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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秘史-최찬식의 청구대학 증언] ⑬ 判定勝
[대학 秘史-최찬식의 청구대학 증언] ⑬ 判定勝
  • 교수신문
  • 승인 2008.11.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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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회의 敎育委員이 바뀔 때마다, 嶺南大學校의 총장이 바뀔 때마다 편지깨나 썼다. 메아리 없는 그 편지들은 내가 보아도 지겨울 程度이니, 일일이 여기에 列擧하지를 않는다.  官選理事들을 찾아가서 안건을 열어달라고 말을 꺼내려하면, 모두 “우리는 힘없습니다, 일 년에 도장 몇 번 찍어주는 일 밖에 안 합니다”라고, 겸손의 美德으로 본다면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 자리엔 왜 앉아 있소’ 꼬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지만 차마 대놓고 그 소린 못했다. 하기야 1999年 鄭秉學(亞細亞學術硏究會 會長), 林元澤(서울大學名譽敎授, 學術院 會員) 두 분이 앞장서고,  安秉煜(崇實大學校 名譽敎授), 梁好民(翰林大學校 碩座敎授), 趙敬熙(前嶺南大學校 總長, 名譽敎授), 徐鏡普(嶺南大學校 名譽敎授), 李鍾厚(嶺南大學校名譽敎授)등 여러 선배들이 후원하여 나를 官選理事로 교육부장관에게 추천한 일도 있었으나, 이일은 없는 듯 지나갔다. 政治的 時計는 아직도 까마득히 먼 곳에 머물러 있었다고 할까.

[관련기사] ⑫ 深宮에 갇힌 “行動하는 良心”(2) ”

[관련기사] ⑪ 深宮에 갇힌 “行動하는 良心”

[관련기사] ⑩ 國政監査와 判定勝

[관련기사] ⑨ 時代의 證言과 參與
[관련기사]
⑧ ‘工專’‘靑丘’ 이름에 집착한 사연 … 설립자, 구체적 설계 있었다

[관련기사] ⑦ ”20년 피땀어린 학교 되찾기 위해 百方으로 뛰었지만 ”
[관련기사] ⑥ 대통령에게 보낸 진정서 … “사학 설립자 노력 정당하게 대접해야”

[관련기사] ⑤ 大邱에서도 의아해했던 ‘청구-대구 합병’… 설립자 의사 무시

[관련기사] ④ 陶南 조윤제 박사 ‘다시 일어서자’ 권유해 희망 가졌지만

[관련기사] ③ 이사장 자리 비어있던 ‘진상 각서’ … 故人의 말을 직접 인용한 까닭
[관련기사] ② “1967년 6월 신축 校舍 붕괴 … 위기 몰린 신경영진, 惡手 던져”
[관련기사] ① “2代 理事長, 설립자 배신하고 靑丘를 청와대에 넘겨”

 

 가) 對 敎育部

 내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資料뭉치에 대해서는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이러한 回信이 왔다: “귀하가 대통령 비서실에 제출하여 우리 부로 이송된 <청구증언 책자 및 기타 자료>는 동 학원 업무처리시 참고하겠음을 알려드립니다. 끝”(문서번호 대행 0700-263, 1999 7.20)

 2003年에는 교육부가 간판을 갈아, “젊은 양심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라는 標語를 단 ‘敎育人的資源部’가 다음과 같은 回信을 보내왔다: “귀하께서 대통령 비서실에 제기하여 우리 부로 이첩된 영남대학교 설립과 관련한 민원은, 우리 부의 학교법인(영남대학교)관련 업무에 참고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끝.” (문서번호 대재07000-290, 2003 03.04) 이번에는 친절하게도 회답에 대한 만족도를 묻고 그 事由를 적어 달라는 요구까지 있으니, 뭔가 改良하고저 하는 정부의 의도가 보인다. 국민으로서 이런 좋은 뜻을 奬勵를 했으면 했지, 무시를 해서 되겠는가. 그래서 나도 고객 만족도에 대한 이 설문을 진지하게 받아드려, 만족도 ‘보통’에 체크하고 다음과 같은 事由書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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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財政課:
課長 서용범  事務官 하헌석 擔當者 유해은 貴下
 
 오늘 回信… 잘 받아보았습니다. 迅速한 回信에 감사드리며, 거기다 滿足度까지 물어주시니 民主行政의 樣相이 이렇게 달라졌구나싶어, 今昔之感을 禁치 못 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이것이 형식뿐 아니라 實質에 가서도 명실상부할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본인도 여러분의 요청을 額面그대로 받아드리고 대답할 작정이오니 諒知하시기를.

