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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신선한 시선에 주목하다
현실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신선한 시선에 주목하다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2.31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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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서평위원들이 권하는 이 계절의 독서목록

<교수신문> 서평위원들은 이번 겨울 방학에 어떤 책을 읽거나 독서를 권할까. 서평위원들 역시 올해의 출판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미래 대안이라는 주제에 착목해 독서할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서평 위원들은 기성의 고루한 이론과 개념을 탈피해 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시선을 통해 현 정세를 발본적으로 해부하자고 말한다.

우선 경제위기와 관련해 경제학 저작의 목록이 엿보인다. 경제학자인 홍훈 연세대 교수는 『세계화의 불만』(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 세종연구원)과 『고삐풀린 자본주의』(글린 지음, 김수행 옮김, 필맥)를 말한다. 경제 위기가 최대의 화두인 요즘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면밀히 검토하자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금융자본에 대한 감독 부실, 모럴헤저드 등에서 현 경제위기의 원인을 지목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있다는 점을, 이 책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철학자인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경제학 관련 책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홍기빈 지음, 책세상)를 제시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를 경유해 경제를 말하는 흥미로운 저작이다.


경제 문제가 정치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상식. 답답한 정치 현실에 대한 이성적이고 급진적인 비판을 주문하는 책에 대한 독서 계획도 잡혀있다. 영문학자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양창렬 옮김, 궁리)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양창렬 옮김, 길)를 상위의 독서 목록으로 제시한다. 랑시에르는 불화를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특유의 화법과 개념으로 연구자는 물론이고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고 있다. 합의를 가장한 편협한 독재의 논리에 대해 랑시에르가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다. 정치학 전공자인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노무현시대의 좌절: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엮음, 창비)과 함께 겨울방학을 날 전망이다. 이명박 정권 시대에 노무현 시대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 교수는 또 『세계인권사상사』(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 길)도 언급하는데, 인권이 문제되고 있는 요즘의 정세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 매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보다 차분히 진단해보자는 취지다. 장은주 교수는 여러 해외학자들의 논문집인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쉐보르스키 외 지음, 안규남 옮김, 후마니타스)를 제시한다. 이 책은 법과 민주주의가 갖는 긴장과 상호 관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법과 민주주의의 이름을 너나할 것 없이 외치는 요즘의 정치 현실의 실상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

경제와 정치의 실낱이 시간 속에서 얽히다보면 그것이 곧 역사가 아닐까. 긴 겨울 방학을 역사라는 長江에 빠져 지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학자인 강진아 경북대 교수는 아리기의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최홍주 옮김, 모티브북)를 독서 목록으로 꼽는다. “아리기를 비롯한 사회사적 세계체제론의 일단을 보는 데 충분히 유용하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사의 패권 이동을 자본주의적 축적 체제의 교체와 결부시켜 설명”한다는 점으로 아리기의 체제론을 요약하는 강 교수는 16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전말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볼 것을 권한다.

강 교수는 또 루퍼트 스미스의 『전쟁의 패러다임-무력의 유용성에 대하여』(황보영조 옮김, 까치)도 말한다. “군사사 연구가 발전하지 못한 한국학계에서 번역서로서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사학자인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도미니크 라카프라의 『치유의 역사학으로: 라카프라의 정신분석학적 역사학』(육영수 옮김, 푸른역사)을 지목한다. 정신분석학으로 역사적 상처를 고찰해보는 책인데, 미시적 프레임인 정신분석과 거시적 프레임인 역사를 결합한 흥미로운 저작이다.

역사를 주시하다보면 경제적, 정치적 불의가 언제나 존재했다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바로 식민주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식민주의의 면면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장은주 교수는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김재오 옮김, 창비)을 식민주의 고발의 책으로 대뜸 지목한다. 보편주의를 자처하는 유럽의 외침이 기실 식민주의적이라는 월러스틴의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국문학자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우선 하정일의 『탈식민의 미학』(소명출판)을 언급한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근대문학을 심층적으로 탐사한 역저”라는 것이 그 이유다.

정치, 경제, 역사 등 거창한 테마들을 다루다 보면 소홀해지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여성주의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김혜경 전북대 교수는 다른 교수들이 미처 언급하지 못한 여성주의 저작들을 대거 목록에 올린다. 『보이지 않는 가슴-돌봄의 경제학』(낸시 폴브레, 윤자영 옮김, 또하나의문화)과 『다른 세상에서』(스피박 지음, 태혜숙 역, 여성문화이론연구소)는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또 김 교수는 『한국 젠더정치와 여성정책』(심영희 외 지음, 나남출판)에 대해서 “분야별 전문가의 꼼꼼한 정책연구서”라는 이유로 겨울 방학과 함께 나볼 요량이다.

크고 딱딱한 책들에 곤욕을 겪는 것은 서평위원들도 마찬가지일까. 올해는 유난히 가독성을 고려한 평전과 문화 비평서가 눈에 띤다. 구갑우 교수는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나캄 미리 지음, 김순희 옮김, 효형출판)과 『김태준 평전: 지성과 역사적 상황』(김용직 지음, 일지사)에 눈독을 들인다. 곽차섭 교수도 평전을 언급한다.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장 폴 브리겔리 지음, 성귀수 옮김)와 『밀턴 평전』(박상익 지음, 푸른역사)등이 그것이다. 소소한 재미를 탐독하다가, 어느새 범상치 않은 교훈을 얻게 하는 평전의 장점이 살아있을지가 관건이다. 권성우 교수는 서경식의 『시대를 건너는 법』(한승동 옮김, 한겨레출판사)을 목록에 올리면서 “재일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 밖에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봉재 교수는 혼돈과 상실의 현대를 읽는 프레임으로 가치를 제안한다. 이 교수는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제롬 뱅데 엮음, 이선희 옮김, 문학과 지성사)를 권하면서 “물질문명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가치의 자리, 기능은 애매해진다”고 코멘트한다. 대학 개혁에 관심이 많은 그는 『대학혁명』(제임스 두데스탯 지음, 이철우 외 옮김, 성균관대 출판부)을 읽어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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