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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己丑年의 의미] 말없는 소의 열두가지 미덕
[2009년 己丑年의 의미] 말없는 소의 열두가지 미덕
  • 김종대 중앙대·민속학
  • 승인 2008.12.3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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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는 기축년(己丑年), 12띠로 본다면 소의 해이다. 소띠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소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소의 부지런함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소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동물로 인식돼 왔다. 특히 가축화돼 농경에 본격적으로 이용되면서 소는 생구(生口)라 해 가족처럼 여겨왔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에도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존재로 인식됐다. 소의 해를 맞아 우리 민족이 소에 부여한 그런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고 하겠다.

먼저 소는 농경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동물로 인식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농경에 활용된 것은 신라시대 지증왕 때부터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증왕 22년에 백성들에게 우차(牛車)쓰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소를 농사일에 쓰기 보다는 다른 용도로 사용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이전의 기록들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소를 장례용으로 쓰기 위해서 키웠다고 한다. 이런 기록의 진위문제를 떠나 본격적으로 한반도에서 농사에 소를 부리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임을 알 수 있다. 소를 이용했다는 것은 농사일의 효율이 더욱 높아지게 됐음을 뜻한다. 논밭을 가는 데 뿐만 아니라, 곡식이나 짐을 나르는 운반수단으로 정착됐기 때문이다.

삼한시대에 소를 장례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중국의 『삼국지』‘위지 동이전’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는 신을 위한 제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부여에서는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 소의 발굽을 승패를 점치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소가 단순한 가축의 개념보다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속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에도 ‘만수대탁굿’과 같은 큰 굿을 하거나, 풍어기원제의인 충청남도 ‘황도붕기풍어제’ 등에서도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는 소 한 마리를 구입하는데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소의 머리나 다리 등만을 구입해서 마을제의에 사용하기도 한다.

민간에서 중요한 굿이나 제의에서 소를 제물로 사용하는 것처럼 국가가 주도한 제의에서도 소는 중요한 제물로 다루어졌다. 용두동에는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신농씨와 후직씨를 모신 선농단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선농제를 지낼 때 소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이때 제물로 바친 소의 머리와 다리 등을 넣고 백숙으로 고아서 만든 것이 바로 설렁탕이다.

소는 행동이 더디다는 점에서 한가로움을 상징하는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맹사성이 소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여유로움 혹은 유유자적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의 행동이 더디기는 하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묵묵히 수행한다는 점에서 은근과 끈기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속담에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의 덕이 있다’라는 표현도 말은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은 충실하게 한다는 덕목을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는 귀감으로 삼을 만한 동물이라고 하겠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갖고 묵묵히 일을 하거나,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의 귀감이 그것이다.
소는 재산목록 1호로 여겨져 왔다. 그 만큼 한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산이자, 일꾼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일년의 첫번째 소의 날에는 나물과 콩을 삶아 먹이고,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소가 일년내내 병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클 수 있다고 믿었다.

2008년부터 우리에게 닥친 경제적인 위기는 2009년도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축년 소띠의 해를 맞아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소처럼 묵묵히 잘 수행한다면 우리에게 위기보다는 행복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김종대 중앙대·민속학

필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를 거쳐 현재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 도깨비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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