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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쿄나 베이징, 타이베이가 아니라 서울인가
왜 도쿄나 베이징, 타이베이가 아니라 서울인가
  • 하세봉 한국해양대·동아시아학
  • 승인 2008.12.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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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참관기] ‘동아시아의 지식교류와 역사기억’

지난 12월5부터 7일까지 동아시아사 연구자포럼 및 동북아재단은 ‘동아시아의 지식교류와 역사기억’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의 공식참가자는 한국학자 33 명, 일본학자 7 명, 중국학자 12 명, 대만학자 5 명, 홍콩학자 1 명 등 총 58명으로, 근래에 한중일 학자의 모임이 잦지만 국내에서 열린 학술대회로는 손에 꼽힐 정도로 대형학술대회의 하나였고, 적지 않은 경비도 소모된 학술대회였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근대만큼 동아시아의 각국이 밀접하게 그런 만큼 길항적인 상호관계를 맺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바로 이 시대를 대상으로 했고, 그 시대가 길항적이었던 만큼 그 그림자는 현재에도 여전히 짙게 드리우고 있다.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 등으로 점철된 역사기억을 각국은 오늘까지 내셔널한 방식으로 전유하고 있고, 그 역사기억은 억압적인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균열이 진행되고 있음이 확인된 점은 소득이다. 항일전쟁, 신사참배, 일본의 아시아주의, 안중근, 북경올림픽과 관련한 중국의 대외여론,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의 기억, 대만에서 일제의 의무교육 등이 전자라면, 후자는 위안부에 대한 젠더적 시각, 최근 대만영화가 유추해낸 식민지 역사의 기억, 중화사상과 오리엔탈리즘의 한국사 교과서, 도쿄에서 지식의 전파와 지식인의 연계 등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역사기억 뿐 아니라 발표자의 시각에서도 내셔널한 전유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가 아시아주의에 대한 관심의 차이로, 팽창주의를 포괄하는 아시아주의에 주목하는 것이 일본학자라면, 평화와 연대의 아시아주의만을 가치 있는 아시아주의로 한계 짓고 싶어 하는 한국학자의 거리가 그것이다.

동아시아를 이전과 달리 빚어보고자 하는 이 학술대회가 열린 공간 즉 서울과 관련해 시사를 던지는 발표가 있었다. 식민지나 반식민지에서 온 급진적 혹은 민족주의적 학생들이 일본의 급진적 지식인과 함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만들어진 ‘담론의 공동체’가 ‘지식인의 연계’와 ‘지식의 전파’를 담아내는 보금자리가 됐던 점이 발굴된 것이다. 東京이 바로 제국의 핵심적 공간이라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諸民族의 연대’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는 역설은 제국주의시대가 창출했던 正負 양면에 걸친 공간의 중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아시아 역사학자가 서로 연계하고 서로 지식을 전파해 “동아시아 국가 학자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자 하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이 취지를 ‘담론의 공동체’와 결부시켜 볼 때, 특정한 도시 서울이 동아시아의 지식교류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도쿄나 뻬이징 혹은 상하이, 타이베이나 홍콩이  아니고 왜 지금 서울이 학자 간 신뢰의 구축을 도모하게 됐는가.  

 
중국학자의 발표문이 이 학술대회의 주제와 비교적 밀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은 서울에서 빚고자 하는 동아시아가 多聲의 일본학계나 대만 혹은 홍콩까지는 접점을 찾을 수 있지만 아직 중국학계에는 引力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서울이 갖는 지정학적 성격 즉 국민국가를 대표하는 수도라는 공간이 갖는 성격에서 유래하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지방도시가 빚어내는 동아시아는 또 다른 모습을 띨지도 모른다. 이 점과 관련해 주목되는 발표는 홍콩영화, 대만문학에 관한 것이다. 1950~60년대 홍콩영화계가 좌우로 분립돼 있으면서도 대륙, 대만 사이를 오가며 협력하거나 넘나들었던 사실은 냉전시기 동아시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국지적인 특수성을 읽을 수 있다. 또한 1930~40년대 대만문학에서 식민국/피식민국과 국가/향토를 넘어선 ‘식민지 지방주의’의 등장을 논급한 글도 정세의 변화에 따른 지역의 변신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부의 아시아주의가 임진왜란의 출군지 사가번(佐賀;肥前藩)의 기억을 계승하고 있다는 언급은 지역의 기억이 국가의 역사로 팽창한 사실을 보여준다. 목판인쇄물에서 미국에 흑선을 끌고 온 페리 일행은 공포심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은 새로운 이미지로 제시됐다고 하는데, 지방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자면, 그것은 에도라는 지역의 서민들이 만들어내고 소비한 이미지인 것이다.
이상은 30여 편의 발표를 거두절미해 맥락화시켜 본 것이다.

하세봉 한국해양대·동아시아학

저서로는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이, 논문으로는 「모형의 제국」등이 있다.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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