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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물결 속 교육 본질 훼손될까 우려
구조조정 물결 속 교육 본질 훼손될까 우려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12.22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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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과 2008년, 경제위기 파도 만난 대학들

10년 전 외환위기와 오늘의 경기침체.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제가 불황에 빠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의 경제위기는 10년 전 IMF 위기를 맞았을 때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위기의식은 어느 때보다 높다.
대학들은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등록금과 교직원 인건비를 동결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섰다. IMF 당시 전례 없는 충격에 빠져 우왕좌왕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차분한 분위기다.

등록금 동결, 신규 사업 축소 등 위기극복 방안은 10년 전과 비슷하지만, 대학 구조와 운영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IMF를 극복하기 위해 몸집 줄이기에 나선 뒤 다시 한번 불어 닥친 경제위기 앞에 대학들은 또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대처법은 10년 전과 무엇이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등록금 동결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외환위기 당시 고려대, 경기대, 동아대, 서울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은 등록금을 동결했다. 보직교수들은 보직 수당의 10%를 장학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올해도 이런 양상은 계속된다. 서강대, 서울대, 한국외대 등 20여개 대학은 등록금 동결을 잇달아 선언했다.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교직원 인건비 역시 동결한다. 대학 운영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위기극복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모습도 10년 전과 비슷하다. 이화여대는 10년 전 ‘우리경제살리기 범이화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당시 학사관리 통폐합, 보직교수 감축 및 업적평가 강화, 중복 교과목 폐지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안을 추진하는 역할을 맡았다.
성균관대는 최근 등록금 동결을 발표하면서 구성원이 동참하는 위기극복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내용을 포함할 지 아직 확정하지 않았지만, 예산절감 방법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폭풍이 몰아치자 대학들은 ‘무조건 축소’ 움직임을 보였다. 교수임용도 마찬가지다. 당시 성균관대는 교수 110명을 신규 임용하겠다는 임용공고를 냈지만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명을 선발했다. 국책연구소는 채용을 대폭 줄이거나 합격을 취소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급격한 내리막세를 보이는 경제성장률이 앞으로 신임교수 임용에 어떤 영향일 미칠지 예측하긴 아직 이르다. 대학들은 일단 내년 상반기 임용은 계획한 대로 진행한다는 계획인 반면 일부 지방 사립대는 임용규모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7년 학부제 도입 이후 대학은 학과통폐합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가운데  IMF 사태는 대학 구조조정 움직임에 기름을 부었다. 유사학과 통폐합을 비롯해 정원 재조정, 행정기구 통폐합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과도한 정책은 비인기 학과와 기초학문분야 교과목이 축소, 폐지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한 차례 위기를 겪은 이후 체질개선에 돌입한 대학은 예전만큼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행정 효율성을 지향하면서 수도권 소재 사립대를 중심으로 기업 경영체제를 도입, 조직을 팀제로 바뀌는 등의 행정개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과통폐합은 경제위기와 상관없이 경쟁·시장논리에 따라 여전히 단행되고 있다. 학생정원을 채우지 못 한 학과나 유사한 학문분야를 가르치는 다른 학과가 있을 경우 구성원 사이에서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학과를 폐지하는 곳도 있다. 경제위기가 명분 없는 구조조정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임상우 서강대 교수(사학과)는 “10년 전 외환위기를 맞을 때는 앞으로 닥쳐올 파장을 몰랐지만, 이번엔 앞으로 올 파장을 알고 있다는 것이 외환외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대학은 경기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도한 축소지향 분위기 때문에 안 줄여도 될 것, 줄이면 안 될 것을 줄이면 교육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과통폐합, 인원감축 등 해결하지 못 했던 일을 ‘경제위기’를 역이용해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10년 전 교무처장을 역임한 한 교수는 “지금도 경제적 외풍이 세긴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만큼 어렵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대학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또 겪을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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