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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秘史-최찬식의 청구대학 증언] ⑭ 정상화한다면서<1>
[대학 秘史-최찬식의 청구대학 증언] ⑭ 정상화한다면서<1>
  • 교수신문
  • 승인 2008.12.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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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래도 目擊者는 있다

 

저들이 나를 어둔 곳에 가둬 두고 사라지기를 원했다면 - 그들의 先行者들이 나의 先代를 그랬듯이 - 내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어둠과 거짓 물러치려고" 몸부림 칠 수밖에.  그러나 세상은 無心만은 아니어서 어떤 매스컴은 내 부르짖음에 應해주기도 했다.

 2000年에는 <한겨레>신문에서 “영남대 설립 正當性 논란” 이란 제목으로 事案을 다루어 주었고(2/14, 홍대선 記者), <嶺南日報>에서는 “靑丘大 권력에 빼앗긴 겁니다” 란 타이틀로(3/25, 박세일 記者), <大邱日報>는 “청대, 대구대 강제통합, 영남대 탄생” 이란 제목 下에 (5/30, 최세호 記者), 2001年에는 <每日新聞>은 “반칙에 패한 억울함, 진실은 꼭 밝혀야죠” (9/3, 조두진 記者)라는 제목을 달고 各各 記事化 해주었다.

[관련기사] ⑬ 判定勝

[관련기사] ⑫ 深宮에 갇힌 “行動하는 良心”(2) ”

[관련기사] ⑪ 深宮에 갇힌 “行動하는 良心”

[관련기사] ⑩ 國政監査와 判定勝

[관련기사] ⑨ 時代의 證言과 參與
[관련기사]
⑧ ‘工專’‘靑丘’ 이름에 집착한 사연 … 설립자, 구체적 설계 있었다

[관련기사] ⑦ ”20년 피땀어린 학교 되찾기 위해 百方으로 뛰었지만 ”
[관련기사] ⑥ 대통령에게 보낸 진정서 … “사학 설립자 노력 정당하게 대접해야”

[관련기사] ⑤ 大邱에서도 의아해했던 ‘청구-대구 합병’… 설립자 의사 무시

[관련기사] ④ 陶南 조윤제 박사 ‘다시 일어서자’ 권유해 희망 가졌지만

[관련기사] ③ 이사장 자리 비어있던 ‘진상 각서’ … 故人의 말을 직접 인용한 까닭
[관련기사] ② “1967년 6월 신축 校舍 붕괴 … 위기 몰린 신경영진, 惡手 던져”
[관련기사] ① “2代 理事長, 설립자 배신하고 靑丘를 청와대에 넘겨”

 2004년 8월 6일에는 이승욱 記者가 “‘각하! 대통령을 백년 할 수 있습니까’ - 권력에 짓밟힌 ‘독야청청’ 청구대학” 이란 제목을 달고 <OhmyNews>에 대대적으로 홍보해주었고(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서도 이것을 그대로 옮겨와 실어 주었다), 2005年에는 EBS 김영상 PD가 카메라班을 대동하여 지금 嶺南大의 校庭에 놓여 있는 靑丘大學의 “새 역사의 창조자”란 碑石의 영상도 곁들여 나의 인터뷰를 방영했다(6/2, <50年 敎育史 시리즈>中 一篇).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의 白元宇 議員이 자발적으로 “校主 朴正熙” 문제를 들고 나섰다(2005). 대구에 온 그를 만나니, 그는 내게 <데일리 서프라이즈>란 인터넷 신문의 인쇄판을 건내준다. 거기에는 白議員이 1981년 7월 31일字 당시 理事會 會議錄을 조사하면서 캐낸 비교적 소상한 정보가 실려 있었다. 大略을 정리해보면……

 嶺南大學校 理事會 7名中 5名이 "정수장학회," "육영장학회"의 理事를 兼하고 있다.
박근혜를 비롯하여, 한준우(정수장학회 理事), 신기수(정수장학회, 육영재단 理事), 유연상(육영재단 理事, 육영수 여사 조카사위), 류준(육영재단 理事, 당시 嶺南大學 재단 理事長).
(소위 '정수장학회'는 元來 釜日財團의 김지태씨로부터 非理로 빼앗은 것으로 2008年 "진실, 화해를 위한 過去事整理委員會"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上記 날짜 理事會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設立精神"(嶺南大學의 형성과정을 보아 온 사람으로서는 이 精神이 과연 어떤 정신인지는 알 수 없지마는)을 길이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정관 제1條에 "校主 박정희"가 明文化되었다고 한다.

