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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대형작가의 약진에도 ‘문학의 몰락’을 말하는 이유
몇몇 대형작가의 약진에도 ‘문학의 몰락’을 말하는 이유
  • 조영일 문학평론가
  • 승인 2008.12.22 17: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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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소설을 돌아본다

 2008년 한국문학계의 큰 사건이라고 하면, 우선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고, 둘째는 한국문학의 약진이다. 먼저 후자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혹자의 말처럼 한국문학은 현재 르네상스를 맞은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일본문학의 공습 때문에 제대로 기도 펴지 못하고 있던 한국소설이 판매량에서 일본소설을 앞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흐름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기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평론가의 책이 평론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을 한국문학의 부활이라 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판매량을 놓고 본다면, 한국소설이 일본소설을 앞지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단 신작 출간 권수만을 놓고 보면, 여전히 일본소설이 한국소설을 압도하고 있다(최소 5배 이상은 될 것이다). 그리고 판매량의 내용을 보면, 한국소설의 경우 그것이 소수의 대형작가(공지영, 황석영, 신경숙)에 의해 나눠지고 있는데 반해(80%가 넘을 것이다), 일본소설의 경우 눈을 확 띠는 책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고른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한국소설은 대형베스트셀러 몇 작품에 독자들이 몰리고 있다면, 일본소설은 여러 작품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유컨대 한국문학이 한국경제처럼 몇 개의 대기업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라면, 한국 내 일본문학은 수많은 중소기업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소수의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성공을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이 잘 돼야만 한국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한국문학계는 사실상 ‘문학의 몰락’을 실감할 수 있는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증거로 올해 수많은 문학상이 (상금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당선작을 내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100만부 작가 세 명이라기보다는 1만부 작가 50명이다.

 이명박 정부(유인촌 장관)의 출범이 앞으로 한국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문학에 대해서만큼은 축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인들은 벌써부터 문학관련 예산의 삭감 소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번 기회에 관련예산이 완전히 삭감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한국문학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문학인들에 대한 국가 지원이 논의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가라타니 고진의 입장은 명확하다. 그는 먼저 문예창작 지원시스템이 가장 잘 갖추어진 독일을 예로 들어, 그런 지원시스템이 구축된 후 읽을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제대로(그리고 확실히) 몰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문학은 제대로 몰락하고 나서 부활했다고 주장하는지 의심스럽다.

 2008년에 출간된 소설 중에서 가장 주목을 요하는 작품은 당연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다. 이 소설이 그의 여느 소설과 다른 점은, 일종의 ‘청소년소설’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는 아동문학은 그런 대로 가지고 있었으나, 딱히 청소년문학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문학 독자층에 청소년이 포함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예 청소년만의 문학시장이 형성됐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일반문학으로부터 청소년들이 일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지적 능력이 이전보다 하락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문학을 떠난 것은 비단 청소년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사실 일반문학과 청소년문학을 나누는 것은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나누는 것보다 더 어렵다. 예컨대 황순원의 『소나기』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청소년문학인가, 일반문학인가. 소위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많은 소설들은 어떻게 보면 전부 청소년문학이 아닐까. 사정이 이러하다면, 굳이 성인문학과 청소년문학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청소년문학 시장은 사실 아동문학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비밀도 아닌 비밀이지만, 한국의 문학전문출판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동문학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매출내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촉수를 청소년문학으로 돌린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제 한국문학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출판사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모모』, 『해리포터』와 같은 대형베스트셀러가 시장의 터를 닦고 대입논술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문학서나 인문서를 요약한 책들(예컨대, 청소년 『토지』, 청소년 『장길산』 등등)이 파이를 키우고, 일부 재력 있는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청소년문학상을 재정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전체적인 시장의 모양을 완성시켰다. 특히 올해 창비에서 나온 『완득이』는 현상으로까지 불릴 정도가 됐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정확히 이와 같은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었고, 또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작품만은 놓고 보았을 때, 이것을 과연 청소년문학으로 봐야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청소년문학의 패턴(사회제도에 대한 반항, 그리고 복귀/귀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매우 얌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을 패러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판만 5만부를 찍었다고 하는, 올해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신경숙)는 매우 잘 쓰여진 소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속소설로서만 그러하다는 단서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소설은 명절 때마다 방영되는 특집드라마(주로 가족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와 유사하다. 이런 드라마는 항상 뻔한 캐릭터와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는 바로 그런 뻔함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신경숙의 소설은 필자를 울리는 데는 결국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그와 같은 ‘뻔함’을 끝까지 고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나치게 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백낙청은 추천사에서 이 소설을 가리켜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문학적인 표현으로 번역한다면, 아마 ‘시대에 뒤처진 또는 시대착오적인 소설’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즉 『엄마를 부탁해』는 확실히 잘 쓰여졌지만(그런 의미에서 분명한 성공작이지만), 시대착오적인(즉 기존의 통속서사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그녀는 통속소설을 쓴 것에 불과한가. 물론, 그렇지 않다. 백낙청이 ‘세련됨(촌티 없음)’을 높이 평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련됨(촌티 없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통속서사의 공식을 따라가자면, 남편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정작 자신은 텅 비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소설은 ‘완벽한 모성의 현현과 남은 자들의 죄의식’으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경숙은 백낙청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지막 한방의 충격’(어머니에게도 존재했던 개인적 욕구와 고뇌와 방황)을 드러냄으로써 노련하게 통속서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를 위해 신경숙은 자주 애용해온 기법(죽은 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을 사용하는데, 어찌 됐든 적어도 필자에게는 이 ‘마지막 한방’은 ‘뜬금없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통속소설을 문학적 장치로 포장하는 작가의 태도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도리어 그러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이다.

 마지막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독자와 평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이다. 민생단 사건이라는 꽤 매력적인 소재를 다룬 이 소설은,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패작에 지나지 않은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작품과 도무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작가 때문이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객관적으로 그려져야 할 세계가 낯간지러운 사랑과 눈물, 그리고 푸념의 난장판으로 추락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소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념논쟁과 관념적인 사유 등이 ‘지난날의 문학’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왠지 어수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자나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무도 적절히 배치된 ‘경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덧붙여, 올해 한국문학계에서는 소위 문단문학 바깥에서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 두 권 있다. 하나는 타블로의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이란의 소설집 『혀』이다. 전자는 미국 명문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대중가수가 출간한 책으로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됐고, 후자는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를 둘러싼 표절논쟁으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 두 권 모두 기존 문단문학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보긴 어렵다. 타블로의 소설집의 경우 몇 편의 가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작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교과서적인 단편에 지나지 않았고, 주이란의 소설집은 신선한 감성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습작 수준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문예중앙>에 ‘비평의 빈곤’으로 비평활동을 시작했고. 옮긴 책으로 『근대문학의 종언』 등이 있다. 올해 한국문단을 달군 황석영, 신경숙, 김연수의 소설. 그리고 표절 논쟁을 불러왔던 주이란의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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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01:06:02
일단 내용은 차치하고 생각보다 오타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