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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 해법, 미안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지역언론 해법, 미안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 임영호 부산대·신문방송학
  • 승인 2008.12.22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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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식민지다』강준만 지음┃개마고원┃ 2008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는 지방을 둘러싼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들을 날카롭고 위트가 넘치는 필체로 풀어낸 책이다.
읽고 난 소감은 ‘역시 강준만이야’ 하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강준만 특유의 시각과 처방, 글쓰기, 또한 장점과 한계에 관한 느낌들이 집약돼 있다. 나는 지역언론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강준만식 글쓰기에 ‘딴지’를 걸어볼까 한다.

지역언론의 현실에 대한 강준만식 진단에서 그리 새로운 점은 없다. 지방의 문제는 ‘서울 1극 구조’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이는 지방 내부의 구조적 병폐와 얽혀있다는 점은 그간 지역 연구자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는 ‘해묵은’ 문제를 강준만식으로 가공해 이슈화하는 재주를 지녔다. 다소 도발적인 문제 제기 방식 역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데 유용한 무기가 된다. 요새 책이란 매체의 인기는 바닥이지만, 강준만의 책은 여전히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장점은 독특하고 기발한 처방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의 해법은 구조적인 방안에서 지역 시민운동, 언론인의 자구책까지 다양하게 걸쳐있다. 그 동안의 지방언론 관련 글은 대개 불가항력적 구조에 의해 지역 언론이 어떻게 왜곡됐는지에 치중하기 때문에 개탄조 일색이었다.
하지만 강준만은 거시적 진단에 근거해 현실을 비관하기보다는 지역이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거창하지 않고 시시할 정도로 작은 방안들을 제시한다.
“거대담론은 실천을 방해한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밑에서 위로’ 올려보내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강준만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내가 아는 강준만은 ‘입이 험한 독설가’의 이미지를 지녔다. 주로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었고, 이름께나 알려진 정치인, 운동가, 지식인들을 도마에 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역문제의 해법 모색에서 ‘블루 오션’이니 ‘마케팅’이니 ‘홍보 전략’, 오락과 운동을 결합한 ‘볼런테인먼트’ 등의 단어들을 접하게 된 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강 교수는 도발적 비평가이자, 연구자를 넘어 지역 전도사와 세일즈맨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는 그가 지역문제를 단지 글쓰기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진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는 지역언론에서도 발상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가령 획일적 기사 형식에서 벗어나 재미를 추구하는 ‘눈높이 저널리즘’으로 가야한다든지, 비리 고발보다는 ‘생활밀착형’ ‘민원해결 저널리즘’으로 지역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방언론조차도 지방을 홀대하던 습성을 버리고 지역의 스타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 역시 새겨들을 만하다.

물론 그가 제시한 대책 중엔 상당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할 만한 것도 있다. 하지만 강 교수는 어떤 잠재적 위험도 지역의 낙후성에 비해 대수롭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물론 사회문제를 보는 데에도 기발함과 독창성은 필요하지만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지방 살리기’라는 대의가 다른 문제에 대한 면죄부까지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강 교수처럼 ‘기발한 해법’ 위주의 사고에 따르는 부작용 중의 하나는 구조적 인식의 약화다. 강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는 지역신문은 ‘시장논리’만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돼 있다고 본다. 지역신문의 병폐들은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하므로, 지방신문 때리기보다는 우선 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에서도 부산ㆍ대구를 제외한 ‘제3세계’ 언론은 시장논리나 구조적ㆍ정책적 해법의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상적 원칙에 따라 ‘지방신문 때리기’에만 열심인 학자들이나 지역신문지원 정책 역시 제3세계의 열악한 ‘현실과 동떨어진 말씀’일 뿐이라고 그는 비판한다.

지역언론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운명공동체적 정서’에 그는 정말 깊숙이 빠져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역언론 살리기는 과연 지역에 좋은 일인가. 지역에 기여하기보다 기생하는 ‘나쁜’ 언론을 가려내는 일도 중요한데, 이에 대해 그의 처방은 단순하고 낙관적이다. 독자들이 애향심 차원에서 지역신문을 구독해야 하며, 특히 ‘가장 도덕성이 높고 열심히 노력하는 신문을 하나 골라 독자들이 밀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의 처방은 속이 후련할 정도로 명쾌하긴 하지만, 과연 혼탁한 지역신문에서 정화 기능을 살려낼 지는 의문이다.