 박근혜는 1980년 3月 당시 29세 나이로 嶺南大學의 理事로 취임하여, 한 달 뒤에 理事長이 되었으나, 校內 民主化 세력의 반발로 6個月만에 물러났다. 그러나 理事職은 維持하면서, 동생 박근령 등 측근들을 理事에 앉히는 등 실질적인 영향력을 誇示했다. 그런데 이 측근들이 不正入學事件, 不正金錢事件등에 연루되면서 더욱더 朴 大統領 家族의 理事會 退陣의 소리가 校內에서 거세져, 1988년 11月 全員辭退를 불러오고, 官選理事體制로 들어가는데 또 하나의 要因이 되었다 한다.
 奇異한 현상은, 2005년 당시 이 신문은 舊 財團側이 정관上 校主가 박정희인 理由로 아직도 그學校를 朴씨 家族에게 돌려줘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賊反荷杖"이라 매겼는데,  2008년 12월 지금에 와서,  舊財團側이 아니라 學校 自體가 正常化 方案으로 박근혜의 舊 財團의 복귀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과연 이 정권의 교육부는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자못 주목된다. 지금 소위 私學紛爭調整委員會란 것이 생겨 교육부는 여기에 상당부분의 事務를 委任하고 있는 모양이나, 嶺南大學 案件은 엄밀히 말하여 사학분쟁이 아니다. 어느 개인과 박정희 大統領과의 相對가 안 되는 씨름이었다. 學校側이 제출한 소위 方案에 대하여 교육부가 장차 취할 결정은 현 정권의 本色을 드러내는 징표가 될 것이다.  

 이 신문은 또 私立大學校가 國政監査를 받은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 지적하고, 박근혜 체제가 퇴진하기 전의 人脈形成을 보면 당시 理事陣은 "정수장학회"를 배경으로 全的으로 嶺南大學校의 私有化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靑丘大學의 경우를 한 마디로, 1966年 經理職員의 不正行爲와, 1967年  6月 新築中이던 校舍의 붕괴가 原因이 되어, 그 收拾策으로 택한 길이 설립자를 배제하고, 鷺山(이은상)을 내세워, 박정희 大統領에게 進上한 행위였다고 요약했다.  

 1988년 10월 18일 國政監査 記錄은 이미 위에서도 引用했으나(連載 제 10回), 白議員은 監査內容의 또 한 面을 照明하고 있다:

 金東英 議員: "박정희 大統領이 재단에 出捐한 資金은 얼마인가?"
 趙一文 財團理事長: "文書上  나타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金 議員: "財團理事인 박근혜씨가 財團에 出捐한 額數는 얼마인가"
 趙理事長: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은 없다."
 朴錫武 議員: "박근혜씨가 嶺南大에 등장해서 關與한 理由가 뭐냐"
 趙理事長: "朴 大統領을 校主로 모셨고, 따님이라는 因緣 때문이다."

 白議員이 이 대목을 金副總理에게 質問하니, "이것은 當該 學校法人이 고치거나, 해결할 問題"라 答하자, 白 議員은 이것은 17年 동안 官選理事를 파견하여 委託관할 하고 있는 교육부의 책임이라 지적했다. 2005年에 그랬다면,  2008年 12月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 朴正熙 校主와 金大中씨의 握手?

 白議員은 “朴大統領 校主”의 非理를 문제삼았고, 敎育副總理는 이것은 當該 學校가 햐결할 문제라고 卽答을 했건만,  當該 學校에서는 이걸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奇貨로, 政治的 제스처까지 서슴지 않았다. 金大中씨에게 名譽博士를 줌으로 해서 우리나라 過去事淸算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故  박정희 前대통령이 校主로 있는 영남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 당초 김 前대통령은 영남대의 명예박사 학위 제의를 거절했으나, 禹 總長이 예방, ‘박 전 대통령이 상징적 校主로 있는 영남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동서 화합과 과거사를 정리하는 뜻에서 의미가 있다’ 고 설득한 끝에 성사됐다는 것 …… 11월 2일 대구를 방문 …… 다음 날 영남대에서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 실제로 (학교법인 영남학원)정관에는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해 교육한다’고 규정 …… 우동기 총장은 ‘죽은 박정희 前대통령과 김대중 前대통령이 화해하는 것은 개인차원을 넘어, 한 시대와 과거의 어두운 유산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고 밝혔다.』(매일신문 2005 9/27)

이듬 해 드디어 이것이 實現이 되니, 나는 보다 못해 다음과 같은 글 한 편을 써서 社會啓蒙을 꾀하였으나 언론은 받아주지를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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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가 주선하여 박정희와 김대중이 악수?                      2006 3/18

