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희망은 어떻게 오는가
[신년사] 희망은 어떻게 오는가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경기대 명예교수
  • 승인 2008.12.31 13: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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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경기대 명예교수
어김없이 새날이 밝았습니다. 돌아보면 무척 힘겹고 험난하게 지나온 나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사과봉지만한 소망을 안고 시작한 2008년 한 해였지만, 소망은 꽃잎처럼 흩어져 공중으로 사라지고, 그늘진 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약자들에겐 더욱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己丑年 올 한 해가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으리란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더 희망의 불씨가 지펴져야 할 때입니다. 흔히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를 꿈꿀 때 많은 사람들은 숭고한 이념을 가슴에 품게 됩니다. 그 숭고한 이념은 거대한 집이 돼 사람들을 한 데 불러 모으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숭고함이 깊을수록 그것은 한편으론 사람들의 삶을 볼모로 잡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지워버리는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가깝게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랬습니다.


개인이 지워진 자리, ‘나’의 자리가 증발한‘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했습니다. 1970년 생 젊은 작가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기억해보고 싶습니다. 1930년대 동만주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발생한 ‘민생단 사건’에서 소재를 취한, 조금 독특한 소설이지요. 이 소설의 미덕은 소재, 시공간의 낯설음보다는 인물들의 운명 그 자체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학생 까까머리 그 푸른 나이에 이들은 미래를 꿈꿉니다. 중학생인 이들이 꾸는 꿈은 항일 유격, 사회주의 혁명입니다. 이들은 이 꿈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시기하고 마침내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어른들로 자라납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들이 꾸는 꿈, 우리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은 어쩌면 더 큰 폭력의 세계, 야수의 세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위기의 바람이 한국 사회 곳곳에 몰아치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문명을,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극복될 수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삶의 가치, 어떻게 사는 삶이 아름다운가를 묻는 행위는 ‘우리’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나’가 누군인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까요. 인간의 이타심이 진화의 동력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말처럼, 어쩌면 ‘나’의 본질은 또 다른 ‘나’를 위하는 가치의 공유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돌아보면,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들에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결국에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린 지난 한 해였습니다. 정치인들은 서로가 ‘국민’을 위한다고 침을 튀겼습니다. 삶의 방식을 새롭게 고치자는 목소리는 종교의 담장 밖을 넘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윤리,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희망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그 역할을 대학이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은 질문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한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더 많은 ‘나’를 키워내고, 이런 ‘나’들이 ‘우리’로 퍼져나가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희망의 원리를 꿈꿀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올해 전국의 교수님들이 뽑은 희망의 사자성어 ‘和而不同’의 소망처럼, 우리가 오늘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불꽃처럼 번져나가길 바랍니다.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경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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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2009-01-19 15:46:45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를 알아야 한다는 점] [정치인들은 서로가‘국민’을 위한다고 침을 튀겼다는 점]....거이에 언론도 포함되어야 합니다.....그리고 [대학은 질문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합니다]라는 글...가슴 깊이에 와 닿네요. 깊이깊이 아로 새길 대목입니다...아무튼 늘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뜻하는 일들이 다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그리고 2009년은 [희망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불꽃처럼 번져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