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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프랑스: 피에르 부르디외를 추모하는 현지 풍경
[해외통신] 프랑스: 피에르 부르디외를 추모하는 현지 풍경
  • 홍서연 / 프랑스 통신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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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4:38:44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투쟁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1월 23일 저녁 파리의 생트 앙트와느 병원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생전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언론’에 대해 비판을 서슴지 않던 그의 죽음 앞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언론들은 일제히 특집 기사와 특집 방송을 연달아 내보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각 정당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프랑스-문화 라디오 방송국은 1주일 동안 거의 6시간에 걸쳐 지난 10년간의 부르디외와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한편 부르디외가 ‘공개하지 말라’고 표기해 놓은 미공개 원고를 지면에 실은 ‘누벨 옵제르바퇴르’ 誌에 대해 부르디외의 가족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르디외의 진면모를 드러내 주는 것은 그와 지적 작업 혹은 정치적 활동을 함께 한 동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너그러운 지성의 유연한 투쟁

“그는 많은 것을 나눈 아주 오랜 친구였다. 우리의 우정은 언제나 강하고 풍부하고 긴장돼 있었으며, 때로는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 그는 모든 사회적 활동의 場을 설명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고, 그 장에는 그 자신의 지적 장을 포함한 지식의 장이 포함돼 있었다. … 우리가 같은 몸짓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대상에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은 달랐지만, 나는 적어도 그를 이끈 것에 대해서는 나 자신 상당히 가깝게 느꼈다. 나는 바꿀 수 없는 하나의 증인과 한 명의 친구를 잃었다.”(쟈크 데리다, 철학자)

“그는 71세였지만 매우 젊었고 놀랄 만큼 생기가 있었다. 병원의 침대에서도 그는 끝까지 동료 연구자들의 작업을 교정했다.”(파트릭 샹파뉴, 사회학자)

“그의 업적이 부분적으로는 전통의 되살림이라는 점에서 부르디외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결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인물의 두드러짐을 넘어서서, 그는 사회학의 전통을 종합하고 전달하는 작업을 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중요하고 논의할 만한 저작과, 교조적인 추종자 집단에 의해 유지된 최근 몇 년간의 선동가적 공간을 절대적으로 구별해야 한다. 그의 주위에는 정치적 당파와 같이 기능하는 추종자들의 작은 집단의 공간이 있었다. … 내 생각에 가장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의 실증적 강조점을 가진 체계의 경화이다. 그 때부터가 내가 그로부터 멀어진 때이다. … 특히 매체에 관한 것은 사회학이 아니라 선동이었다.”(뤽 볼탕스키, 사회학자)

한편 2000년 맥 도널드 해체 운동에 관련된 소송에서 부르디외를 만났던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이틀 동안 토론에 참석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명으로 거기 있었다. 우리를 결합시킨 것은, 이론적 담론의 한 편과 전투적 행동의 다른 편으로 세계를 분할하지 않으려는 의지이다. 그에게는 삶 자체가 참여였다.”(조제 보베, 농민연맹장)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 단체인 아탁(Attac)은 부르디외에게서 그 기본 성찰을 얻은 대표적인 단체이다. “나는 무너졌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최근 몇 십 년간의 사상에 역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론적 접근과 사회적 실천을 연결할 줄 알았다. 그는 사실, 지식인들과 사회 운동이 몇 년 동안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기간 이후 그 관계를 재개시킨 장본인이다. 1997∼1998년 실업자들의 운동에서 보여주었듯이, 투쟁을 지원하는 그의 능력은 명백하다. 그는 이미 1993년부터 ‘실업에 대항하여 함께 행동하자’ 라는 호소문에 서명했었다.”(크리스토프 아기통, 아탁 발기인)

