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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영국: 테리 이글턴의 자서전 『문지기』를 둘러싼 논란
[해외통신] 영국: 테리 이글턴의 자서전 『문지기』를 둘러싼 논란
  • 이택광 / 영국 통신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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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4:39:01
자신의 이념이 적으로 규정하는 ‘지배계급의 제도권’에서 스타 교수의 영예를 누린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한 일이다. 입이 열 개라고 해도 이런 어정쩡한 처지를 이중적이라고 비판하는 따끔한 질타를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말하기 거북하기 이를 데가 없는 이런 상황을 돌파해보고자 변명이라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해도 역시 따가운 언설의 화살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영국에서 최고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속한다고 할 옥스퍼드대에서 토마스 워턴 교수로 재직했고, 지금은 맨체스터대에서 문화이론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테리 이글턴이 이 논란을 기꺼이 떠맡고 나선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폭풍경보를 듣고서도 자신의 배를 무모하게 출항시킨 사건에 비길만할 것 같다.

미국의 프레드릭 제임슨과 자주 비교되기도 하는 이 스타 맑스주의자가 지난 달 발간한 자서전 ‘문지기’(The Gatekeeper)가 지금 영국의 지식계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명문대학의 영문학 교수이자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노동자 사회주의 연대’의 당원이라는 일견 모순적이면서도 치열했던 역정을 걸어온 이 기린아가 펼쳐 보이는 자신의 이야기는 출간되기 전부터 기대를 모아왔다. 영국의 각 신문들은 이글턴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앞다투어 그에 대한 리뷰를 게재하는 열성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적 신문이라고 할 ‘가디언’ 誌의 리뷰가 이글턴의 책을 악평한 것과 대조적으로 보수적 신문인 ‘데일리 메일’ 誌에서 뜻밖에도 이 책을 호평했다는 사실이다. 이글턴 자신은 ‘데일리 메일’에 리뷰를 쓴 기고자가 자신의 제자였기 때문에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라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글턴의 말은 현재 그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는 것이어서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과장 한 마디 보태지 않고 말해도 지금 현재 영국의 학문체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으로 그를 거론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수제자로서 실제로 문화연구라는 생소한 학문적 방법을 사회학을 넘어 영문학 커리큘럼에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글턴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런던대 영문학과 교수인 존 서덜랜드 같이 이글턴을 영문학연구와 문학이론의 지형도를 바꿔온 노장으로 거론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러나 서덜랜드의 지적처럼 만약 이글턴이 아르헨티나나 동유럽에서 활동했다면 실종자가 되었거나 감옥에 가 있어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역설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글턴이 ‘참을성의 수혜자’라는 지적은 일정 정도 타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이글턴은 모순을 해결하기보다 그 모순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안전한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서덜랜드의 비판적 시각은 ‘상투성에 대한 공포’가 이글턴의 체질이라는 긍정적 평가에 시비를 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이글턴이 옥스퍼드대에서 처해있었던 미묘한 입장이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옥스퍼드대의 이글턴 임용은 상당히 전략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모교이기도 했던 케임브리지대가 이글턴을 외면한 것과 달리 옥스퍼드대는 기꺼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인데, 이글턴은 여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맑스주의자 교수로서 학생들의 저항적 에너지와 학교제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중재하는 역할로서 화답했던 것이다. ‘이글턴 文選’ 을 편집했던 스티븐 리건은 전통에서 정치성을 읽어내는 전략의 일종으로 그의 읽기와 쓰기를 평가했던 적이 있다. 정통 케임브리지 방식의 독해를 영문학 정전들에게 행하면서도 이글턴은 전혀 새로운 읽기의 중심이동을 통해 그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비평이데올로기를 전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리건의 평가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글턴의 초기 행보가 이글턴 자신의 고백처럼 보수적 영국 학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글턴의 자서전에서 그려진 성장배경을 녹록한 것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다. 아일랜드계 이민 3세대 영국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난과 차별은 그에게 카톨릭을 버리고 맑스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줬던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 이글턴은 삶과 앎을 일치시키는 길을 모색해왔던 것이다. 이글턴 스스로의 말대로 자신이 비난을 받는 까닭은 언제나 한 길만을 걸어왔다는 그 범상하지 않은 사실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관된 길이란 반이론주의자로서 끊임없이 이론 자체를 해체해왔던 그의 모순적 궤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택광 / 영국 통신원 ·셰필드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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