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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용 예산 편성 … 가시적 성과 만들기 집착”
“눈속임용 예산 편성 … 가시적 성과 만들기 집착”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8.11.03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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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정부 R&D예산(안) 12조원 들여다보니

정부가 내년도 R&D예산을 12조2천731억 원으로 책정했다. 정부 R&D예산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한 올해(11조1천억 원)보다 10.8% 증액된 액수다.
지난달 2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제18회 과총포럼에서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안)과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지식경제부(3조9천억 원)와 교육과학기술부(3조8천억 원)에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된 가운데 방위사업청(1조6천억 원), 국토해양부(5천4백억 원), 중소기업청(4천9백억 원)이 그 뒤를 따랐다.


지경부는 로봇, 그린카 등 융합신산업(2천4백억 원)과 신재생 에너지 개발(2천2백억 원) 등 신성장동력사업 분야에서 원천기술 확보에 1조6천억 원을, 교과부는 개인연구 지원(5천억 원),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944억 원) 등 기초개발 부문에서 1조2천억 원을 책정하는 등 기초과학 육성과 신성장 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방위사업청이나 국토해양부 등도 기술혁신과 첨단산업기술개발 사업에 예산편성을 집중했다. 반면 민간부문에 기술역량이 성숙돼 있다는 판단아래 정보·전자, 기계·제조공정 분야에서는 투자 비중을 축소했다. 정부 R&D 예산에서 차지하는 기초연구와 원천연구의 투자비중은 올해 25%수준에서 2012년에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기초연구를 강조하는 동시에 원천기술에서 연구개발투자를 집중하려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계획은 입안도 되기 전에 잡음이 일면서, 예산수치는 늘었지만 연구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2008년도 국정감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질의에서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원천이라는 불확실한 개념을 악용해 기초원천연구에 응용·개발 분야를 포함시키거나 기초연구의 범주를 늘려 갑자기 예산이 증액되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눈속임용 예산편성이 일어나고 있다”며 기초과학 투자에 대한 정부의 의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내년도 R&D사업 평가주기를 자체평가의 경우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기관평가는 경영성과 1년, 연구성과 3년으로 개편(안)하는 등 평가주기를 상향조정했지만 평가기준의 획일성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즉 SCI급 논문을 강조하는 획일적인 평가 잣대의 개선 없이 단지 연구개발투자를 늘려 소기의 연구 성과를 거두려는 점에서 지난 정부의 조급증을 반복한다는 여론이 만만찮다. 윤기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과)는 “학술논문(SCI)은 엄연히 기초학문연구 분야의 성격에 가깝고, 원천기술은 응용개발 분야인데 SCI평가로 원천기술을 일구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부의 정책을 질타한다.

정부 R&D예산을 둘러싸고 열악한 연구풍토에서 비롯된 현안들도 즐비하다. 연구역량이 수도권에 집중됨에 따라 연구인력 조차 외국 유학생으로 대체하는 지방대는 사정이 더욱 절박하다. 김상무 강릉대 교수(해양생명공학부)는 “지방에 전략산업 평가가 강화되면서 지자체별 산업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열만 매기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연구의 성패는 연구자 자신도 모른다’는 말은 정책입안자들에게 장기적인 안목을 주문하는 연구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다. 지난 정부가 R&D투자를 두고 단기성과에 집착하면서 연구자와 정책당국간에 ‘가시적인 성과 만들기’로 일관해 온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오죽하면 연구자들 사이에 “국책연구의 성과는 어떻게 항상 100%일 수 있나”라는 우스갯소리를 만들어냈을까.

문대철 호서대 교수(정보통신공학과)는 “대학에서는 이론을 뒷받침 하는 연구를 하고, 기업에서는 응용분야 연구를 맡아 ‘산학’이 제 위치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연구 분야별 차이성을 전제로 평가 제도를 다양화하고, 연구비의 안정적 수급으로 장기적인 연구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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