지방언론 살리기의 큰 장애는 의욕과 진정성이 있는 언론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官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공무원 신문’이 적지 않다. 일선 기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일부 社主는 좋은 신문 만들기보다 언론사 명함으로 지역유지 행세에 더 관심을 두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독자들의 ‘선택과 집중’이 통할 리 없으며, ‘블루 오션’ 전략이니 ‘포지티브’ 전력이니 하는 소리는 딴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시장자유주의자가 아니어도 시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방언론에 시장논리를 적용하려는 시도에 강 교수는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그게 피한다고 될 일인가. 지역언론이 살려면 기발한 개선방안을 내기 전에 우선 발 뻗을 곳을 잘 살펴야한다.

나무심기에 비유하자면, 그냥 두어도 울창한 숲이 되는 곳도 있지만, 선인장조차 살기 어려운 곳도 있다. 즉 시장 논리란 무엇보다 풍토에 맞는 나무를 고르는 일과 같다. 지방언론 시장은 가뜩이나 척박한 환경이 갈수록 ‘사막화’하고 있는 실정인데, 일부 ‘제3세계’ 지방언론의 문제는 바로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타성만 고집하는 데도 있다.

가령 지역신문이 왜 꼭 일간지여야 하고, 인터넷 시대에 종이로 인쇄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강 교수도 가끔 언급하는 미국 지역신문 중엔 사장이 손수 영업, 데스크까지 겸하고 몇 사람만으로 운영하는 신문도 많은데, 이들은 몇 백 정도의 부수로도 회사를 꾸려나간다. 
지역에서도 경쟁은 필요하며, 도태되는 언론이 있어야 새로운 언론도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언론이 살아나기도 전에 ‘때리기’에 나서서는 곤란하며, ‘사이비’ 지역언론의 퇴출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강 교수가 제시한 많은 해법 역시, 그가 비판한 다른 ‘현실과 동떨어진 말씀’처럼 비현실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방향이 중요하지, 길은 찾으면 나오는 법이다. 가령 지역시민운동을 ‘지방 살리기’와 ‘애향운동’에만 동원할 게 아니라 불량 언론 퇴출에도 활용해보자.
지자체에서 골고루 나눠주는 선심성 예산만 차단해도 기생형 신문은 줄지 않겠는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개혁이 뒤따라야 지역 살리기도 가능하다.

물론 강 교수는 구조ㆍ제도 개혁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안들을 병행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지방언론에 관해 온갖 기발한 해법들이 제시됐으나 효과를 보진 못했다. 오래전 지방언론 관련 자료를 찾다가 수십 년 전의 행사자료까지 뒤진 적이 있다. 그런데 현실 진단 뿐 아니라 처방 제시까지 너무나 대동소이한 데 놀랐다.
강 교수의 주장 역시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재치에도 불구하고 상당수는 이전의 것을 재포장해 되풀이하고 있다.

‘지역’에 대한 지식인 특유의 환상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다른 사회현상은 현실적 갈등과 이해관계의 틀로 접근하면서, 지역은 추상적인 공동체처럼 여긴다. 이들에겐 서울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을 뿐 지역에는 집단 간의 갈등이 없다. 지역 살리기든 개혁이든 갈등이 따르며,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지역기업·언론이 보는 지역은 주민과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발전이 곧 지역의 이익이라 보는 것은 ‘개발독재형’ 발전 모델처럼 위험한 생각이다.

그 동안 지방 살리기 대책에서 고질적 한계는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길만 모색해왔다는 데 있다. 강 교수의 주장 역시 ‘험한 독설’처럼 들리지만, 정작 지역에서 그다지 인심 잃을 일은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지방 살리기와 개혁운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강 교수가 비판한 구조적 접근의 장점은 이 둘을 동시에 보게 해주는 데 있다. 어쨌든 이 책은 도발적 문제 제기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임영호 부산대·신문방송학

필자는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저서로는 『저널리즘의 미래변화』가, 논문으로는 「신문사진에 나타난 신화의 유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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