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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인문교육과 지식정보화
[學而思] 인문교육과 지식정보화
  • 류해춘 / 성결대
  • 승인 2002.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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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8 16:09:37

류해춘 / 성결대 국어국문학

21세기는 지식정보화의 시대이다. 지식정보화는 생명공학, 정보통신 분야를 비롯한 첨단산업분야가 인문학보다 앞서 나간다고 할 수 있지만, 21세기의 인문학도 과학기술과 지식정보화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홀로 자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지식정보화 현상에 부응해 인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도 컴퓨터를 이용하여 학생들을 교육하거나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러한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와 교육은 21세기가 도래한 현재 우리의 대학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는 이제 더 이상 숫자를 셈하는 계산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대학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교육과 연구 그 자체로 다가오고 있다. 대학에서의 지식정보화 세상은 교수들의 연구하는 방식, 교육하는 방식, 여유를 즐기는 취미생활, 그리고 가족, 동료교수나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하는 행위를 변화시켜 대학교육 그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대학교수들은 자신의 전공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시간보다 기술공학도의 기술지상주의와 자본주의의 실용주의에 현혹된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시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작년에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사이버강의로 진행했는데, 첫 시간에 사이버강의 수강요령과 그 평가방법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1백여명의 학생들이 모여있어 깜짝 놀랐다.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이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다른 교양과목으로 옮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하루에 1백여명의 과제가 컴퓨터로 전송되어 오면, 3학점 교양과목에 매달려 며칠 동안 컴퓨터와 씨름할 일을 생각하니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한 시간 동안 사이버강의의 단점과 학점취득의 어려움 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 수강생이 엄청나게 줄어 30여명의 학생으로 한 학기동안 ‘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사이버로 강의했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질문과 과제물을 컴퓨터로 주고받으며 평가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생각을 한 학기 동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질의는 주로 강의내용에 대한 것보다도 사이버강의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사이버강의는 내 자신에게 새로운 과학기술을 인문교육에 접목시키는 그 자체로서만 의미가 부여되었을 뿐,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 쏟아 부은 노력과 시작할 당시에 기대했던 교육적 효과에는 크게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 강의는 인문교육이 과학기술에 눌려서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학교육은 지나치게 학문을 외우고 받아쓰며 베끼는 방법으로 교육해 왔다. 더욱이 지식정보화교육은 그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어, 너무 기술지상주의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상상력 결핍증에 걸린 ‘무늬만’ 디지털인 세대가 됐고 휴대폰에 문자메시지를 빨리 보내는 ‘손끝만’ 디지털인 세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는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지식에 탄탄한 기반을 갖춘 지식정보화가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21세기 인문교육의 목적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지식정보화를 통해 ‘전통적인 문화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열정을 지닌 인간, 인간중심의 미래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 등을 양성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문학 교수들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고도로 발달된 현재의 과학기술과 축적된 지식정보화의 자료를 인문학연구에 활용해야 하며, 그러한 연구의 결과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보다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21세기 주역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21세기가 기술에게 문화가 억눌린 기술독재의 시대라서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문화적 능력의 상실로 인해 위태로운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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