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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왜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대중은 왜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 김현화 숙명여대·회화과
  • 승인 2009.02.23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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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황금빛 비밀-토탈아트를 찾아서 展

미술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클림트 전시를 유치하면 대단히 호응을 받을 것이라는 예견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전시 유치가 어려워 힘들 것이라며 포기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한 달 전에 클림트 전시 오픈 초대장이 날아왔다. 클림트전이 결국 실현된 것이다. 전시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관을 찾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어 놀라웠다. 

Beethoven frieze: The hostile force, 1902, 혼합매체, 2.2x13.81m, Belvedere Museum,Vienna, Astria

‘클림트의 황금빛의 비밀’전은 ‘토탈 아트를 찾아서’라는 부제를 내걸고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2.2~5.15). 주최측이 붙인 전시제목인 ‘황금빛’은 귀금속 세공업자였던 집안, 공예를 공부했던 그의 학력, 비잔틴과 일본미술을 추구했던 예술적 환상 등 클림트 예술의 핵심적인 열쇠다. 이 열쇠로 비밀의 문을 여는 것이다. 부제 ‘토탈 아트를 찾아서’는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등으로 분리된 예술의 장르를 통합시키고자 한 그의 평생의 미술사적 업적을 기리는 용어라 할 수 있다.

Study for the ‘Theater shakespeares’ in Burgtheater, c.1887, Drawing, 27.3x42.2cm, Albertina.
이번 전시는 주요 작품이 몇몇 빠져 있어 단조로운 느낌을 주고 있지만,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초상화, 알레고리화, 풍경화 등의 유화와 드로잉을 주제별로 묶어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 전시는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라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부터 시작된다. ‘비엔나 분리파’는 1897년건축가, 공예가, 조각가, 화가 등 진보적인 미술가들에 의해 창시된 것으로 클림트가 대표가 돼 미술의 각 장르를 융합하는 토탈 아트를 목적으로 했다. 이들의 토탈 아트의 실현은 회원 21명이 1902년 베토벤 기념 전시를 기획하면서 구체화됐다.

이 때 클림트가 선보인 작품이 바로 「베토벤 프리즈」다. 이 작품은 세 개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大作으로 건축과 회화의 조화로운 통합을 시도한 벽화이다. 그러나 한가람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건축이 전혀 고려될 수 없기 때문에 토탈 아트의 진면목을 느낄 수는 없지만 클림트의 회화적 형식과 내용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베토벤 프리즈」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음울하고 선정적인 형상으로 행복에 대한 갈망, 인간의 고통과 투쟁, 승리의 송가를 펼쳐 보이고 있다.

대중은 노골적이고 음탕한 성적인 여성들의 모습에 분노했고 음악의 우상, 베토벤을 모독했다고 클림트를 비난했다.
어느 비평가가 「베토벤 프리즈」를 보고, “그의 프레스코는 정신과 연구소에 어울릴 것이다…”라고 혹평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클림트 예술의 본질을 꿰뚫는 지적이었다.

클림트가 활동하던 시기의 비엔나는 활발하고 역동적인 문화의 중심지였다.
특히 프로이드는 인간의 잠재된 성적욕망과 꿈과 무의식 세계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파헤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에로스와 죽음의 결합, 성적 유혹으로 남성을 지배하고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은 클림트를 비롯해 표현주의자들의 중요한 주제가 됐다.
클림트는 팜므 파탈적인 여성을 두 점의 ‘유디트’로 표현했다. 「유디트 I」(1901)은 현재 전시되고 있고, 「유디트 II」는 오지 않았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성으로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을 유혹해 그의 목을 잘라 이스라엘을 구해낸 영웅이다. 그러나 클림트의 「유디트 I」은 영웅이 아니라 성적 환희의 몽환 상태에 빠져 있는 음탕한 여인같이 보인다.

