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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思想지형도의 비밀
[Cogitamus] 思想지형도의 비밀
  • 이택광 서평위원/경희대·영문학
  • 승인 2008.11.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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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창시절은 이른바 ‘사회과학서적’의 시대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내가 한 일은 이런 서적만을 전문으로 파는 ‘사회과학서점’에 가서 책을 읽는 일이었다.

요즘 북 카페라는 게 성행하지만,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사회과학서점들이 북 카페 노릇을 한 셈이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의자와 책상을 마련해놓은 서점들이 대부분이었고 서점 주인장과 안면을 익히면 저녁에 자연스럽게 술추렴을 곁들여서 책 속에서 얻을 수 없는 지식들을 사석에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 읽은 책들이라는 게 소련 교과서를 번역한 일본서적을 한국어로 옮겨놓은 게 다반사였고, 그래서 아예 일어를 공부해서 번역을 거치지 않고 원서를 읽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러나 말이 좋아 사회과학서적이지 당시 분위기로 본다면 이른바 ‘불온서적’으로 낙인이 찍힌 금서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서적들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떤 짜릿한 위반의 쾌락 같은 걸 부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금지된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 이와 같은 즐거움을 느낀 건 아니었다. 읽고 나면 떠들어야했다. 담배연기 자욱한 막걸리 집에 모여 앉아서 밤새도록 읽은 책들의 내용을 놓고 열변을 토하던 논쟁의 장이 없었다면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일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이슈를 만들어내는 책의 출간과 그 책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담론의 장이 공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컨대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은 당시 벌어졌던 사회구성체 논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고, 아마 역대 최대의 밀리언셀러라고 할 『철학에세이』 같은 경우도 그 당시 대학가를 메웠던 대학생 독서토론모임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으리라. 당시 군사정권은 이를 두고 ‘의식화학습’이라고 명명해서 ‘불온서적’을 압수수색하는 걸 국가적 과제로 삼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사회과학서적읽기 붐은 한국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지적 르네상스가 아니었을까.

80년대 이른바 ‘의식화학습’의 열기는 90년대로 이어지면서 세미나 문화로 유지됐던 것 같다. 현실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시절은 변했지만,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인식의 열정은 여전했다. 나의 경우는 학창시절에 책을 읽기 위해 휴학까지 하기도 했는데, 90년대도 이런 독서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밥은 얻어먹어도 책은 얻어 읽지 않는다는 지론으로 돈만 생기면 신간을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文字에 대한 갈증과 첨단의 이론을 선취해서 지적인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욕망이 뒤섞인 나의 독서행태가 90년대 세미나 붐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90년대 세미나 문화를 추동해간 그 배경에 이렇게 ‘남보다 더 크게 강하게 되기 위한’ 힘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 인문사회과학담론의 지형도는 이때 형성된 세미나 분파들에 근거한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화 마르크스주의가 잠깐 문화정치학이라는 화두를 제기하며 출몰했고,숨 돌릴 사이도 없이 대중문화연구와 퀴어 이론까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90년대는 말 그대로 담론의 백가쟁명시대를 맞이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황금시대는 잠깐이었다. 학계에서 자크 데리다나 리처드 로티가 주가를 올렸다면, 학계의 방외에 위치한 급진주의자들을 점령한 건 질 들뢰즈였다.

들뢰즈는 재빠르게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하면서 급진주의의 주인기표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을 왈가왈부하려고 내가 이런 사상지형도를 자의적으로 그리고 있는 건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사상지형도와 밀접하게 관련된 게 책들의 풍경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막심 고리키의 말이었으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 중 나쁜 건 없다는 말. 발터 벤야민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

이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은 야만과 싸워 이긴 기념비라고. ‘불온서적’이니 ‘금서’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이들 책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런 책들을 밤을 새워 읽고 토론했던 그 집단적인 문화가 없었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민주화’라는 것도 어쩌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세월은 흘러서 사회과학서적으로 넘쳐났던 서점의 진열대를 처세술이나 자기경영법을 설파하고 재테크의 원칙을 설명하는 책들이 차지해버렸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관심이 사회적 기획에서 개인적 기획으로 바뀌었다는 걸, 이런 현상은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이택광 서평위원/경희대·영문학

‘코기타무스‘ 는 서평위원들이 집필하는 북칼럼입니다. 장은주 교수를 시작으로 강진아, 구갑우, 곽차섭, 권성우, 김혜경, 이봉재, 이왕주, 이택광, 홍훈 서평위원의 글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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