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2:25 (토)
지식 게릴라들의 고군분투, 업적 유혹 떨치고 학문 토대 강화
지식 게릴라들의 고군분투, 업적 유혹 떨치고 학문 토대 강화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1.03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규모 연구 모임을 주목한다

지난 6월 27일 발표된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2008년도 소규모연구회지원사업’에는 총 888 팀이 신청을 해, 250 팀이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적지 않은 수의 소규모 연구 모임들이 있음을 짐작하게 하고, 연구 모임이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외부 지원을 곧바로 연구 모임 활성화로 연결해 사고할 수 있을까. 본래 연구 모임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분명한 점은 연구 주제와 연구 기간 등을 명시해 활동하는 프로젝트 팀이나 대규모 학술 대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형 학회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연구 모임은 대개 10명 안팎의 소규모 연구자들이 공통된 관심사를 격식이나 형식을 갖추지 않고 나누기 위해 만든 모임으로 이해된다. 학생들의 세미나 모임보다는 상시적이고 전문성을 갖지만 명확한 연구 목표나 계획, 조직 구성을 동반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연구 모임은 보통 강독이나 자유로운 형식의 소논문 발표 등을 중심으로 그 활동이 이루어진다. 2000년대에 들어와 증가추세이고, 특히 대우재단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 이하 대우재단)의 연구모임 지원책에 힘입어 크게 증대한 시절이 있었다. 최근 학진에 연구회 지원사업 신청을 보면 전국적으로 1000 여개에 달하는 연구 모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형식적으로 결성된 모임도 적지 않아 실제 연구모임 수는 이보다 낮을 것으로 짐작된다.

산업사회연구회가 모임 후에 촬영한 사진


이들 소규모 연구 모임의 특성은 기동성과 유연성, 그리고 고전 강독과 같은 원전 읽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동성과 유연성은 산업사회연구회(간사 선재원·평택대) 같은 연구모임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산업사회연구회는 지난 2000년 조성원 고려대 교수(경제학), 서문석 단국대 교수(경제학), 최상욱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가 결성한 연구 모임이다. 이들은 기존 경제사가 거시적이고 수량적인 측면에 너무 치중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보다 실증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단위 분석을 시도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10여명의 회원이, 한 달에 한 번씩 2편의 논문과 논평을 발표해온 연구회는, 2년에 한 번씩 일본 도쿄대의 연구자들과 교류를 하고, 일본 학자들을 초청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우재단으로부터 2007년에 지원을 받은 바 있는 종교고전연구회(회장 김영태·전남대)는 ‘고전 읽기’에 무게를 실었다. 김영태 회장은 “『주역』, 『도덕경』,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 등의 고전 읽기에 주력을 하면서, 연구 모임을 통해 여러 종교에 대한 이해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종교 관련 대형학회가 한 종교만을 고집하는데 비해, 종교고전연구회는 여러 종교 간의 상호 소통과 이해의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2005년과 2006년에 대우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바 있는 동서정치철학연구회(회장 박의경·전남대)는 92년도에 결성된 관록있는 소규모 모임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하이데거와 니체는 물론이고, 동양의 춘추와 서경까지 다양한 고전을 읽고 발제하면서, 소속 연구자들의 학문적 토대를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박의경 회장은 “연구모임이 연구자들의 학문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연구 성과를 출판물 등으로 내는 것은 학술활동의 기본중의 기본. 1995년부터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서 시작해 현실 경제 정책까지 연구하고 있는 시장과 제도 연구회(회장 류동민·충남대) 같은 경우에는 『가치론 논쟁』과 『노동가치론의 재평가』라는 책을 내면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고, 대구 지역의 소장 학자들로 구성된 동양사상연구회(회장 이현지·계명대)의 경우는 동양사상연구학회와 공동으로 『탈현대와 유교』, 『동양사상과 여가』 등의 저서를 내고 있다. 그 외에 2006년과 2007년에 대우재단의 지원을 받은 연구모임으로는 기업사 연구회(회장 배영수·서울대), 키케로 강독모임(회장 김덕수·서울대), 동서고전문학의 교류(회장 이종화·명지대), 화이트헤드 세계의 이해(회장 이태호·한국종교문화재단), 소쉬르 강독 모임(회장 김현권·방송통신대)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 연구 모임은 과연 연구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이현지 교수는 동양사상연구회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 모임의 장점을 이렇게 정리한다. “연구 모임은 학문 활동의 중심이며, 개인 연구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각자의 연구 성과를 다른 연구자들과 교류 속에서 검증을 받게 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의 안정적인 학술적 교류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있다.” 산업사회연구회 정안기 고려대 연구교수는 이에 덧붙여 연구모임이 연구자들 사이의 학술적 교류만이 아니라, 인간적 교류까지 가능하게 해, “메마르기 쉬운 연구자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나 소규모 연구 모임은 외부 지원이 없는 경우가 많고, 규모가 작아서, 어려움이 있다. 특히 지방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정보와 교류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한 경우가 많고, 서울에서 모임을 가질 경우 연구 공간조차 확보를 못하는 일이 많다. 류동민 회장 역시 “장소를 빌리는 문제가 항상 걱정거리”라고 강조하면서, 대학 공간을 겨우 빌려서 모임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연구 모임들에 대한 지원의 형평성 문제도 늘 도마에 오른다. 10년 전부터 계속된 대우재단의 연구 모임 지원의 경우, 한 때 거대 학회에서 단지 지원금을 타기 위해 신청을 하는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학진의 소규모 연구 모임 지원의 경우에도, 과연 어려운 여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구모임에 실질적 지원을 하고 있느냐가 문제시 되고 있다. 지원의 지속성도 문제인데, 이현지 회장은 “학진이나 대우재단의 지원은 일회적인 것에 불과해, 보다 장기적인 지원 속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를 하고자 하는 연구모임의 희망사항에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연구 모임이 이른바 ‘연구 업적 평가’와 연계되면서 그 순수성과 자발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대형 학회 등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와 관심사를 나누기 위해 구성된 연구모임이, 나중에는 업적 평가에 연계를 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등재지 선정에 매달리고, 업적을 위한 논문관리 장소로 활용하면서,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 정안기 연구교수는 “소규모 연구모임의 경우,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소장파들이 모였으므로, 이른바 권위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이 기탄없이 토론과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업적 평가 등에 연결되면, 아무래도 대학 내외의 공식적 인맥에 얽혀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연구 모임이 외부 지원에 너무 매달리게 되면 “자유롭고 의욕적인 학문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소규모 연구모임의 생명은 자율성과 독립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자체 예산도 없고,  열악하고 비효율적인 지원, 고질적인 공간 문제 등의 걸림돌 속에서, 업적 평가에 연계시켜 연구 모임을 ‘수단화’하려는 내재된 위험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연구모임은 여전히 ‘오늘 모임중’ 파란등을 켜고 있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