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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 연구논문 사후 시상제를 도입하자
제언 : 연구논문 사후 시상제를 도입하자
  • 교수신문
  • 승인 2002.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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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아닌 ‘결과’ 따라 차등 지원학부제
안상헌 / 충북대 철학과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붕괴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정부는 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붕괴를 막기 위한 재정지원을 대폭 늘렸다. 붕괴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무조건 돈만 많이 집어넣으면 저절로 회생되리라 생각은 참으로 근시안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회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과 연구 두 측면에 대한 적절한 진흥책이 있어야 한다. 교육 진흥책을 위해서는 첫째, 대학과 학과가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특정분야 연구에 각별한 관심과 열정과 능력을 겸비한 학생을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학생 선발권을 전면 보장하고 둘째, 이에 대한 최대한의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연구 진흥책은 현행 제도처럼 연구성과에 대한 질적 검증을 결여한 채 무조건 연구자에 대한 연구비 지원만 대폭 증액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제 인문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지원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꿈으로써 고사 상태에 직면해 있는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되살려야 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다.

이에 현행 사전 연구비 지원방식을 우수연구논문에 대한 사후 지원제로 혁신할 것을 제안한다. 즉 지금과 같이 연구 착수 전에 개인이 신청한 연구계획서 평가를 거쳐 연구비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중단하고, 시상제(Award system)를 전격 도입하자는 것이다.
시상제의 골격은 대강 이렇다. 1)전공분야 별로 매년 국내외 각종 학술저널에 발표된 논문 중에서 연구자 자신이 우수논문으로 생각하는 논문 한 편을 학술진흥재단에 제출해 사후 연구비를 신청한다. 2)학술진흥재단은 연구비 총액의 범위 안에서 분야별로 엄정한 심사를 거쳐 논문의 질에 따라 최우수(별 다섯), 우수(별 넷), 장려(별 셋)순으로 선정해 소정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3)선정된 논문이 게재된 저널은 선정된 논문의 별의 개수를 취합해 저널에 표기하고 이를 저널 등급으로 삼는다. 4)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논문의 말미에는 반드시 심사자의 이름을 명기한다. 5)학술진흥재단은 매년 수상한 논문을 분야별로 묶어 출판하고 연구자와 도서관에 배부해 학술진흥을 도모한다.

논문시상제의 여러 장점들
br>이러한 논문시상제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사전 연구비 지원의 최대 허점인 지원과 연구성과의 불일치를 제거할 수 있다.
2)연구성과에 대한 질적 평가에 상응하는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3)소모적이고 위선적인 연구비 사용 및 관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4)연구비 신청 대상자를 재야학자, 대학원생, 시간강사를 포함한 그 분야를 연구하는 모든 전공자로 확대할 수 있다.
5)대학 연구소에서 발간되는 저널의 활성화와 질 제고를 촉진할 수 있다.
6)인문학이나 기초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선연구 후지원이 가능한 분야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
7)학진 학술지 등재를 위한 학회 난립과 학술지 남발 및 학문 외적인 학회 정치를 지양할 수 있다.
8)신진 재야학자 및 학문후속 세대의 발굴 및 지속적 지원이 가능하다.
9)해외학술지에 대한 사대주의적 과잉평가를 지양할 수 있다.
10)해외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다.
11)분야별 연구성과를 세계에 알릴 수 있으며, 논문집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간행물로 키울 수 있다.

예상되는 문제점 해결방안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다음과 같다.
1)심사자 선정과정에 학회 입김이나 학회 정치의 영향 및 연고주의가 작용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학술진흥재단 연구자 DB에서 분야별로 일정 자격을 갖춘 심사자를 무작위로 선정해 심사를 의뢰하고, 논문 말미에 심사자 이름을 명기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2)논문 말미에 심사자 이름을 명기할 경우 심사청탁의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심사자에게 심사 노력과 심사결과에 대한 책임성에 상응하는 충분한 심사비를 지급하고, 심사 횟수를 연구업적으로 인정하면 될 것이다.
3)조사연구나 공동작업과 같이 연구과정에서 상당한 연구비가 소요되는 과제가 있다. 이 경우에는 현행 사전 연구비 제도를 병행해 연구계획과 소요예산서를 작성해 별도로 연구비 신청을 하게 하면 될 것이다.
4)학문분야간 형평을 기할 수 있는 범위 설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위원회를 구성해 분야별 전공자수, 제출된 논문수, 우선 지원해야할 취약한 학문분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년 적절하게 결정하면 될 것이다.
5)학술저널에 게재된 연구논문 이외의 연구논문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이는 연구논문 제출 요건을 국내에서 발간된 모든 정기간행물 또는 단행본으로 확대하면 될 것이다.
6)연구논문 이외의 연구성과 즉 저서나 번역 등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신청 받아 심사한 후 같은 방식으로 시상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기 이전에 당장은 어렵겠지만, 여러 해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과 성과가 장기간 축적되고 절차와 방법의 공정성이 검증된 이후에는 이를 교수의 연구업적평가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구업적평가를 빙자한 부당한 재임용탈락의 악습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잡음과 부조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신규교수채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잣대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수 시장의 유연성도 약간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교수의 교육과 연구 평가에 대한 아무런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기준도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불합리한 계약제 연봉제 문제도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그 실현가능성 여부를 검증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학술진흥재단의 심사숙고와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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