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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나르시스의 꿈』(한길사 刊) 펴낸 철학자 김상봉
[저자인터뷰]『나르시스의 꿈』(한길사 刊) 펴낸 철학자 김상봉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2.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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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2 16:57:44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다. 한 철학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이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슬픔과 눈물 속에서 존재의 진리를 보았다는 말일 것이다.” 한용운의 시에 자신의 철학을 反芻하려는 철학자 김상봉 씨. 그는 “슬픔 이외에는 아무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거나 “슬픔은 철학의 어머니”라고 세 번째 저서 ‘나르시스의 꿈’에서 단정짓는다.

“철학은 지금까지 밝은 것만 추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삶에는 밝은 만큼 어두운 면이 있지 않습니까. 인생을 공정하게 바라본다,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가장 깊은 어둠 또는 고통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슬픔의 철학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려는 듯이 보였다. 밝은 것만 보려던 철학은 어디로 흐르는가. “철학은 빛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결국 허위의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을 공정하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진리를 찾던 철학이 진리를 배반하는 순간이다. 빛이 아닌 어두움, 역사에 만연한 인간의 슬픔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 “그때 비로소 철학이 오랜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참된 삶의 자기반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슬픔의 문제의식은 그의 첫 저작 ‘자기의식과 존재사유’에서부터 일관되게 흘러온 정서이기도 하다. ‘나르시스의 꿈’은 개인의 연구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이전 저작에서 서양적 주체성의 본질을 ‘홀로주체성’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의 또 다른 측면이 나르시시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자가 없는 자기 관계 속에서만 모든 것을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은 서양정신을 빗대는 은유로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서양정신은 한 번도 타자에 대해 매혹된 적이 없습니다. 자기에 대한 긍지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자기만큼 아름다운 타자를 본 적이 없는 것이지요.”

서양의 나르시시즘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정도의 차이, 처한 위치와 환경에서 오는 차이 정도라면 이 논의는 힘을 잃는다. 김상봉 씨의 답변은 이렇다. “서양의 나르시시즘에는 객관적인 탁월함이 있습니다. 때문에 필연적인 수순으로서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 겁니다. 서양의 자유, 숭고, 아름다움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그것은 주관적입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서양은 누구에게도 매혹되지 못합니다. 자기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슬픔의 철학은 9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 화두가 돼왔던 탈근대적 사유와는 사뭇 다른 듯 했다. “서양에서 말하는 타자는 ‘자립적’ 타자가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타자란 동성애자, 죄수, 정신병자, 여성 등인데 결코 자기들을 위협하는 이질적인 타자가 아닙니다. 창백한 지식인들이 값싼 관용을 과시하려는 것뿐이지요. ‘가짜’ 타자입니다. 그런데 동일성의 그물로 포섭되지 않은 타자가 나타났을 때, 타자를 운운하던 철학자들은 미국의 미사일 뒤로 숨지 않았습니까.”

그는 현재 ‘학벌없는 사회’에서 자신의 실천을,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서 교육철학을 펼치고 있다. “플라톤을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였지만 동시에 평생토록 젊은이의 열정을 갖고 있었던 사회개혁가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그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스스로 일차적으로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사회에서 한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하고 최소한의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가 펼쳐 보이려는 ‘서로주체성’의 철학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듯 보이는 대목이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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