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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_녹색을 참칭하는 그대의 이름은 자본
[북리뷰]_녹색을 참칭하는 그대의 이름은 자본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1.30 16: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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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의 유혹 :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스탠 콕스 지은, 추선영 옮김, 난장이, 2009, 352쪽)

정치, 경제, 사회의 총체적 위기가 운운되는 요즘, 먹고 살기 어려우니 책을 읽고 자기 성찰을 할 여유가 더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인문 사회과학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 찬스라고도 말한다. 평온한 일상과 정상적 삶의 궤도를 흔들고 있는 정세가 우리 안의 무언가를 깨우기 때문이다.

이런 관측에 기대를 하는 탓일까. 연초부터 출판사들은 철학, 정치, 역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만치 않은 주제의 책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환경 분야 책들의 약진이 눈에 들어온다. 『현대 환경사상의 기원』(조셉 스타이거 지음, 박길용 옮김, 성균관대출판부, 319쪽), 『남북한 환경정책 비교연구 1, 2』(윤여창 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338, 286쪽), 『그린칼라 이코노미』(반 존슨 지음, 함규진 외 옮김, 페이퍼로드, 319쪽), 『녹색성장의 유혹 :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등이 그것이다.

사실 환경은, 누구나 동의하듯, 우리 시대 가장 커다란 화두 중 하나이다. 정부나 일부 시민단체가 쓰레기 줄이기나, 덜 먹고 덜 버리기, 생활 전기 절약하기 운동을 전개한 역사도 짧지 않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모토로 일련의 화려한 계획들까지 발표했다. 지식인들도 틈만 나면 환경을 외치며 자신의 전공분야에 환경을 접목해, 환경 경제학, 환경 사회학, 환경 철학, 환경과 신학 등 학제 간(?) 연구에도 활용하고 있다.

녹색의 탈을 쓴 자본, 믿을만한가

이렇게 온 나라와 세상이 환경을 보호하자고 떠들썩하니, 이제 희망 섞인 관측을 해도 좋을까. 모두가 합심했으니,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일만 남았을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가.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녹색성장의 유혹』을 읽어볼만하다.

식물유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래농업을 위한 작물 연구를 수행하고 저자는 “그 모든 요인 뒤에는 자본주의 경제가 자리한다”는 다소 광범위하지만 명쾌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보다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려면 기업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윤을 희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나설 기업 소유주나 경영자는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저자의 주장이 다소 모가 나 보일 수 있다. 환경 산업을 유인책으로 기업도 살고, 나라 경제도 살고, 환경도 보호하는 일거삼득을 향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이럴 때 저자는 제본스 패러독스Jevons Paradox를 상기해보라고 권한다. 환경 산업으로 인해 “높아진 에너지 효율성은 경제 확장에 기여해서 결국 더 많은 에너지 소비나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는 역설을 말이다.

‘환경’이라는 상품에서 이윤을 얻은 기업의 다음 행보는 자연으로 회귀가 아니라, 재투자와 생산증대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더구나 저자는 “특별히 탐욕스럽거나 완고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물적 현실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고 냉정하게 코멘트한다.

건강 검진 자주 받고, 유기농 식품 먹고, 다이어트 하면서 환경을 살린다?

아직 저자의 주장이 냉소로만 들린다면 그가 드는 몇 가지 사례만 검토해도 충분하다. 우선 저자는 민간 병원의 과잉진료와, 질병 부풀리기와 겁주기의 선수인 제약회사의 행태를 꼬집는다. 건강을 몸소 챙겨주는 병원과 제약회사 관계자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는 이에게 저자는 다음을 제시한다.

“1997~2002년 사이 환자를 대상으로 부당한 소변검사가 대량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불필요한 검사 때문에 2만 8,000건의 불필요한 신장생검이 이루어졌고, 합병증을 일으킨 경우가 1,500여 건에 달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질병을 안게 된 새로운 유형의 환자들을 양산하게 됐다.” 병원에 돈 좀 더 쓰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병을 야기할 정도라는 말이다. 심지어 “어느 추정치에 따르면 치료부작용으로 다시 치료받는 환자는 전체 의료건수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쉽게 말해 병 주고 약 주고, 다시 병 주는 꼴이다.

저자의 시선은 다이어트 산업에도 이어진다. 그 효과에 논란이 많은 황제 다이어트를 보자. 저자의 계산에 의하면 “450g의 쇠고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같은 무게의 밀가루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68배다.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에너지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해 봐도 식물성 단백질을 생산할 때보다 동물성 단백질을 생산할 때의 비용이 8배 많다.”

더구나 동물을 키우기 위한 곡물 생산을 위해 토지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고, 재배과정에서 “비료나 살충제를 아낌없이 다량 투입해야”하니, 환경사랑과는 거리가 한참이다. 이 와중에 3D 중에서 3D 업종으로 알려진 육류 산업 종사 노동자들의 삶과 인권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친환경의 대명사인 유기농 산업도 다르지 않다. 저자의 지적에 의하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무경간농법은 더 많은 작업량과 연료를 필요로 한다. 또한 유기농식품 자체가 이윤을 내기 힘이 들므로, 대량 생산과 유통도 피할 수 없다. 유기농산물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환경에 부하를 가하는 요인들이다. 더구나 유기농 식품은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식거리는 아니지 않는가.

생태사회주의, 희망어린 대안이 내포한 그늘에 대한 직시 아쉬워

저자는 여러 사례의 검토를 마치면서 책의 말미에서 “어디에나 존재하고 멈출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경제적 힘을 멈추지 못한다면, 이 경제적 힘으로 인해 누구나 살기 좋은 환경에서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매듭을 짓는다.

이런 우울한 현실에 대한 “가능한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생태사회주의다. 환경 문제를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는 취지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체계의 일부를 구성할 비교적 작은 특화된 조직과 구조를 발전시켜”, “지구 전역의 모든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노동자 소유, 환경세,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반독점법 시행, 부의 재분배를 촉구”해 “소수에 불과한 소유계급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고 현존 경제 질서를 넘어서”자고 말한다.

그런데 “희망이란 가장 좋고도 가장 나쁜 유혹”이라고 블로흐는 얘기했던가. 저자는 결국 희망어린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정치에도 제본스 패러독스와 같은 현상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와 빈농의 국가 건설을 외치다가 역사상 가장 기괴한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한 구소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성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환경파시즘으로 이어지진 않을지,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정부 외부”의 단체, 사상, 운동이 대중과 환경의 이익에 ‘선량히’ 복무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물음을 던지고 싶다. 이는 환경에 대한 강조를 떠나 보다 미묘한 정치적 전략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인데, 쉽지가 않은 문제다. 좀 더 민주적이고, 좀 더 개방적인 대안 체제를 모색하자는 말은 쉽다. 문제는 말만 쉽다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생태계의 생명을 유지하는 체계”의 보존과 “품위 있는 생활”의 양립은 어떻게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품위의 기준은 어느 정도인지, 혹자가 '난 생태주의자들이 선을 그은 품위의 수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좀 더 검소하게 사시지요'라고 권하면 끝날 문제일까.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자본가들이 녹색의 탈을 썼더라도, 이윤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물적 현실의 귀결이라고 저자는 냉정히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런 냉정함이 책의 말미에까지 이어지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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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2009-02-01 01:26:38
소련식 사회만들자는 거 아니거든요.
기존의 사회주의 역사를 반성하고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고 그게 가능하려면 반드시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단순화해서 비판하면 뭐가 좋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