 滿足度에 좀 未洽한 까닭은:

 - “업무에 참고”하겠다하시니,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明白치 않습니다. 본인은 구체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니, 구체적인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 元來 이 案件은 敎育部보담도 당시 朴大統領, 李厚洛室長의 次元에서 저질어진 일이어서……敎育制度나 政策의 문제와는 次元이 다릅니다. 大統領非理에 관한 문제입니다.

 - 그래서 1988年 國會文公委의 嶺南大學國政監査에서는 바로 이것을 지적하고, 換骨奪胎를 指示하고 갔는데……그 후속조치는 간 곳 없으니, 지금 行政上으로는 이 後續措置를 하는데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 그러나 옆으로 가나, 모로 가나 해결만 보면 그만입니다. 어느 부처에서 다루든간에 내 所關은 아닙니다. 靑瓦臺 次元이든, 敎育人的資源部이든, 官選理事會이든.

 - 蛇足일는지 모릅니다마는, 제발 ‘사람의 얼굴을 가진’ 行政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긴 民主化運動 끝에 이제는 이걸 바랄만큼 때도 되었습니다. ……잘못을 속에 안고 있을 때에는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입니다. 이번에 大邱地下鐵事故를 보셨지오. 그 원인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事故共和國’의 汚名을 벗어나갑시다. 눈에 보이는 事故보다, 안 보이는 사회적, 정치적 사고란게 있어 이것이 더 무서울지 모릅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게 터지는 데는 더 시간이 걸릴진 몰라도.

 - 金 前大統領은 民主運動의 先鋒으로 나도 아끼고, 그분의 對北政策은 지금도 나는 支持합니다마는, 國內의 正氣回復에는 未盡한데가 多少있었습니다. ……‘大統領에게 편지하라’는 internet homepage 가 있어 無慮 10차례 했는데도 無一答信이었습니다. 부디 前轍을 밟지마시기를!

 - 이 案件에 관한 文獻一束……은 前 敎育副總理에게도 가 있었고, 首席秘書에게도 보냈으니 어느 것이든 가져오는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밖에 資料나 質問을 願 하시면 기꺼이 應할 것은 勿論입니다. 이곳에 官選理事會가 있으니 그 機關을 活用하셔도 될 듯합니다. 何如튼……事必歸正의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번에 주신 친절한 회신이 이것을 믿게끔 합니다.
                                 2003 3/7     大邱    崔 瓚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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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對 官選理事會

 官選, 臨時理事會는 大邱가 本據地다. 咫尺에 있는 이 機關과 對話를 열면 이것이 첫걸음인데 싶은 생각을 뿌리칠 수 없어 2002年에는 3차레 門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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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大學校官選理事會  貴中 (1次 )                                2002 2/26
                                                                                                                        
