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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글쓰기 가이드라인’ 제시한 정해룡 부경대 교수
‘윤리적 글쓰기 가이드라인’ 제시한 정해룡 부경대 교수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9.02.23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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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만 정해놓으면 뭐합니까? 실천해야죠”

정해룡 부경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정해룡 부경대 교수(54세․영어영문학과,사진)가 ‘윤리적 글쓰기 가이드라인’을 시험적으로 제시했다. 미국의 법리학자이자 현직판사인 리처드 앨런 포스너의 『표절이란 무엇인가?』(The Little Book of Plagiarism)를 우리말로 옮기고 여기에 ‘가이드라인’을 덧붙여『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산지니, 2009)를 펴냈다.
정 교수는 이 책에서 글쓰기 윤리의 위반 사례와 모범적인 글쓰기 사례를 알기 쉽게 정리했고, 각 사례에 따른 18가지 연구윤리지침도 제시했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은 학문활동의 올바름과 그릇됨을 가늠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우선적으로 확립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초․중등학교 학생부터 올바른 글쓰기와 연구윤리 의식을 체득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고 그는 말한다. 다음은 정 교수와 일문일답.

△ 이 책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포스너는 저작권 소송의 재판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표절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문학, 학문, 음악, 미술, 영화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표절의 문제를 다루면서 최근의 표절 사건, 표절의 정의와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의 문제, 작가(writer)와 저자(author)의 차이, 표절과 저작권침해의 차이, 표절에 대한 처벌방식 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가 한창 표절시비로 시끄러울 때 <뉴욕타임즈 북리뷰>에서 포스너의 책을 소개한 글을 읽으면서였습니다. 포스너 역시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표절논쟁에 자극을 받아 책을 썼기 때문에 제게는 아주 적절한 책이었습니다.”

△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입니까.
“이 책은 표절이라고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지침서 형태로 딱딱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라, 문화ㆍ역사적 관점에서 흥미있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최근 학계와 문화계에 크고 작은 표절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도 표절의 문제에 대한 논의와 사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포스너는 예술생산물에 있어서의 표절과 창의적 모방의 문제, 대학사회나 지식인층에서 벌어질 수 있는 글쓰기의 윤리위반의 문제, 나아가 인터넷의 발달로 야기될 수 있는 표절과 저작권 위반의 문제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표절이라는 문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식으로 이해되어왔는지를 보다 거시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표절의 문제를 접근할 때 일정한 안목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련한 법리론가의 명성을 가진 저자는 표절의 문제를 판단할 때 법률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접근함으로써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입니다.”

△ 번역 내용과 함께  ‘윤리적 글쓰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요. 이 가이드라인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저는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학생이나 교수의 글쓰기의 윤리위반은 일차적으로 위반과 탈선의 경계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글을 쓰는 가운데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건 범하기 쉬운 위반사례를 정리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나쁜 글쓰기의 습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비록 잠정적인 정도나마 제시한다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에 대략 18개의 연구윤리지침을 만들어본 것입니다. 이는 아주 초보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만들어본 지침이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나 그 집단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용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앞으로 이 지침이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의 글쓰기 윤리교육에 활용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각 대학이나 학회에서 연구윤리규정을 제정했지만, 여전히 연구윤리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현재 학계의 연구윤리 실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표절의 공방은 표절의 기준이 모호했던 시절이 남긴 좋지 않은 결과물이 낳는 사건들이라고 보아야합니다. 과거에는 곧잘 하나의 논문이 다른 이의 청탁에 의해 다른 학술지나 대중잡지, 혹은 학교 내의 출판물 등에 별 의식 없이 실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때는 교수의 업적평가가 승진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았고 또 지금과 같이 학술진흥재단과 같은 곳에서 연구비를 대량으로 수주하는 기회도 적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구비나 승진의 환경이 크게 달라진 지금도 여전히 실험실이든 강의실이든 혹은 연구실에서 연구윤리를 위반한다면 그 연구자는 대범한 사람이거나 아마 대단히 둔감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연구윤리의 지침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고 처벌의 위험을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대학이나 학회에서 연구윤리규정을 제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스스로 했다기 보다는 다소 강제성이 있었습니다.(왜냐하면 대학의 경우 교과부의 공문, 학회의 경우 학진에서 학술지 평가시에 윤리규정이 있으면 가점 처리 등). 현재 대학이나 학회의 연구윤리규정의 경우 대부분이 선언적 의미의 규정에 불과합니다. 주로 표절이나 연구윤리위반에 대한 간단한 정의와 더불어 표절여부를 내부에서 판단할 수 있는 기구 및 조직에 관한 사항에 불과하다는거죠. 문제는 규정만 정해 놓으면 무엇합니까? 실천을 해야지요. 결국 표절은 엄격한 규정보다 개인의 윤리의식이 우선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여러 연구부정행위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늘날 많은 연구성과물이 인터넷이나 공공의 장에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표절한 연구결과물은 쉽게 포착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표절이나 자기표절 혹은 이중게재와 같은 위반사례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해도 좋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찾지 않은 자료를 자기가 직접 찾았다고 주장하는 그런 인용의 위반이라든가 하나의 논문으로 충분한 연구를 분할해서 몇 개로 나누어 생산하는 것과 같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 표절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가장 나쁜 위반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도 남의 성과물에 자기의 이름을 올리는 그런 경우입니다. 이는 권력관계의 하위에 있는 내부자의 고발이 아니고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악질적인 경우입니다. 연구자의 양심을 저버린 이런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 현재 연구윤리 확립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연구윤리의 위반의 경우를 명시하고 윤리적 글쓰기의 지침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위반의 경우에 따르는 처벌의 규정을 확정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입니다. 물론 그것은 연구의 분야나 집단의 성격에 따라 그 구성원의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 역시 표절(자기표절)과 관련한 ‘애매한 부분’이 많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합의 과정이 필요할까요.
“‘애매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표절에 대한 정의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상식적인 지침과 처벌이 부재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럴수록 관계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고 마침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물이 도출돼야겠지요. 연구자들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합의 가운데 처벌의 조항을 마련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범한 위반까지 소급적용하려한다면 그 합의는 분명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위반의 성격을 더 따져보는 지혜도 필요하고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대승적인 양보와 여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교수 출신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의 하나로 ‘논문검증’이 일반화 됐습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학계의 관행이었다’는 말로 무마하고 있는데요. 최근엔 의학계에서 자진 논문 철회 등 ‘자정운동’도 소개됐는데, 교수사회가 이전 논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옳다고 보시는지요.
“‘학계의 관행이었다’는 말도 한계가 있는 변명이고 논문 철회 등 ‘자정운동’도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의성과 같은 위반의 성격을 더 따져보는 지혜가 무척 요구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이기 때문에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정말 변명의 여지가 있다면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고 신분상의 불이익보다는 연구비 회수와 같은 경제적 처벌도 한 가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룡 교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 부경대 대학평의회 의장, 한국세익스피어학회 학술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부산인적자원개발원장을 맡고 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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