은 교육적인 효과를 가졌다. 점쟁이에게 갈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미래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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