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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 여성, 더이상 주변의 문제 아니다
[만파식적] : 여성, 더이상 주변의 문제 아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2.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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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8 00:00:00
조현옥/배재대 정치외교학

며칠 전 정치학회의 여성분과 모임이 있었다. 여성분과는 말 그대로 여성과 정치에 관한 분야를 다루고 구성원도 대부분 여성학자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남성연구자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 날도 동석한 남성연구자를 보고 모두 지나칠 정도로 반가워했다. 여성문제가 여성연구자들끼리만 하는 특수분야를 넘어설까 하는 기대에서였으리라.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눈에 빨리 들어오고 중요한 변수는 성 구분이 아닐까 싶다. 성전환이라는 특별한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성별은 자신의 일생을 가름하고 조건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이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조건들, 성별이나 피부색이나 외모 등의 조건들을 뛰어넘어서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지역, 성별, 외모 등의 일차적인 특징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고 그 중에서도 성별은 여성들이 멍에처럼 지고 있는 짐이라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숫적으로는 사회구성원의 반수를 차지하는 막강한 집단이다. 그렇지만 그 막강한 힘을 제대로 발휘해 본 적도 없고 사회적으로는 항상 남자들이 앞장 서 있을 때 두 번째 줄에 서 있는 소수세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만약 여성들이 파업을 한다면 굉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물론 그런 파업같은 것은 꿈꿀 수도 없을 만큼 단결이 힘든 그룹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성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불평등한 구조를 깨보자는 의미에서 여성문제라는 분야가 생겨나고 여성학도 정립됐으며, 정부부처에 여성부도 설립되고 온갖 직종이나 분야에 여성이라는 접두사가 붙게 됐다. 이는 이제까지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오고 있으면서도 마치 모든 인류가 다 참여하는 듯 보였던 남성주류화에 대한 작은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저항을 넘어서서 그동안 평등해진 교육의 기회를 발판으로 여성들이 점차 사회분야로 진입해 들어오고 있는 과정인 듯 하다. 그래서 남성들 일각에서는 여인천하라며 자조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여성은 주변부에 머물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지는 분야가 정치계와 학계가 아닐까 싶다.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그 대표성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5% 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정치계가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은 여성을 포함한 신인을 배제하는 그 구조적인 폐쇄성에서도 비롯된다.
학계도 여성에 대해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교육을 받는 수혜자 중 여성 비율은 이제 50%에 도달해 가고 있는데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 중 여성은 소수이며, 특히 인문계와 예능계를 제외한 곳에서 여성교원들은 비정규직인 강사들이거나 구색맞추기 수준이다.
여성의 소외는 인적구성에서 뿐만 아니라 연구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참여나 성적평등을 다루는 문제는 꼭 여성들의 권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숫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소수의 세력밖에는 형성하지 못하는 사회집단에 대한 연구이며, 사회적 배분이 평등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전공에서나 여성관련분야는 여성학자들끼리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여성에 관한 주제는 세미나에서도 전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고, 여성들의 눈치 때문에 대놓고 반대는 못하겠으나 다 부질없는 투정이라는 태도들이다.
그래서 여성문제는 전공여부에 관계없이 연구자들의 성별에 따라 나눠지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여성정책이 여성들에게 베푸는 선심성 정책으로 접근되는 것과 같이 여성연구도 여성학자들에게 떼어주는 작은 지분정도가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이젠 각 대학에도 여성관련 과목들이 많이 개설되고 있으며, 여성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남성연구자들도 소수이긴 하지만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여성문제가 여성들에 의해 여성들만을 다루는 주변부의 주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서, 사회적인 문제로 학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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