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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를 넘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MB노믹스를 넘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 한성안 영산대·기술경제학
  • 승인 2008.11.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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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학계 공동 학술대회 강평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위기가 몰고 온 여파가 워낙 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독특한 대응방식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 제5회 사회경제학계의 학술대회가 학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크게 끈 모양이다. 필자도 항상 비어있는 맨 앞자리 정도에나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발표장은 일찌감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경제의 진로: MB노믹스를 넘어서’라는 주제에 맞춰 첫째 세션에서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이 세 명의 연구자에 의해 내려졌다. 그 중 장시복 경상대 교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라 이번 위기를 진단한다. 그 때문에 이번 위기도 자본의 운동법칙에 따라 내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이 모임의 대다수 논자들이 역설하듯이 단순히 ‘금융위기’로 환원되기도 어렵다. 그에게 이번 위기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서 항상적으로 일어나는 순환적 공황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경제위기에 개입하겠지만 지배도구로서 그 계급성 때문에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은 이로 인해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조복현 한밭대 교수의 생각은 이런 근본주의적 해석과 약간 다른 것 같다. 그에게 지금의 자본주의는 『자본론』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곧, 금융부문에서 비유동성이 유동화 될 정도로 자본시장이 발전했고 금융의 세계화도 크게 진행됐다. 그리고 이번 위기는 자본시장의 유동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발전, 곧 자본시장에서의 규제완화와 금융혁신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위기는 순환적 위기와 달리 새롭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모순은 자본주의를 생산적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고 새로운 질서에 따라 조직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국가는 그에게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두 교수는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해 각각 독특한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복잡하게 진화한 현대자본주의를 달랑 『자본론』 한권으로 해석해 버리는 장 교수의 방법론이 여전히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나아가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국가적 처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장 교수의 방법론과 국가론에 대한 자신의 차이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조 교수의 논문에서 『자본론』과 차이를 보여 줄 방법론적 논거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케인스의 잔상은 감지되나 그의 실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 정치경제학은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두루뭉술하게 연대하기보다 방법론적으로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상호 발전해야 할 단계에 이르지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이어지는 MB노믹스에 대한 비판에서도 방법론적 성찰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동반성장과 지식주도 경제 곧 ‘혁신주도 동반 성장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혁신’과 평등을 지향하는 ‘동반’성장정책 혹은 국가‘균형’발전전략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우리의 궁금증을 그의 논문이 풀어주는 것 같지는 않다.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혁신과 제도의 문제를 ‘진화경제학적’ 방법론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 방법론의 보수적 경향성을 차단하기 위해 포스트케인지언 방법론과의 학문적 제휴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혁신 및 균형(평등)과 관련된 정책은 실로 방대했다. 하지만 그 정책의 초석을 다듬는 학술적 연구는 전무했다. 방법론적 성찰이 없는 정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러한 정책은 어떤 곳에서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없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가 전망하듯 세계적 금융위기는 민주세력이 “자본주의체제의 대안을 진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상가’들의 ‘직관적 입담’과 대중들의 쟁투만 난무할 뿐 학자들의 진지한 방법론적 성찰이 없다면 민주세력은 참여정부와 똑같이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 호기를 놓칠지도 모른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의 조세정책 및 재정정책에 대한 평가가 진지하게 이뤄졌지만 이종석 진보신당 위원의 비평도 매우 진지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오랜 숙제로 남아 있던 소득재분배와 경제성장에 관한 논의가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보수주의 경제학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의 ‘긴장관계’ 곧 동반 성장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공간을 비워두고 그들과 대결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MB정부의 금융정책이 금융감독 및 금산분리의 강화라는 세계적 추세와 역주행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완화와 금융지주회사 규제완화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통합 및 집중의 경제’에 비해 ‘분리 및 분산의 경제’가 얼마나 큰지가 규명돼야 한다.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절대적 진리로 세례 받아 온 그들은 물론 ‘우리’마저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칼 슈마허의 경구로 설득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분산과 집중의 경제에 관한 주제는 성장과 분배를 통한 동반성장의 과제만큼이나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 ‘시시포스의 돌덩이’와 같은 존재다. 피할 수 없는 주제라면 이제부터 즐겨야 되지 않겠는가.

MB정부의 부동산정책에 관한 변창흠 세종대 교수의 진단과 전망, 노동정책에 대한 노중기 산업노동학회 박사의 평가와 전망처럼 앞의 논문들은 사실 모두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귀중한 실증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사회경제학회의 진지한 연구풍토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의 가치를 드높여 주는 동시에 보다 발전된 연구의 토대가 될 방법론에 대한 연구는 취약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적 관점은 그 나름대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진보적 경제학 방법론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은덕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자본주의는 ‘자본론’만으로 완전히 설명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복잡하게 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경제, 지식기반경제, 세계화의 이름으로 변화된 현대자본주의를 이해할 방법론에 대한 성찰은 대단히 미흡하다. 우리의 앞에는 마르크스는 물론 케인스, 슘페터, 베블런, 폴라니도 존재한다. 이러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진보적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세계의 양심들은 진지하게 학술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실증지표의 개발은 물론 모형의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들이 해 놓은 고민들의 결과에 대해 귀 기울여 볼 수도 있지 않은가. MB노믹스를 넘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사족이지만 진보적 경제학의 발전을 위해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학술적 토론과정에서 상대방의 성과를 인정하고 이를 칭찬하는 예절은 참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감한 문제제기와 준열한 비판도 필요하다. 사회경제학계에는 ‘사회적 자본’이 과잉 공급돼 있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한성안 영산대·기술경제학

필자는 독일 브레멘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역서로 『유한계급론』이, 논문으로 「진화경제학적 기술확산모형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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