"신문 보도에 의하면(2006 3/2, 매일신문) 金大中 前 大統領은 21일 드디어 嶺南大學校에 행차하여 ‘명예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한다. 작년 가을에도 같은 내용의 소문이 있었는데, 김前대통령이 이것을 거절하여 흘러간 이야기로 그친 줄 알았으나, 이제 드디어 그 제안을 수용한 것 같으니, 金 前 大統領을 위하여 애석할 뿐 아니라, 우리는 영남대학교의 眞名譽를 위하여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上記 신문에 의하면, 嶺南大學校 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상징적 校主로 있는 嶺南大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동서화합과 과거사를 정리하는 뜻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히고 있으니,

 -- 작년 9월 國會 白元宇 敎育委員이 박정희 前 大統領의 校主云云을 문제삼은 바 있음을 생각할 때, 嶺南大學校는 倫理道德問題에 대하여 너무나 무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 이것을 過去事의 整理에 겨누고 있으니, 사회의 知性과 良心을 대표해야 할 大學으로서  너무나 역사와 사회에 대한 無知를 나타내고 있다.  박정희와 김대중을 악수시킴으로써 과거사 정리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公事를 어느 개인들의 私感의 갈등에 돌리는 발상이다. 가뜩이나 혼탁한 사회의식을 더욱 昏迷하게 하고, 과거사 정리란 민족적 과업을 모독하는 일이다. 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하여 특히 憂慮되는 일이다.

-- ‘동서화합’을 말하니 이것은 사회의 그릇된 통념을 그냥 따르는 말투로, 오히려 근거가 희박한 ‘동서불화’를 旣定事實인양 매기는데 一助를 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영남과 호남의 갈등’ 이란 사실이기보담 다분히 하나의 정치적 조작이었다.

金 前 大統領이 南北交流에 이바지한 공로에 대해서는 우리도 十分 수긍하는 바이니, 차라리 이 명분하나로 그를 致賀하는 것이 나을 뻔 했다. 그분이 元來 招請을 拒絶한 것도  그저 謙遜이 아니라, 上記한 바와 같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自身의 去趨 하나가 社會에 미치는 그야말로 ‘意味’가 크기 때문이다." 

                               ----- *** -----              

 마) 正常化 한다면서……?

 2006년 4월이 되니 신문은 大書特筆하여 “敎育部 官選理事 派遣 事由 解消”라하고, “嶺南, 大邱大 正常化 靑信號”를 一面에 보도했다. 그런데 ‘正常化’를 한다면서 내게는 한 마디 소식도 없는 것이 애초에 학교를 臟物로 만들 때 설립자를 따돌린 바로 그 행위다. 나는 嶺大法人事務局으로, 敎育部 私大支援課로 전화와 書信攻勢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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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人的資源部 私立大學支援課>                           2006 4/24
현 철환 事務官 님 앞:

 전화에서 얘기한바, 참고 서류를 보냅니다.
..................................

 내가 전화에서 화를 낸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되시지오.
지금 嶺大 法人局에 이번에 돌린 公文을 보러 갑니다마는, 人情上, 事理上 이 案件은 더 이상 눌러 앉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時代가 바뀌었어요. 현 事務官께서도 설마 時計를 되돌리고싶진 않으시겠지요. …… 國民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蔚山의 서용범 前任에게 그때 가지고 있던 資料一切이 아직도 사무실에 비치돼있는지 어떤지를 물으니…… 아래 직원이 한 일을 내가 어찌 알겠소 하기에 내가 一喝했습니다. 직원이 한 일을 上司가 모르고 누가 알겠느냐고.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 따지기 보담 그 자료가 거기 있는지 與否를 알고 싶습니다. 좀 알아봐 주십시오. 있다면 다시 보낼 필요없고, 없다면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靑丘證言』이란 冊子도 포함돼 있다고요.

 일단 理事會(官選)에 정상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들었습니다마는, 최종 결정은 貴課에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이 됩니다.  同封한 文獻 한자 한자 진실을  담고 있으니, 잘 음미하시고 정의가 살아나는 밝은 나라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 힘쓰십시다. 

 公務 바쁘신 가운데,
                                                     餘不備
                               ----- *** -----
 
 관청에 자료를 보내도 받은 사람들이 행방을 모른다 할 때는 정말 힘 빠진다. 한번 대충이라도 읽어 봤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더더욱 두려운 일이다.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을 궁지에 모는 것이 되니, 그 반응이 좋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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