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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03조에 보장된 법관 독립성이 위협 받는다면
헌법 103조에 보장된 법관 독립성이 위협 받는다면
  • 윤재만 대구대·법학
  • 승인 2009.03.16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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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논란을 보며

재판 배당은 컴퓨터 시스템에 따라 자동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었던 신영철 대법관은 사건들을 줄줄이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형사단독 재판부에 배당했다.

판사들이 배당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자동배당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한 단독판사가 야간시위를 금지한 현 집시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하고, 다른 단독 판사들도 잇따라 선고를 연기했다. 그러자 신 대법관이 직접 전화를 걸거나 만나서, 혹은 이메일 등을 통해 헌재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재판을 속행할 것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신 대법관의 일선 판사에 대한 재판개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그 후 그는 지난 18일 법원장에서 대법관으로 영전했다.

재판개입에 대해 이용훈 대법원장은 “그걸 갖고 판사들이 압박을 받아서는 되겠는가. 판사들은 양심에 따라 소신대로 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무평정권을 가진 법원장이 -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을 등에 업고 - 압력을 가한 법원장은 잘못이 없고 압력을 받은 평판사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이 말은 어불성설이다.

대법원장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남의 물건을 훔친 절도범에게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게 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심지어 살인자에게도 죄책을 물을 수 없고, 빨리 도망갔으면 안 죽었을 텐데 빨리 도망가지 않은 잘못이 있다는 등 오히려 살인을 당한 사람을 탓 할수 있다. 어떻게 이런 논리적 도착이 가 능하단 말인가. 잘못은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압력을 가한 법원장이 범한 것이고, 평판사들은 잘못이 없다고 해야 한다.

대한민국헌법(제21조제2항)은 (주·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집시법은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허가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됨은 명백한 것이고, 여기에 양심 등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만약 판사들이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재판을 강행한다면 위헌적 법률을 적용한 결과가 되므로, 헌재결정 이후에 재판을 속행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다.

그럼에도 이 대법원장은 위헌심판을 제청하지 않은 판사는 헌재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재판을 속행해야 한다고 신 대법관을 옹호해준 것이다. 이렇게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뜻이 드러났는데, 감히 그 뜻을 어기고 헌재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판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 채로 헌법을개정할 수 있는 압도적 다수의 힘이, 헌법을 침식하고(verfassungsdurchbrechen)사실상 헌법을 대체하는 위헌적 법률을 국회가 아닌 행정부가 대통령의 서명·공포도 없이 제정·시행해도 절대적 힘 앞에서 제3제국의 법관들은 그 법률들을 나약하게 용인했다. 히틀러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법원내부든 외부의 힘으로부터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압력이 가해질 때, 어떻게 행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위일까.헌법이 제103조에서 보장한 법관의 독립성은, 국회의원에게 국민주권의 원리에 기해 무기 속위임 입법권이 주어진 것처럼, 법관에게 자유로운 심판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권리 위에서 잠을 자는 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처럼, 법관의 독립성이 헌법에 규정됐다고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성이 위협 받을 때 일신의 안위를 위해 제3제국의 법관들과 같이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오직 자신에게 맡겨진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돌아올지모르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위헌세력에 적극적으로 맞서서 법관의 독립성을 사수하는 것만이 용기있는 행위일 것이다.

윤재만 대구대·법학

필자는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헌법학회·한국공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구대 법과대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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