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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역사의 길목을 건넌 그들 … 철학·예술에서 두각
굽이치는 역사의 길목을 건넌 그들 … 철학·예술에서 두각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8.12.31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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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 교수’ 누가 있나

1937년 7월 7일, 일본이 중일전쟁을 감행하면서 아시아지역은 불길한 전운에 휩싸였다. 한 달 후, 일본은 중일전쟁의 전초기지로 삼던 서울 전역에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이 해에 태어난 1937년생은 일제침탈과 세계대전의 戰禍 속에서 세상의 ‘빛’을 처음 보았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유년을 보낸 이들 세대는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다시 한국전쟁의 화염에 휩싸였다. 조선말엽에 태어나 근현대사의 줄기 속에 살아온 1937년생들은 그 존재로 ‘산 역사’다. 56학번을 전후로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1960년 4·19혁명과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선배학번’으로서 민주화·학생운동의 일선에 나섰던 세대다.

한국의 대표적인 분석철학자이자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소흥렬 전 포스텍 교수와 한국의 ‘조지 사튼’으로 불리며 과학사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송상용 전 한림대 교수 등이 1937년생이다. 2004년 타계한 한국사회학계의 거목, 故 김진균 서울대 교수도 동년배 소띠다. 1937년은 한국 문학계의 큰 별 이상이 타계했고, 지난해 세상을 등진 『몽실언니』의 작가 故 권정생 선생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소띠 세대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탓에 반민주·반독재 타도라는 어두운 시대의 연장선에서 다시 만난다. 1937년생이 4·19세대라면 68학번을 필두로 민주화 운동의 진용을 구축한 1949년생은 ‘6·8세대’로 지칭된다. 이들은 1972년 ‘대통령특별선언’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10월 유신 아래 학교와 거리에서 유신철폐를 외쳤다. 1970년 “민중이 알아야 할 것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겠다”는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월간 교양지<씨알의 소리> 발행인이자 사상가 故 함석헌 선생이 1901년생, 소띠다.

19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사건’ 이후 1967년부터 실시된 한일정기각료회의로 밑그림이 완성된 ‘한일수교’에 대한 반대 시위나 국가보안법·교련과목 폐지 운동 등도 1949년생들이 짊어져야 했던 지난한 투쟁일기의 한 장이다. 이들도 어느 덧 올해로 환갑을 맞게 된다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과 이준구 서울대 교수, 고구려사 연구로 유명한 노태돈 서울대 교수, 2006년 간행물윤리상 저작상을 수상한 남경희 이화여대 교수, 이화여대 최초의 여대생 가수이자 화가로서 70년대를 풍미했던 정미조 수원대 교수도 1949년 동년배 소띠다. 이 외에도 2003년 한국여성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와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전 회장 조동성 서울대 교수 등도 올해 환갑을 맞는다. 

20세기 격동의 한국사회를 말해주듯 80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던 1961년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5·18광주민중항쟁의 처참함을 목도했다. 같은 해 8월, ‘사회악 일소 조치’에 따라 삼청교육대가 군부대에 설치되면서 폭거와 억압의 상흔은 더욱 짙어진다.

“숨도 못 쉬고 살았죠.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유신체제였고 얼마 못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어요. 2학년에 진급하니 5·18민중항쟁이 일어나 휴교와 데모가 반복되는 나날이었습니다.” 박주석 명지대 교수는 학교 앞 선술집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회고한다. 학교 방침에 대해 조금의 항의나 데모를 하면 반정부 운동으로 엮여 안기부의 조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검열’ 아래 대학을 다녔던 1961년생 소띠 교수로, 재임용 탈락에 반발해 6년간 천막농성을 벌이고 복직한 김민수 서울대 교수와 소련 유학이 불가능하던 1980년대, 프랑스에서 가톨릭 예수회 수도사들로부터 러시아 문학과 예술을 연구했던 이덕형 성균관대 교수가 있다. 또한 ‘잡종의 미학’, 과학기술과 사회현상의 ‘통섭’을 통한 과학기술학의 대중화를 외치는 홍성욱 서울대 교수, 척박한 국내 사진계의 국제적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해 온 박주석 명지대 교수 등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계 인사로는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교수(전 미 국가안보회의 아시아국장)가 눈에 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아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저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도 1973년생 소띠다.

이 밖에도 청각장애를 이겨내고 한국화의 새 장을 연 불굴의 천재화가 운보 김기창과『무녀도』, 『역마』의 작가 김동리가 1913년생 소띠 동년배다. 1만원권 지폐 속 세종대왕을 故 김기창 화백이 그렸는데 세종대왕이 1397년 정축년 소띠라고 하니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소의 습성을 빗대 소띠는 행동이 느리고 어수룩하다지만 소띠 교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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