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1:50 (금)
[해외통신] 일본: 평화헌법 개정 초읽기에 들어가
[해외통신] 일본: 평화헌법 개정 초읽기에 들어가
  • 박영준 / 일본통신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3-22 14:58:16
일본은 과연 지난 반세기 동안 내정과 외교를 규율해온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포스트 냉전체제의 현실에 조응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것인가. 1946년 평화헌법이 제정된 이후 주로 보수정치세력을 중심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방기한다”(일본헌법 제9조 1항), 혹은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제9조 2항)라고 규정한 제9조를 둘러싸고 그 해석변경론이나 개헌논의가 제기돼 왔지만,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개헌론은 개헌주도세력의 다변화와 쟁점의 다원화라는 새로운 특성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개정 논의 벌어지고 있어

일본 국회에서는 이미 2000년에 중참원 양원의 헌법조사회가 5년 시한으로 발족돼 세계 각국의 헌법실태를 조사한다거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개헌논의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2000년 9월과 2001년 8월 두 차례에 걸친 유럽 각국 헌법실태조사에서는 독일의 징병제,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왕실제도, 이스라엘의 수상 公選制, 러시아의 신헌법 개정 경위 등에 관한 자료가 심도 있게 수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일본 국회가 비단 제9조에 국한하지 않고 현 헌법에 규정된 통치구조 전반의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예비조사작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헌법조사회가 주요 지식인들을 초빙해 개최해온 개헌에 관한 의견청취회의의 다양한 테마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2000년 4월과 2001년 10월, 헌법조사회에서 각각 강연한 기타오카 신이치 도쿄대 교수와 이오키베 마코토 고베대 교수, 그리고 오누마 야스아키 도쿄대 교수는 그들의 지론에 따라 헌법 제9조 2항 개정의 필요성 및 자위대의 군대인정 등을 역설하고 있다. 2001년 3월에 초빙된 사카모토 다카오 가쿠슈인대 교수와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아시아안전보장체제의 구축방향에 대해 대립적인 전망을 펼쳐 보인 바 있고, 2001년 11월에 강연한 하세베 야스오 도쿄대 교수와 모리타 아키라 도쿄대 교수는 천황원수설과 수상공선제 등 통치기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헌법체제 전반에 관한 국회 차원의 개헌논의 확산이 고이즈미 수상 및 자민당의 강력한 개헌의지에 의해 추동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고이즈미 수상은 취임 이전부터 제9조 2항의 강력한 개정론자였으며, 수상 취임 이후에는 9·11테러와 연계해 소위 유사법제의 정비를 추진하면서 헌법개정의 여건을 조성하는 데 신속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그는 사적자문기관으로서 ‘수상공선제를 생각하는 간담회’를 조직해, 현행 헌법 하에서 국회에서의 표결을 통해 선출하도록 돼있는 수상의 선출방식에 대한 개편도 검토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간담회의 멤버인 이노구치 쿠니코 소피아대 교수가 선거인단을 통한 수상의 국민간선제를, 쿠보 후미아키 게이오대 교수가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한 대통령제적 수상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그 내용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의 개정을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수상 및 자민당 중심의 개헌 움직임에 대해 제1야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오히려 한술 더 떠 적극적인 개헌론을 전개하고 있다. 같은 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당수와 간 나오토 간사장은 이미 2000년 9월에 발표한 당의 정책구상에서 수상공선제의 도입과 헌법 제9조의 개정, 자위대의 군대로서의 인정 등을 명문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계의 여당과 제1야당이 공통적인 개헌론을 주창하고 있는 가운데, 평화헌법의 고수를 주장하고 있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목소리의 반향이 점차 약해지고 있음은 어찌할 수 없는 추세일 것이다. 2001년 4월 아사히신문이 일본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비록 헌법 제9조의 개정에 관해서는 반대여론이 74%로 나왔지만, 헌법 자체의 개정필요에 대해서는 47%가 찬성해, 반대의견 36%를 능가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개헌론이 일본 국민의 상당수에 파고들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탈바꿈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현행의 평화헌법은 개헌에 관해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발의와 국민투표에 의한 승인을 그 절차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21세기의 일본이 평화헌법을 수정해 ‘보통국가’의 헌법으로 탈바꿈할 것인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 개정의 진폭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는 금후 지켜보아야 할 것이지만, 보통국가의 헌법으로 갈아입을 일본과 어떻게 대면하면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평화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구상하는 것이 새로운 세기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가될 것 같다.

박영준 / 일본통신원 도쿄대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