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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漁父之利
[기자수첩] 漁父之利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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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5 00:00:00
올해도 어김없이 편집국에는 신임교수 채용과정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지원자들의 우울한 제보가 날아들었다. 그 중에서도 10년의 시간강사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전임교수의 꿈을 키워 왔지만, 결국 엉뚱한 이에게 그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던 마흔 넷 시간강사의 탈락사연은 또한 교수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 씁쓸하기만 하다.

“심사가 객관적이면 객관적일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교수들은 전혀 예상밖의 인물을 뽑더군요. 지원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였고, 교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연구업적이나, 강의경력 등 여러 점을 감안할 때 두 명 정도가 예상후보로 떠올랐지요. 저 하고 다른 한 지원자였습니다. 그런데 최종임용예정자로 결정된 이는 누가봐도 가장 가망성이 없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사결과가 통고된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교수들이 전해온 이야기는 학과의 화합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경합을 벌인 지원자는 학과 교수들 중 절대로 안된다는 사람이 있어 뽑을 수 없었고, 나머지 한 지원자는 타 대학 출신이어서 제외됐다는 후문이더군요. 그러다 보니 전혀 가망성이 희박했던 사람이 어부지리로 교수직을 얻게된 거죠.”

당사자의 주장이므로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심사과정에서 개개인의 능력보다 교수들간의 권력관계가 임용후보자를 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그가 제시한 연구업적과 각종 경력은 임용예정자의 그것보다 훨씬 많았다. 결국 객관적 심사가 이뤄졌다면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아무리 임용절차를 공명정대하게 만든다 해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절대 안된다는 식의 교수들의 자의적 평가기준과 교수들간의 힘의 역학관계가 존재하는 한 공정한 교수임용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속에서 정말 실력있는 후학들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과를 통고 받고 그는 두 달째 수염을 기르고 있다. “제가 수염을 기른 이유요? 이것이 교수님들 뒷바라지하며, 학과일 챙기며 10년의 강사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강사들 중 수염 기르는 사람 있는가 한번 보세요, 그런 것도 자기 맘대로 못하느냐구요?. 모르시는 말씀 그게 대한민국 강사들의 현실입니다.” 돌아서는 그의 어깨에 우리 학계의 어두운 그림자가 걸려 있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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