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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에 대해 알고싶은 두세가지 것들
부르디외에 대해 알고싶은 두세가지 것들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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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의 사상적 궤적을 일정한 틀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스스로 어느 틀로도 환원되지 않는 지적 여정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동문선 刊)의 저자 파트리스 보네위츠는 구조주의 등 당대를 풍미했던 사유들의 영향력을 지적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부르디외의 이야기에서 지적 계보를 추출해낸다.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이 학자들과 매우 실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학자들-맑스·뒤르켐·베버-은 우리의 이론적 공간과, 이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구조화하는 지표들이다.”


부르디외는 정통 맑스주의가 다루지 않은 영역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그의 사회학이 정통 맑스주의와는 무관한 토양에서 자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요소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지배의 패러다임을 통해 사회질서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화력을 갖기도 한다는 것. 다만 “맑스적 계급이론의 결함, 특히 객관적으로 입증된 차이들을 다 설명할 수 없는 무능력은, 이 계급이론이 사회를 오로지 경제적 장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사회적 위치를 규정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부르디외의 주장은 맑스주의와의 거리를 짐작케 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반면 부르디외는 베버에게 강한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특히 사회학적 분석에 있어서 표상들의 역할과 합법성의 개념을 받아들였다는 것. 그러나 보다 강한 영향을 준 것은 뒤르켐인데, 대상의 특수성보다는 그 방식의 특수성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절대적 실증주의와 시간을 초월한 보편주의의 함정만큼은 피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오현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는 부르디외의 한국적 수용과정에 대해 “푸코와 들뢰즈가 거대담론으로 수용된 데 비해 실천적, 전략적 작업 속에서 받아들여졌다”면서도 실천적으로 결합시켜야 하는 고민은 아직 무르익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부르디외 이론의 수용과정이 다른 사유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면서도 한국의 현실을 천착할 만큼 무르익지는 못했다는 것.

‘크로니클’ 誌는 1월 25일자에서 향후 출판계획과 유고에 대해 전하고 있다. ‘개입 1961∼2001’이라는 그의 정치적 글쓰기 해설서, 그의 저작과 논문을 총망라한 서지, ‘독신남자의 공’이라는 인류학 저작이 곧 발행될 예정이며, 마네의 그림에 대해 논한 미완성 원고가 남아 있다고 부르디외의 공저자였던 로이 와캉 미국 버클리대 교수(사회학)가 말했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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