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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영어교육 解法 찾기
[學而思] 영어교육 解法 찾기
  • 변종민 제주대·영어교육학
  • 승인 2008.10.2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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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 영어교육과에서 미래의 영어교사를 양성하며 지난 27년을 지내다보니 영어에 얽힌 에피소드가 심심찮게 많다. 그 중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노교수님의 경험담이 문득 떠오른다. 평생을 영어학 연구에 몰두하신 그 분이 50대 초반에 처음으로 1년간 객원교수로 미국엘 갔는데 한국에선 그리 잘 통하던 영어가 보스턴에 내리자 불통이 돼 당신이 하는 영어를 미국인들이 도통 알아듣질 못하더란다. 발음이 문제라고 여긴 그분은 고민 끝에 아파트 주소를 비롯해 중요한 신상정보를 타자로 쳐서 지갑에 보관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보여줌으로써 궁색한대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20년 전만 해도 영어교육과 입학생 중 발음이 괜찮다 싶은 학생은 손가락으로 한둘 꼽을 정도였으니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도아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반대로 발음이 시원찮은 학생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특히 과거에 비해 영어 듣기능력이 월등히 좋아졌고, 그에 상응해 대학에 들어온 이후 말하기능력이 가파르게 향상됨을 확인할 수 있다.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다.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배우고 중·고등학에서 듣기-말하기 위주의 수업을 받은 영향이 크겠지만, 정보화 시대에 다양한 영어학습의 기회를 접할 수 있다는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영어교육과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만큼 교육환경과 질이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영어교육과 안에서나 가능한 현상이지 그 밖을 벗어나면 과거에 비해 별로 변한 게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학교에서 시늉만 낼뿐이고, 교사들의 전문성마저 결여돼 결국 학교 밖의 사교육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며, 학교에서는 여전히 문법과 번역 위주의 수업에 매달리고,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전공원서 강독에 필요한 읽기 수업은 하지 않고 주로 강사 위주의 듣기 수업만을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교 근처는 물론 주택가 골목마다 우후죽순영어학원이 생기고, 대학을 졸업하면 전공에 관계없이 누구나 학원에서 또는 과외 형태로 영어를 가르치는 게 보편화됐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영어 사교육 열풍이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에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사실상 한국 영어교육의 고질병을 치유하고자 과거 문법-번역 위주에서 의사소통 내지 구어영어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전환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영어교육 현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만 듣기-말하기 중심으로 바뀌었지 교사는 여전히 문법과 번역에 치중하고 학습자 아닌 교사 중심의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에 여러 학자들은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영어구사력 전반이 과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됐는지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보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기능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기대목표에 도달한 게 없다. 듣기능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됐지만 상대적으로 읽기능력은 턱없이 모자란다. 말하기와 쓰기는 아예 큰 기대를걸지 않는다. 우리의 영어교육환경에서는 표현기능(말하기, 쓰기)보다는 이해기능(듣기, 읽기)이, 이해기능 중에서도 읽기가 더 습득하기에 용이하다. 그런데 모든 영어교재가 듣기-말하기 중심으로 구성되다보니 중등 6년을 공부해도 읽는 양과 시간이 절대부족하다. 그러다보니 교사나 학생 모두가 여전히 번역위주의 읽기습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그 결과는 다른 영어기능에 그대로 영향을 미쳐 이른바 외국어학습의 큰 걸림돌인 모국어개입 현상을 유발한다.

이런 영어교육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 고려할 만한 것이 다독프로그램의 도입이다. 이 프로그램에서의 읽기는 번역이 아니라 학습자 개별로 읽기자료를 선정해 ‘영어를 영어로 읽고’, ‘읽음으로써 읽기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시작이 중요하지 생각보다 과정이 어렵지 않다.

우선 각 학교에 영어도서관을 개설해 다양한 수준과 내용의 읽기자료(Language Learner Literature)를 비치한 후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시작해보도록 권하고 싶다. 욕심 같아서는 현행 영어교과서는 참고서 정도로 활용하고 국가차원에서 100권 정도의 텍스트를 선정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읽기과제로 부여하고, 그 수준과 운영방식은 철저히 개별 학교와 교사의 자율에 맡기면 좋을 듯싶다.
영어로 100권의 도서를 읽히면 국어로는 최소한 200권은 읽힐 것 아닌가! Bookstrapping!

변종민 제주대·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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