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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초과학 ③ : 수학] 투자·경제논리에 밀린 학문의 ‘초석’
[위기의 기초과학 ③ : 수학] 투자·경제논리에 밀린 학문의 ‘초석’
  • 교수신문
  • 승인 200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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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9 10:39:59
요즈음 소위 첨단 과학기술분야라 하여 IT, BT, NT, ET 등이 자주 거론되고 있고, 정부에서도 앞으로 이러한 분야의 시설과 인력양성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尖端이란 말은 물체의 뾰족한 끝이란 뜻인데, 첨단분야가 첨단이 되게 하는 물체의 몸통이 바로 기초과학이다. 우리의 몸이 건강하려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필수 영양분을 고르게 섭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과학기술이 발전해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초학문분야가 건강하고 고루 발전해야 한다.

수학은 기초과학 중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으로서, 항상 첨단과학기술의 핵심적 이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수학의 첨단과학기술 분야와의 유기적 긴밀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IT혁명의 기본이 되는 정보보안기술이나, BT분야의 거대 유전자정보에 대한 처리, 여러 가지 파생금융상품의 개발 등에 있어서 수학의 역할은 단순한 수학의 응용이란 차원을 넘어서 수학의 분야들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수학의 점증되는 중요성을 인식해 선진국에서는 수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수학은 미래를 위한 학문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학의 중요성이 일반인들을 비롯해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담당자들이나 타 학문분야의 학자들, 심지어는 다른 기초과학분야의 학자들에게 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수학은 정부의 과학정책결정 단계에서 투자의 시급성과 경제논리에 밀려 소외되기 일쑤이고, 간혹 고려되더라도 수학자체의 학문적 특성이 무시된 일률적 정책에 의해 적은 액수의 투자나마 효과적인 집행이 되지 못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

수학은 학문의 특성상 대형 시설이나 고가의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다른 과학기술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도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이다. 실제로 투자 대비 성과의 경제논리로 따져도 어느 분야에 비해 높은 경제성을 갖고 있다. 단지 그 투자효과가 즉시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여 투자에서 제외시키거나 뒤로 미루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생각이라 하니 할 수 없다. 수학은 미래를 위한 학문이기 때문에 지금 개발한 이론이 당장 쓰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얼마든지 중요하게 쓰일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한 경우는 역사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가 1950년대 개발한 게임이론의 법칙은 90년대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쓰이게 되고, 이로써 수학자인 그는 199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투자와 발전의 모델로 일본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이 응용분야에 집중적 투자를 우선했기 때문에 지금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이 과연 일본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고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수학이 이미 1900년 대 초기에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 메달’의 일본인 수상자 수가 미국, 영국, 프랑스 다음의 세계 4위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수학에 대한 인식부족은 대학교육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수학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대학이 그 주된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운영자들의 수학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중요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에서 조차 근시안적 수요공급의 경제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의 수학과목 수강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는 수학교수 수의 감소로 이어져 급기야 몇몇 대학에서는 수학과의 폐쇄 등의 조치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골치 아픈 수학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만 잘 하면 된다는 그릇된 생각이 학생들의 사고의 저변에 깔려있는 듯하다.

홀대받는 수학교육의 중요성

수학은 그 자체가 다른 학문분야에 많이 응용되기 때문에 중요할 뿐 아니라, 고등교육에 필수적인 논리력이나 창의력 개발을 위해 가장 적합한 교과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학교육이 대학에서조차 등안시 된다면 그러한 교육을 받은 인물들을 첨단분야에서 아무리 많이 배출해봐야 이들의 창의성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이들이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첨단기술을 얼마나 개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즉 정부가 소위 4T로 일컬어지는 첨단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해서 그 성과가 꽃피워지려면, 그러한 투자가 의미 있게 될 수 있는 환경 조성부터 힘써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정권에서도 소위 첨단분야라 하여 G7 프로젝트라는 것을 지정해 집중 지원한 적이 있었다.

과연 그러한 투자가 그 계획을 입안한 사람들의 희망대로,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의 연구계획서에서의 주장대로 장미빛 결과가 얼마나 얻어졌는지, 아니면 관련분야 사람들의 한바탕 신나는 연구비 잔치로 끝났는지 알아보고, 이에 대한 분석과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을 고려해보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은 확실히 위기에 처해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라 생각 든다. 이를 위해 정부나 각 대학 운영자들의 수학에 대한 인식재고와 수학자들의 폐쇄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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