거슴츠레하게 뜬 눈, 약간 벌리고 있는 입, 왼손에 들고 있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성적 유혹으로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팜므 파탈의 전형이다.
‘유디트’가 착용하고 있는 화려한 목걸이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장신구로 그녀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성적 쾌락에 빠진 당대의 여성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황금빛의 화려한 장식은 귀금속 세공사였던 집안의 영향, 그리고 비잔틴 미술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천상의 마돈나에게 바쳐진 비잔틴 시대의 찬란한 황금빛을 클림트는 에로티시즘의 여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클림트의 회화에서 남성은 주인공이 아니다. 남성은 주로 여성과 함께 있으며 여성의 성적 갈망에 거세당한 듯한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베토벤 프리즈」의 베토벤조차 근육질의 건장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 안겨 짓눌린 듯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아담과 이브」(1917)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담과 이브는 성서 속의 인물이라기보다 비극적 사랑에 빠진 음울한 남녀의 모습같이 보인다. 이브의 뒤에 서 있는 아담은 자신의 운명을 이브에게 맡기는 것 같이 보인다. 성서에서도 아담은 이브의 유혹으로 죄를 지었다.
이브는 생명 탄생의 벌을 받았다.

클림트의 예술에서 에로티시즘, 죽음, 생명의 탄생은 윤회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그는 쇼펜하우어, 니체, 그리고 신비주의와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아 비극과 고통의 혼란 속에서 생명의 원천을 찾았다.
클림트에게 있어 인간은 운명을 거스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에게 있어 남성은 나약한 인간실존의 모습이고, 여성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1893년에 아울라 마그나(Aula Magna)대학의 주문으로 1907년까지 그린 천정화 3점(「철학」, 「의학」, 「법학」)에서 분명히 표현했다.

이 중 하나인 「‘의학’의 습작」(1898)이 전시되고 있다.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고 있는 누드의 여성, 소용돌이처럼 뒤섞여 있는 여성누드와 해골들, 화면 하단에 월계관을 쓰고 있는 여성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클림트는 대학의 주문 의도와 달리 병, 노쇠, 죽음은 의학이 발달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즉 의학의 무기력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대학당국은 분노했고, 무엇보다 팜므 파탈적인 에로틱한 여성이 대학의 학문적인 성격과 맞지 않다고 비난했다.

서양미술사에서 누드는 흔한 주제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누드는 현실의 여인이 아니라 요정이나 비너스 같은 천상의 존재였다. 클림트의 여인누드는 성을 갈망한다. 이번 전시의 몇몇 드로잉에서처럼 다리를 벌려 음모를 드러내는 여성을 용인하기는 힘들었다. 에로티시즘은 근대사회의 ‘불안’을 내포하며, 동시에 ‘새로움을 향한 변혁’과 ‘자유에의 갈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클림트 회화의 지향점이었다.

클림트는 일본 목판화의 선적 형태, 평면성, 강렬한 원색 그리고 식물문양에서 따온 구불구불한 곡선이 특징인 아르 누보(독일에서는 유켄트스틸)를 통해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벗어나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도래를 준비했다. 모더니즘 미술을 향한 그의 실험은 풍경화에서 단연 돋보인다.

그는 파리화단의 인상주의자들처럼 화면의 공간적 깊이를 차단해 2차원적인 평면성을 추구했고, 신선하고 청명한 대기와 빛을 활발한 붓 터치와 밝은 원색으로 표현해냈다. 그러나 그는 인상주의의 원칙인 대기의 빛을 포착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풍경은 에로티시즘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클림트는 사실적인 재현은 거부했지만 추상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토탈 아트를 꿈꾸었지만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무의식을 지배하는 성적욕망의 수수께끼는 20세기 초현실주의 탄생의 서문이 됐고, 토탈 아트 개념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까지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서 클림트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전시가 현대미술의 길목에 있었던 클림트의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김현화 숙명여대·회화과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세기 미술사-추상미술의 창조와 발전』 등의 저작이 있다. 같은 대학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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