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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남성중심 사회, 여성교수의 현주소
[초점] 남성중심 사회, 여성교수의 현주소
  • 교수신문
  • 승인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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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절반의 세상’…임용과정 성차별 여전
"우리 과에는 여학생이 전체 학생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20명 남짓한 교수들 중에 여교수는 한 분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남학생들이 남교수로부터 받는 동성으로서의 친밀감이나 교육적 지원을 여학생들은 기대할 수 없어요. 취업만 해도 당연히 남학생들이 먼저 추천을 받습니다.” 지난 7일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열렸던 ‘국·공립대 여교수 채용목표제 도입 방안에 관한 공청회’에서 한 여학생은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토론에 참석한 전길자 이화여대 교수(화학과)는 “화학과의 경우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 서강대, 한양대 등에 여성 교수는 한 명도 없는 실정”이라면서 “우리가 과연 여성을 필요로 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표명하기도 했다.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않는 성차별적인 관행에 대한 불만이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한국여성개발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여성교수 실태조사보고서 ‘국공립대 여교수임용목표제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연구책임자 민무숙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들의 불만이 주관적 편견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미 교수사회의 성비 불균형은 치유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러 있다. 2001년 전체 교수 4만3천3백9명 중 여교수는 6천1백11명으로 전체교수의 14.1%에 불과했다. 1970년에 여교수 비율이 전체교수 중 9.5%인 것을 보았을 때, 지난 30년간 고작 4.6% 정도 늘어난 셈이다.

2001년도 4년제 일반대학의 교수 성별 구성비를 보면, 국공립대가 남교수 91.2%, 여교수 8.8%, 사립대가 남교수 84%, 여교수 16%의 분포를 이루고 있다. 국공립대의 여교수 비율은 사립대의 절반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사립대에서 여교수 비율이 높은 것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일부 여자대학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기 여학생의 비율은 국공립대(34.0%)와 사립대(36.9%)간의 격차가 거의 사라진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대학에서 여교수의 비율이 좀처럼 늘고 있지 않는데 반해 여자 시간강사의 비율은 근래 들어 크게 늘고 있다. 국공립대 여자 시간강사 비율은 1987년 21.0%에서 2001년 32.2%로 증가했다. 사립대도 현재 여자 시간강사 비율이 38.5%에 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자 시간강사가 남자 전임교원의 80% 수준인 반면, 여자 시간강사는 여자 전임교원의 3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박사인력이 정규 전임교원보다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인 시간강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여성박사들의 임용문턱이 높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나마 10%에 이르는 여교수의 비율도 특정학문분야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교수들의 전공분야는 국공립대와 사립대 모두 가정계(국립 87.4%, 사립 88.2%), 간호계(국립 100%, 사립 98.1%), 예술계(국립 28.4%, 사립34.7%)에 몰려있다. 따라서 가정계와 간호계를 제외할 경우 국공립 일반대학의 여교수 비율은 8.8%에서 6.7%로, 사립 일반대학의 여교수 비율은 16%에서 14.5%로 각각 떨어진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규모가 큰 대학일수록 여교수의 비율이 낮다는 사실이다. 사립대 가운데 여성교수의 비율이 15%를 웃도는 대학들은 대개의 경우 비교적 소규모의 지방사립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7.1%), 국민대(6.9%), 서강대(7.1%), 성균관대(10.1%) 등 상당수의 서울 소재의 주요 대학들이 사립대 전체 평균 여교수 비율인 16%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여자교수의 비율이 40%를 넘는 대학들은 대부분 여대이거나 종교계 대학들이었다.

한국의 교수사회에서 여교수의 비율이 이렇듯 낮은 것은 대학의 임용관문이 여성인력들에게 더 높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자교수와 시간강사의 경우 임용과정에서 성차별을 받았다는 것에 상당수가 긍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교수 임용면접시 여교수의 3분의 1 이상이, 강사의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서 불리한 질문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지원과정에서도 교수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사의 경우에는 3분의 2이상이 불리한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 논란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올 하반기 신규교수 임용부터 국·공립대에 여교수임용목표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다. 사실 임용목표제까지 도입해야 하는 현실이 바로 한국 여교수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 이점에서 여성교수의 비율을 전체 교수의 20%로 늘리도록 권장하는 여성교수임용목표제의 성공여부는 바로 남성위주로 짜여진 교수사회의 몫으로 남아있다. 여성교수임용목표제가 정체된 교수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은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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