案件: 靑丘大學設立者의 名譽回復을 위하여 議題上程을 要望함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嶺南大學校는 1967年 靑丘大學과 大邱大學(當時)의 통합으로 이루어졌는바, 이것은 靑丘大學 設立者의 동의 없는, 官權의 강압에 의한 처사였습니다. 設立者의 절실한 호소가 묵살당하고, 마침내는 情報部의 威脅的인 緘口令 속에 파묻혀 오던中, 1988年에야 드디어 사회전반의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국회에서는 文公委 監査班을 派遣하여 그 부당한 成立過程과 不正한 정체성이 糾彈되었으나, 불행히도 아직 舊態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 社會與件속에 荏苒 因循姑息한 상태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卽 ‘88年 以來 第4,5 共和國의 世稱 “王立大學”의 멍에는 벗어났으나, 당시 文敎部는 加害者(靑瓦臺 執權者)와 被害者(靑大 設立者)를 같은 範疇에 넣는 착각으로, 被害者의 접근마저 차단하고, 官選理事 派遣만 능수로 삼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官選理事란 元來
過渡, 臨時措置로, 私學을 인정하지 않는 國家體制가 아닌 以上, 永久制度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은 周知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派遣된 여러분께서는 드디어 이때까지의 타성과 因循을 벗어나서,
영남대학교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果敢히 上記의 議題를 採擇해주시기를 務望
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1988年 國會文公委가 분명히 지적하고 간, 학교의 不正한 成立過程과 불미스러운 정체성에 대한 判定의 後續措置이니, 행정상으로도 正當한 手順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 “換骨奪胎” 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일과성으로 지나가버린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떳떳하지 못한 풍토에 起因한다는 것에도 이견이 없으실 줄 압니다. 卽, 口號는 茂盛한데 실천은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안일한 타성에서 벗어나는 데는 바른 정신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또 因循姑息을 택하시려면, 이유를 찾는 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마는, 이 번 만큼은 사회와 국가를 위한 진정한 봉사를 위하여 快刀를 들어 亂麻를 잘라주십시오. 비단 嶺南大學을 바른 토대에 놓고, 設立者의 死後 寃枉을 바루어 줄 뿐 아니라, 混濁한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맑은 바람을 불어넣는 功이 될 것입니다. 公務執行에 이 以上 보람 있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일전에 “靑丘證言” 등 참고문헌 一束을 여러분 모두에게 건너드린 바 있습니다마는
會議에 본인이 참석하면 직접 質疑, 補充說明등을 가능하게 해 彼此에 得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2 年  2月  26日                           崔 瓚 植
                                                         也靑先生紀念事業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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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大學校官選理事會  貴中 (2次)                                 2002 7/27

案件: 지난 2月에 提出한 議題上程 要望書 督促의 件

 酷暑季節에 안녕들 하십니까.

 公私간에 바쁘신 줄 아오나, 지난 2月에 提出한 議題 上程 要望의 件에 대하여 아직도 接聞한 바 없어, 궁금한 나머지, 原文 複寫를 同封하여 想起하시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前番에도 말씀드렸지만, 敎育部나 大學 運營當局보다 조금이나마 客觀的 餘裕를 가지신 理事會 諸彦에게 이 일을 囑望하는 바 多大하오니, 信任을 저버리지 않으시길 重重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餘 不一                         
                                   ―--- *** -----

   嶺南大學校 理事會  여러분께 (3次)                                2002 10/29

 지난 2月에 靑丘大學 名譽回復件에 관하여 懇曲한 言辭로 來歷과 정황을 설명하여 議題 上程을 要請 하고, 7月에 또 備忘 督促을 한 바 있습니다마는, 아직도 아무런 반응을 보지 못하니, 아무리 내 마음은 타도 여러분 마음에는 닿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내 딴에는 어지간히 人情, 事情을 曲盡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성공을 못 보았으니, 내가 人心이란 것을 잘 못 알은 것인지, 아니면 내 言辯이 아직도 未達햇는지, 가늠을 못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상대로 끈질기게 매달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敎育部는 全國的인 政策問題로 시달리고 있는 것을 매일 신문에서 보는 바이고, 대학의 실무진은 나날의 煩雜한 事務에 바쁘실 것이 뻔한데 반해, 여러분은 그래도 시간적으로, 또  業務上 조금은 餘裕가 있고 距離가 있는 터이라, 本件과 같은 그 학교의 특수 사정과 原理原則을 생각하는데는 바로 適格이 아닐 까고.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요.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그 學校 1948年 始初부터의 緣故者이며, 50年代에는 奉職도 하고, 지금 嶺南大學校의 校是에도 反映돼잇는 <靑丘大學 敎育精神>의 草案者이기도 합니다.  (내가 드린 『靑丘證言』을 參照하십시오). 여러분은 官選任命되기까지는 언제부터, 얼마만큼 그 학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내가 왜 그 學校問題를 論議하는 자리에 門前薄待를 당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분 개인차원의 도의감이나 염치로는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 내가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의 印象은 全혀 달랐으니까. 나를 官選 理事에 推薦한 사회 인사들이 있어 推薦書를 提出한 일도 있는데, 敎育部에서는 묵殺해버리더군요. 여러분은 이것도 정당한 處事였다고는 생각하십니까.    
 
