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3:35 (금)
[죽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 웰다잉, 삶을 격조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질문
[죽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 웰다잉, 삶을 격조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질문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2.23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간 대화로 읽는 학술키워드13. 죽음

교수신문은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와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데 목적이 있다.
 그 열세 번째로 이번 호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살펴본다. 생물학을 전공한 오상진 교수는 죽음의 생물학적 의미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에 철학을 전공한 오진탁 교수는 생물학적 의미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 웰다잉, 삶을 격조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질문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같은 시기, 우리는 새삼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그 끝자락 어딘가에는 죽음이 덩그러니 입을 벌리고 있으리라는 점도 짐작할 터.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감과 가까운 타자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숙연해짐을 느낀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죽음은 한 생물이 더 이상 생물로서 기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곧 물질대사 등을 행하지 못하고, 무생물로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생물이 죽음에 이르는 이유에 대한 이론은 비교적 활발하게 개진돼 있다. 유전자에 이미 세포분열의 한계시한이 기입돼있다는 설, 환경으로부터 받은 오랜 영향에 의해 마모가 된다는 설, 생명체에 타격을 주는 유전자들이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분분하다.

만일 생물이 죽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영원히 단세포 생물로만 존재했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에 만개한 다채로운 생명체들과 인간이라는 고등생물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별 생명체들의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유전자에 죽음의 시한폭탄이 장착돼 있다고 하더라도, 놀랄 일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우리는 죽는 존재이기에 바로 지금의 ‘우리’가 된 것이므로.

생물학이 말하는 죽음은, 우리를 전율하게 하는 바로 그 ‘죽음’과 일치하진 않는다. 우리에게 죽음은 생물체로서 죽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인류가 끊임없이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자 했다는 증거는 바로 종교를 통해 드러난다. 모든 종교는 사후 세계의 존재, 천국과 지옥, 윤회 등 다양한 테마들을 통해 죽음을 ‘생명의 종말’ 이상의 어떤 것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애를 썼다. 물론 혹자는 종교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감하는 환각제와 같은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에 대한 성찰과 가르침을 통해, 윤리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권유해왔다.

최근에는 웰빙에 이어 웰다잉이 부각되고 있다. 웰빙에 대립되는 의미로서 웰다잉이 아니라, 진정한 웰빙에 기여하는 의미로서 웰다잉에 대한 연구가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는 ‘한국죽음학회(회장 최준식·이화여대)’가 2005년부터 활동을 하고 있다.

퀴블러 로스처럼 죽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는 일은 죽음에 대한 유사 종교적 교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죽음을 고민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인식하고, 더 평화롭고 진지한 생을 가꿔나가자는 귄유를 할 따름이다. 웰빙이 유기농 음식, 규칙적 운동, 좋은 환경 등 다소 물질적인 부분을 강조했다면, 웰다잉은 하나 뿐인 생의 가치와 같은 정신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죽음학으로 유명한 알폰스 디켄 조치대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음이 가져오는 비극의 체험은 인생에서 희망과 기쁨을 빼앗고 남은 인생을 원망 속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성이 풍부한 인간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