그러나 부르디외의 참여 정신은 그의 동료들에게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사회학의 경계를 초월한 만큼, 그는 학구적인 순응주의의 인간이 아니었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그는 모두와 각자에게 정치적 참여와 지적 참여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위대한 학적 야심을 가진 정신에 속해 있었다. … 나는 아직도 이 지성의 너그러움과 투쟁의 책임을 맡는 유연함에 감탄한다.”(하버마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죽음(1980)과 푸코의 죽음(1984) 이후 부르디외는 그의 지적 작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활동으로서, 활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됐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의 사후 이러한 실천적 면모는 볼테르, 졸라,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오랜 프랑스의 지식인 전통의 맥락 안에 있는 것으로 말해진다. 그가 지식인 사회에서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비판적 합리주의의 무기를 놓지 않으면서 反세계화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1995년 12월의 대파업 이후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당을 만들 것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좌익 중의 좌익’, 즉 사회주의당의 중재된 타협을 거부하는 좌익으로서 행동했다. 사회운동가인 아니 푸르가 회상하듯이, “부르디외는 자율적인 실천을 한 90년대의 모든 새로운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정치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조류의 출현을 믿었다. … 부르디외는 만남을 믿었다. 그는 사회학자, 민족학자, 연구자, 경제학자, 조합활동가, 단체의 대표자 등을 운동에 참여하게 하고 싶어했다. 그는 시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총괄하는 통합에 성공하기를 원했다. … 부르디외는 운동이 자아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그의 독창성을 형성한다. 그는, 영미에서와 같이 로비활동에 기초를 두지 않는 참된 反권력을 조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어떠한 매개도 없이 사회에 곧바로 말을 걸기 위해, 대중 공간에 직접 발을 딛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으며, 자기 지도하에 있는 연구자들이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활동에 뛰어들기를 원했다. 이상적으로는, 부르디외는 모든 지식인이 활동가가 되기를 원했고, 모든 활동가가 지식인이 되기를 원했다. 몇몇 독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는 비관주의에 반대했다. 사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인 그람시의 다음과 같은 문구에 상당히 밀착돼 있었다. ‘지성의 비관주의를 행동의 낙관주의에 결합한다.’”

상징적 자본의 불평등 문제 삼아

부르디외의 이러한 실천적 면모는, 그의 인간적이고 너그러운 면모와 함께, 그의 사후 그에게 경의를 표한 모든 이들의 말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정치적 당에 속해있었던 것도 아니고, 운동단체의 지도자도 아니었던 그가 사회학을 통해 어떻게 그의 방식으로 투쟁했는지를, 우리는 부르디외를 주인공으로 한 피에르 카를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회학은 전투의 스포츠이다’(2001)에서 볼 수 있다. 그가 강의실 자체를 어떻게 전투지로 만들었는지를, 그리고 파리 외곽 ‘문제지역’ 거주 청년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경청하는지를.

부르디외의 동료였던 철학자 자크 부브레스의 말은 부르디외가 자신의 학문 자체를 전투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부브레스에 따르면 부르디외는, 모든 종류의 분배에서 가장 불평등한 것은 상징적 자본, 즉 사회적 중요성과 삶의 이유의 분배라고 보았고,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즉 지식인 사회에도 역시 그와 같이 불평등한 분배가 있다는 말이 된다. 인간들 간에 불평등이 있음으로 인해 지배뿐 아니라 압제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파스칼의 생각에 부르디외는 동의했다. 그는 실제적 지식의 질서와 오늘날 우리가 ‘정보’라고 부르는 것의 질서를 구분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 둘을 혼동하는 데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싸우는 데에 그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쏟았다. 언론에 대한 그의 공격이 이런 맥락에 있었지만, 그것은 또한 그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역할, 즉 지식의 소유자로서의 역할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식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정당하다고는 한 번도 정말로 느낀 적 없다”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지식인으로서 다르게 사는 것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성공했다. 전투하는 학자로서 사는 법. 이 거장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바로 그것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홍서연 / 프랑스 통신원·파리 4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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