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8:10 (목)
[신간리뷰]_인문학과 과학의 눈으로 미래를 말한다
[신간리뷰]_인문학과 과학의 눈으로 미래를 말한다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2.02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식의 이중주』(고인석 외 지음, 해나무, 2009, 292쪽)

요즘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공부는 앎을 목표로 할 텐데, 앎이란 왜 중요할까. 앎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예측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앎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문명을 일구며,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런 연유로 앎의 전선에는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가 투영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9세기 유럽에서 발전된 열역학, 전자기학, 진화론, 마르크스주의, 실증주의 등의 흐름은 근대 산업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앎의 최전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미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교수신문>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사이언스타임즈>는 공동으로 ‘학문간 대화로 읽는 공동키워드’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지식 키워드를 통해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을 읽고자 하는 기획이었다. 이 기획 기사가 최근 『지식의 이중주』라는 책으로 출간이 됐다.

13가지 주제, 39가지 시선들

『지식의 이중주』는 13가지의 키워드를 담고 있다. 기후변화, 대체에너지, GMO, 뇌와 의식, 근본 실재, 창의성, 지능, 디지털 치매, 인공 지능, 사회생물학, 시간, 우연, 죽음 등이 그것이다. 기후변화나 대체에너지, GMO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근본 실재, 뇌와 의식 등은 21세기 최고의 학문적 과제에 해당한다. 창의성과 지능은 미래 인적 자원의 개발의 토대와 관련이 있다. 디지털 치매, 인공 지능,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본성과 미래 인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시간, 우연 그리고 죽음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이 책은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주제들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각자의 독법을 보여준 점에 의의가 있다. 때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관점이 대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의 다양한 얼굴들을 찬찬히 보여주기도 한다. 한 주제에 2명의 전문 학자와 1명의 기자가 ‘說’을 푼 셈이니, 39가지의 시선이 직교하는 형국이다.

YES와 NO의 얽힘에서 문명은 전진하고 지식은 충만해진다

유행처럼 퍼져있는 통섭, 학제 간 연구는 대다수가 조화로운 협동 연구만을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과학문들이 상호 협력을 한다는 취지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수사만 화려하고, 이름만 협력연구이고, 통섭인 경우가 많다.

어떤 사물, 어떤 개념, 어떤 사건 및 현상에 대한 각각의 학문, 각각의 학자들의 접근법은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물리학자에게 세상은 입자들의 합이지만, 사회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 사회 집단, 국가 등이다. 철학자가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인간됨을 논한다면, 생물학자는 인간을 생물학적 기제로 바라보는 것을 업으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섭은 그리고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상호 호의와 주례비평을 거부한다. 자신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알고 있는 바에 따라서 단호히 때로는 YES를 때로는 NO를 외친다. 예를 들어 전자공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인간 수준의 인공 지능이 가능하다고 말한 반면에,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응수한다. 사회학자인 한 저자는 휴먼인터페이스의 범람과 디지털 치매 현상에 우려를 나타내지만, 정보대학원에 재직 중인 한 저자는 인간 진화의 과정일 뿐이라며 안심하라고 말한다.

이렇듯 예와 아니오,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가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는 인류의 생존, 지식의 최전선에 관련된 주제를 감싼 미묘한 주름을 보게 된다. 그렇다, 주름, 이것이 핵심이다. 반박과 재반박, 논전과 응수, 주장과 비판이 얽힌 굴곡이 깊어질수록 지혜의 나무는 무성해지는 법. 이 책의 저자들은 바로 그 주름을 통해 문명의 진전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곧 지식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내적 갈등과 상호 오해의 국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무거운 주제들, 허나 지레 겁먹진 마시길

이 책은 분명 무거운 주제들을 담고 있다. 인간 정신은 뇌 분자 운동의 산물이라든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든가, 죽음은 생물이 감당해야할 필연적 법칙이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가볍게 받아들일 순 없다.

심각한 주제들이 접근성을 다소 감소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때로는 진지해지기도 해야 하는 법 아닌가. 책이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 삶의 장기적 전망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이 방향을 잃었다 생각한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래도 너무 진중한 느낌이 드는가. 그렇다면 올해 2차로 진행되는 ‘학문 간 공동 키워드’ 기획 기사들에 주목하기 바란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