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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오노레 도미에』(소나무刊) 펴낸 박홍규 교수
[저자인터뷰]『오노레 도미에』(소나무刊) 펴낸 박홍규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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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에의 풍자화는 민주주의의 표현입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의 지적행보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번역한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刊)의 무려 60페이지가 넘는 역자후기를 기억할 것이다. 기억에 그치지 않는다. 박 교수의 차마 생생한 그 격분은 지워지지 않는 무엇으로 독자들에게 남아있으리라. 돌이켜 보건대, 그의 격분은 민족주의나 쇼비니즘과는 무관했다. 팔레스타인 태생 지식인 E. 사이드가, '악마의 시'를 썼다는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의 지탄을 받았던 샐먼 루시디에게 표현의 자유라는 보호벽을 쳐주었듯이 말이다. 박 교수의 분노는 오히려 부당한 권위를 향한 것이었고, '우상숭배'를 용인하는 지식인의 직무유기에 대한 것이었다.

권위에 저항하기, 분노에서 웃음으로

10년이 흘렀고, 박 교수는 조금은 느긋해진 듯 보인다. 삶의 곳곳에 스민 권위주의에 오노레 도미에라는 프랑스 만화가의 풍자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오노레 도미에는 우리 시대 지식인들이 한번쯤은 눈 여겨 볼만한 인간상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모든 부당한 권위와 대결하면서 19세기 프랑스를 치열하게 살아냈던 풍자만화가이지요. 그를 통해서 시대를 사는 지식인, 문화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도미에가 살았던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로 등극했던 시대이다. 부조리함 일색이었던 시기, 빅토르 위고나 언론인이면서 이후에 프랑스 대통령이 되어 언론탄압에 앞장선 아돌프 티에르 같이 당대의 지식인들이 도미에의 한 컷 만화 속에 등장한다. 루이 나폴레옹처럼 무능한 야심가에 위대한 문인 위고가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은 지금이야 역사의 지리멸렬한 단면으로 읽을 일이겠지만, 동시대인들에게는 어이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도미에는, '빅토르 위고와 에밀 지라르댕은 루이 왕자를 왕으로 받들고자 하나 받침이 시원찮다'라는 제목의 풍자만화로 그들의 허위에 웃음을 보낸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 개인이 던지는 조롱만으로는 '전형'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 "풍자는 개인의 출중함만으로 통하지 않는 장르예요. 저널리즘에 그치지 않고 오래 남으려면 시대정신으로 응집되어야 합니다. 튼튼한 연대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삶의 저변에서 싹터서 시대 전체를 싸안을 수 있는, 머리의 연대가 아닌 마음과 행동의 연대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도미에의 그림이 정치풍자만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일상적 삶의 궤적을 좇아가고 있는 것에 박 교수는 시대를 꿰뚫는 풍자의 힘을 읽어냈던 것이다.
모든 부당한 권위를 웃어날려 버리고자 하는 박 교수를 사람들은 아나키스트라 분류한다. 그러나 박 교수가 부여안고 있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피부감각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70년대에 대한 '근원적 기억'을 품고 사는 그는 생활 속에서 나름의 소박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체현해낸다. 교수 월급을 반으로 줄여서라도 시간강사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카피레프트 운동의 뜻에 공감해 출판인세를 받지 않으며, 가능한 한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도시락을 싸는 것까지, 그의 삶은 돈과 권력 그리고 힘에서 가능한 한 멀리 벗어나려는 선택과 실천의 과정으로 짜여져 있다. 이런 삶에서 민주주의를 '피부감각'으로 느낀다는 그만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흥미롭다.

인물평전쓰기는 '위인격하작업'

인물평전을 잇달아 써내고 있으면서도 박 교수는 '위인'을 믿지 않는다. 위대함이 조장하는 신비에 대한 염오때문이리라. 그는 오히려 '세계보통사람전집', 혹은 '내친구전집'을 낼 생각이라 한다. 농담인 듯 너털웃음과 함께 흘리는 말이지만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재작년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개마고원 刊)을, 작년 '내 친구 빈센트'(소나무 刊)를 썼던 이유도 마찬가지. 그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무', 혹은 '친구'라는 수평관계로 이른바 '위인'들과 만나기를 권면한다. 예수나 부처를 다룬다 하더라도 그들과 대화하는 글을 쓰겠단다. 박 교수의 표현대로 그것은 '격하작업'이다. 당연히 그가 그려내는 윌리엄 모리스, 빈센트 반 고호, 오노레 도미에는 그간의 평가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고호만 해도 자신의 잘려진 귀를 감싼 얼굴의 '자화상'이나 "자기 희생에 의한 죽음, 황색의 자살까지 담겨져 있는" '해바라기'를 그린 광기와 천재의 화가로만 서술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린 민중화가 빈센트를 복원해 내었던 것이다.
'위인격하작업'이라는 일종의 '숨은그림찾기'는 박 교수의 개인적 지향을 선명히 보여준다. 바로 르네상스적 全人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다. 윌리엄 모리스처럼 화가, 시인, 사상가의 면모를 갖춘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었던 까닭은 '한 인간의 위대한 작품'이 아니라 '위대한 작품을 낳은 한 인간'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의 관심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로 기운다. "14, 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수많은 르네상스적 인간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렇게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피렌체는 하나의 '작은 자치사회'가 아니었을까요." 박 교수는 제 2, 제 3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던자유로운 인간들을 계속해서 발굴해내겠다고 했다. 쟈코메티, 고야, 존 레논 등이 그의 격하를 기다리고 있단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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