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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계획서는 ‘날짜별’로 … 강의 목표 명확히 제시해야
강의계획서는 ‘날짜별’로 … 강의 목표 명확히 제시해야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3.0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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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본 ‘기절초풍 대학 강의 실태’

새 학기가 시작됐다. 90년대에 태어난 신입생부터 취업과 진학의 갈림길에서 배회하는 졸업반 학생들까지, 천태만상의 청춘들이 또 한바탕 어우러질 채비를 마쳤다.


교수에게는 교육자의 책무가 중요하다지만 요즘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5지 선다형’의 정량적인 강의평가가 교수의 자질을 가늠하는 현실이 엄습하자 교수들은 강의시간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 학생들은 세대 차이를 넘어 다른 세상 사람처럼 낯설게만 느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학과 교수의 체면을 모두 던지고 솔직하게 대학 강의의 현실을 톺아보자며 ‘커밍아웃’을 선언한 책이 나왔다. 최근 숭실대(총장 이효계)가 발간한 ‘기절초풍 대학 강의 실태’-『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2009)가 그것이다. 지난 3년간 강의평가 기타 의견란에 학생들이 쏟아낸 18만여건의 ‘희로애락’을 열여섯 가지 대분류로 묶어낸 책이다. 문항마다 학생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숭실대의 ‘커밍아웃’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강의를 재구성하고 효과적인 교수법도 덧붙였다.

 강의계획서, 수정본까지 배포하라

‘이 수업만은 꼭 지켜 내리라.’ 수강 신청 날 아침,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첫 강의가 설렌다. 교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맨손으로 등장한다. “아참, 강의계획서 필요하시죠? 다음 시간에 드리죠.” 다음 시간, 받아든 강의계획서를 보니 매 주마다 ‘굵직한 내용’을 배운다고 나와 있다. ‘이 많은 내용을 한 학기안에 공부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강의계획서에 대한 별도의 언급도 없이 강의는 시작됐다. 교수님은 이 내용 저 내용을 마구 얽어가며 강의를 진행했다. 갑자기 쪽지시험을 보기도 하고 시험 직전에 진도를 나가기도 했다.


학생들은 종종 강의계획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교수를 만날 때마다 황당하다. “교수님이 강의 도중에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학기 말에 자신이 뭘 가르쳤고, 가르치지 않았는지. 정말 모르셔서 물어보시는 것을 보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반면 강의계획서를 네 번에 걸쳐 나눠주는 교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강의계획서는 ‘초본’, ‘수정본’, ‘최종본’, ‘최종 완성본’으로 꾸린다. 이 때, 학생의 학습 효과를 위해서 강의계획서 내용이 변경됐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농땡이' 치는 학생들은 이름을 불러주세요

시계는 정시를 가리켰다. 조교는 빠르고 능숙한 목소리로 출석을 불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교수님이 강의를 시작한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강의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지각생과 화장실을 가는 척 슬그머니 뒷꽁무니 빼는 ‘농땡이 학생’이 겹친다. 교수님은 눈 뜬 장님마냥 묵묵히 수업을 이어간다. 수업 중 무단퇴실, 예방할 수 없을까.

“학생들이 수업 도중에 나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몇 번씩이나 봤지만, 출석점수가 만점인 경우도 봤습니다.”
출입문 근처에 앉은 학생들은 무단퇴실의 징후가 있는 요주의 인물들이다. 이들 중 한 학생을 선정해 출석부 이름 옆에 ‘문밖’이라고 메모해 둔다. 그 학생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면 “oo학생, 어디가요?”라고 묻는다. ‘문밖’ 학생은 당황한다. 이날 이후 무단퇴실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영어에 서툰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수강신청 책자를 살펴보니 영어강의가 부쩍 늘었다. 교양과 전공수업에서 차등을 못 느낄 만큼 영어강의는 확대되는 추세다.
교수들도 영어강의가 익숙치 않기 때문인지 유인물을 줄줄 읽어 내려가면서 수업시간을 ‘떼우기도’한다. 어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하라고 엄포를 놓고는 준비해온 영어강의 대본을 읊조린다. 영어회화 시간에 문법이나 책읽기, 글쓰기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교수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 특히 학원 강사가 교수로 초빙된 점은 놀라웠다. 대학에서 어떻게 학원과 같은 질의 교수가 초빙될 수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차라리 학원을 다니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것 같다.”
영어강의가 효과적으로 진행되려면, 영어에 서툰 학생들에게 자유발언기회를 많이 주면서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조교에게 일임한 수업(?)

3시간짜리 연강이다. 실험실에 들어섰다. 조교가 이미 강단을 꿰차고 서 있다. 학과 선배라는 그 남자 조교는 여학생들과 수다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남자들에겐 음료수나 갖다 바치며 선배대접을 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수업시간에 교수님을 본 적이 없다. 실험·실습강의는 주로 조교의 도움을 얻어서 한다지만 실험실에 얼굴 한번 비치지 않은 교수는 너무했다.

강의평가 의견란에 “조교가 학생들의 모든 과제를 채점하고 성적산출도 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평가기준은 미리 정해 공지해야

수업을 툭하면 빠지던 친구가 있었다. 학생식당에서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강의실로 가는 길에 친구놈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양호실에 다녀오겠다던 친구는 수업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한시간이 지났을까. 그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라들었다. ‘나 도서관에 과제하러 왔어. 출석 부르면 바로 연락줘.’ 이런 식으로 수업에 빠지기를 수차례, 하물며 중간고사까지 빠졌던 친구다. 학기 말에 친구는 A학점을, 나는 B학점을 받았다.

“쪽지 시험에 대한 채점 결과를 도대체 모르겠다. 맞는 답을 썼는데 점수가 깎이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답을 쓰니 결과가 다르다. 당시 이의를 제기했을 때,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실수할 리 없다는 말만 들은 것 같다.”

평가는 피드백과 연결돼 있기도 하다. 평가기준은 학생들이 수행한 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교수가 미리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학생들이 따라올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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