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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세희의 은둔과 침묵, 고독이 빛나는 이유
작가 조세희의 은둔과 침묵, 고독이 빛나는 이유
  • 권성우 숙명여대·국문학/문학평론가
  • 승인 2008.11.24 13: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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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_‘난쏘공’ 30주년 기념식 단상

 

지난 11월 14일 광화문 교보문고 강당에서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난쏘공 30주년 기념 낭독회 및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 헌정식’에는 수많은 인파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열기로 채워졌다. 비슷한 행사에 가끔 참여해보았지만, 나는 이날처럼 200명이 훨씬 넘는 자발적인 청중과, 작가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존중의 마음이 가득한 행사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공적인 자리와 의례적인 문단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던 조세희 선생이 이날 낭독회에 참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그는 30년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세희 선생은 좋지 못한 건강으로 인해 낭독회 시간 동안 연신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도, 이 날만큼은 대단히 열정적인 발언과 함께 청중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했다.

연극배우 조재현의 매력적이며 서늘한 목소리로 ‘난쏘공’의 한 대목이 울려 퍼지면, 청중들은 자신이 ‘난쏘공’을 읽던 추억과 그 때의 선연한 감동을 되새기는 듯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는 대목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힘겨움에 대해 생각했으리라.

이번 낭독의 백미는 표제작 ‘난쏘공’에서 큰 오빠 영수와 영희가 대화하는 다음 대목을 낭독했을 때였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게.”, “꼭 죽여.”,“그래. 꼭.”,“꼭.” 낭독자들은 유독 이 대목을 힘주어 읽었으며, 그 강렬한 여운은 넓은 강당을 가로질러 신속하게 퍼져나갔다. 이 대목을 단지 과격한 대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땅의 현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절망과 분노와 탄식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조세희 선생도 아직 미완인 장편소설 『하얀 저고리』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묘사하는 대목이었다. 낭독회 중간 중간에 행해진 대화에서 그는 “‘난쏘공’을 처음 썼을 때 이렇게 30년 넘게 읽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난쏘공’이 더 이상 안 읽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낭독회의 끝 무렵 청중들에게 “나는 여러분들 젊은 세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절망하지 말라”, “여러분이 싸우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어 다시 싸우러 이 세상에 오게 될 것”이라고 의연하게 말하면서 “제발 그렇게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이러한 호소에 청중들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이 인상적인 풍경은 출간 30년이 지난 데도 ‘난쏘공’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려주는 열쇠가 아닐까. 시대적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분노, 이웃과 타자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난쏘공’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날 조세희 선생은 20여명의 동료, 후배 문인들이 참여한 ‘난쏘공’ 30주년 기념문집 『침묵과 사랑』을 문집에 참여한 소설가 최윤으로부터 헌정받았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소설가 조해일, 이승우, 이혜경, 그리고 『침묵과 사랑』에 참여한 필자들 다수가 참여한 뒤풀이 자리에서도 조세희 선생은 모처럼 들뜬 표정으로 ‘난쏘공’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한참이나 얘기했다. 그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새로운 의욕이 생기는 시간들이 정처 없이 흘러갔다.

낭독회 전 날에 있었던 2009년 수능시험에 ‘난쏘공’을 각색한 희곡이 출제됐다고 한다. 일부 교과서에도 ‘난쏘공’이 수록됐으며, 고등학생 필독서에 ‘난쏘공’이 포함되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또한 2008년 7월에는 한 인터넷 서점이 독자 4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대표작가’를 선정하는 설문조사에서 조세희 선생이 1위로 선정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소식이 결코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난쏘공’이 간직했던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뜨거운 분노, 그리고 작가 조세희가 마치 첫사랑의 순정처럼 지켜온 문학과 시대에 대한 남다른 결기, 담대한 문학적 자의식 등이 이제 일회용 상품처럼 소모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조세희 선생은 결코 ‘난쏘공’의 인기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의 오랜 침묵과 집회 현장에서 사진 찍기, “나는 좋은 뜻의 어떤 말도 들어서는 안 되는, 어린 시절 말로 실패자입니다.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습니다.”, “내 ‘난장이’는 십만 백만의 한계를 가졌다”로 상징되는 염결성은 그의 문학과 삶이 지닌 어떤 진정성과 깊은 경지를 표상한다.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암울한 시대를 향한 불화살이었던 한 작품이 현재까지 수많은 독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작품의 저자는 한편으로는 시대와 정면 대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동안의 은둔과 침묵 속에서 자신의 올곧은 문학적 자존을 지켜온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문학상 시상식에도 없었으며 문인들의 흥겨운 술자리에도, 심사위원의 자리에도, 문단원로들의 덕담 자리에도 없었다. 대신 그는 늘 고독 속에서 서재와 거리와 시위 현장과 탄식의 공간, 절망적인 현실 속에 있었다. 그러니 조세희의 존재 자체가 현실에 대한 성찰과 대응을 충분히 펼쳐놓지 못한 이 시대 문학에 치명적인 비판일 수 있는 것이다.

‘난쏘공’이 독재와 광주를 체험해보지 못한 이 시대의 젊음들에게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사실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난쏘공’에서 제기하고 있는 첨예하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의 현재성 자체가 30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이 지속된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본다.

예를 들어, 표제작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난장이 가족을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연대했던 지섭은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발언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으며 통렬한 되돌아봄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의 공책에 적혀 있었던 다음과 같은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이 예문을 접하면서 나는 바로 이 시대의 현실을 생각했다. 이 예문에서 제기된 주장은 실상 이즈음 서경식을  비롯한 몇몇 논객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주창되는 ‘타자의 고통과 상처에 공감하는 능력’의 선구적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미 30년 전에 조세희는 타자의 상처에 공감하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선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이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난쏘공’ 30주년 기념 낭독회와 뒤풀이를 마치고 돌아본 종로거리는 수많은 난장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을지로입구 지하철역에는 수많은 노숙자들로 가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시간강사,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 노숙자,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난장이인 것이다.

 

권성우 숙명여대·국문학/문학평론가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평의 매혹』, 『모더니티와 타자의 현상학』, 『낭만적 망명』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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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8-11-29 17:36:23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문학상 시상식에도 없었으며 문인들의 흥겨운 술자리에도, 심사위원의 자리에도, 문단원로들의 덕담 자리에도 없었다. 대신 그는 늘 고독 속에서 서재와 거리와 시위 현장과 탄식의 공간, 절망적인 현실 속에 있었다. 그러니 조세희의 존재 자체가 현실에 대한 성찰과 대응을 충분히 펼쳐놓지 못한 이 시대 문학에 치명적인 비판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 참 부끄러운 존재란 느낌입니다. 자칭타칭 지성인이건 무식자건 할 것 없이 모두 다 말이죠! 시대에 대한 고민이 어디 문학에만 국한된 몫일까요. 시대인 모두의 공통과제이겠지요. 조세희 작가 존재 그 자체가 이 시대에 대한 따끔한 일갈이자, 거울인듯 합니다.권 교수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