         敎育部의 處事는 무지와 蒙昧에 因한 것입니다. 자기들도 모르게 구시대의 惰性에서 행동하고 잇는 것입니다. 名目上으론 지금 淸算했다고, 아니면 하고 있다고 하는 그 구시대의 권력의 타성이지요.  그것은 靑丘大學을 “簒奪” 해간 그 權力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時代도 몇 구비를 돌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사회 여기 저기 惰性으로 남아있는 그 권력의 잔재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타의로, 교육부로부터 委囑을 받았을 뿐, 그 以上 責任도, 알아야 할 의무도 없노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依據하는 權威도 바로 그 敎育部의 權威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여러분은 因循姑息하여 昨如是 今如是로 任期만 채울 수도 있고, 무슨 曲折로든 一旦 그 자리에 앉은 以上 일다운 일을 하고 떠날 수가 있는데, 아무쪼록 後者를 택하시기를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길을 가다가도 不正不義한 일을 보면 바루고 가고 싶거늘, 바로 그 要路에, 要處에 앉아계시면서 보고도 못 본 척 피해 가시려는지요?  이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고, 사회에 대한 봉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건너드린 문헌으로 故人의 怨恨을 엿보셨을 것이고, 나의 苦楚를 보고 계십니다. 故人(靑丘大學 設立者)은 嶺南大學校를 말하여 “臟物學校” 라 했습니다. 이게 그냥 넘어 갈 말입니까? 그 학교가 잘 되기를 위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으신다면, 한번 사실을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元來 그 학교와는 특별한 인연도, 利害關係도 없는 중립적인 자리에서, 설사 옳은 발언을 하고, 옳은 행동을 하여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어떤 손해이겠습니까. 손해가 될지, 명예가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에게 있어 여러분은 주어진 유일한 창구입니다. 靑瓦臺에는 몇 차례 試圖했으나 문헌과 陳情의 전달마저 차단당했고(사실 金大中 大統領이 이 案件에 대해서는 가장 오래, 제일 잘 아시는 바임에도), 교육부는 앞서 말한 이유로 효과를 못 볼 것 같고, 대학에서 나날의 事務에 沒頭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여유가 없을 것 같으니, 붙들고 말 할 자리는 천상에 理事會 여러분뿐이네요. 幸여 귀찮은 인연이라 여기질 마십시오.  不正不義를 바로 잡는데 同途를 勸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해묵은, 덮어 둔 事案이 매일같이 불거져 나오고 터져 나오는 사회입니다. 부글거리는 원한을 덮어둔다고 영원히 사라집디까. 무리로 눌러 감추기만 일삼다간 언젠가는 무서운 힘으로 폭발하는 것이 자연의 理致랍니다. 이 나라 사고는 擧皆가 人爲란 것도 이제는 定說이 나 있지요. 천하가 混亂하는데는 匹夫有責이라 했는데,  여러분은 이미 匹夫의 位置가 아닙니다. 

 일은 接觸하여 대화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공식으로 만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우선 사적으로라도, 卽 豫備會合을 記錄없이 만나도 좋다고 했습니다. 부디 피하는 것만을 能事로 알지 마십시오.  

                                   ----- *** -----

 연초에 시작하여 한 해가 다 할 무렵까지 3 차례에 거친 이 懇請도 바람에 부친 편지처럼 허무하게 끝났다. 분명 門을 두드려도 房안에는 人跡氣가 없다할까.  理事會에는 白樂晴이라는 民主勢力의 著名人士도 끼어있어, 나는 은근히 기대도 좀 했었다만.  그의 창의력과 비평정신으로도 그들의 무감각의 장벽을 뚫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위에서도 言及했지마는 總長이 갈릴 때마다 學校의 根本을 想起시키는 書信을 내고, 대화를 慫慂해도  默殺 一邊倒였다. 모두다 꽁꽁 숨어서 나오지를 않는 꼴이니……. 이만하면 그들은 이미 나에게 判定勝을 준 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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