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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秋, ‘Pathetique’의 화음에 홀리다
불타는 秋, ‘Pathetique’의 화음에 홀리다
  • 김용환 대전 예술의전당 관장·음악학
  • 승인 2008.10.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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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예술의 전당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1.12~13) 연주회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St. Petersburg Philharmonic Orchestra)의 來韓 공연이 11월 12일~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다. 이 공연이 특별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그 특장을 인정받는 지휘자 유미 테미르카노프가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만이 가지는 독특한 색깔과 소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악단은 어떠한 특징을 지닌 악단일까.
지휘자 유미 테미르카노프는 어떤 인물일까.

러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은 1882년 창단됐다. 러시아의 황실 소속 관현악단으로 출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러시아 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면서 러시아 민족음악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는 글린카, 19세기 후반기의 대표적 국민악파, ‘러시아 5인조’ 중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는 무소르그스키, 그 외 차이콥스키, 글라주노프처럼 러시아가 배출한 역사적 거장들이 바로 이 도시 출신들이다.

출처 : 예술의 전당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은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했고, 그 연혁을 일별하면 마치 서양음악사의 단편을 보는 것과 같은 비중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즉 차이콥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쇼스타코비치 등과 같은 대 작곡가들이 이 악단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고, 베를리오즈, 리스트, 슈만, 니키쉬, 바그너, 말러, 리햐르트 슈트라우스, 바르톡, 오네거, 카젤라, 힌데미트 같은 유럽의 저명 작곡가들이 지휘자로서 혹은 협연자로서 이들과 함께 활동했다.

1917년에 발발한 러시아 혁명으로 이 악단은 황실소속 자격을 자동으로 상실하고, 이후 소비에트정권 치하인 1920년에는 ‘페트로그라드 국립 필하모니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교향악단’으로, 그리고 1924년에 페트로그라드가 레닌그라드로 개칭되면서 악단의 명칭도 ‘레닌그라드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개칭된다. 지금의 명칭은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레닌그라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개칭되면서 확정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을 거쳐 간 지휘자에는 에밀 쿠퍼, 알렉산더 글라주노프,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와 같은 인물을 비롯 해외 출신의 오스카 프리드, 프리츠 슈티드리, 오토 클렘페러, 에릭 클라이버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악단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현격한 공을 세운 인물로는 단연코 두 사람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즉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마에스트로 중 한사람으로서 55년(1933~88년)동안 이 악단을 이끈 므라빈스키와 그 뒤를 이어 1988년부터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는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바로 그들이다.

므라빈스키는 엄격하고 꼼꼼한 리허설 방식과 효과적인 지도력으로 악단의 연주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 했다. 2년 전인 2006년에 이 악단의 來韓 공연에 즈음해 한 월간지에 인용된 내용을 들여다보자. “므라빈스키는 55년 이상동안 아카데믹하고 이상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했습니다.

다이내믹과 정확성 그리고 일사불란한 앙상블을 요구했지요. 저의 6년간의 경험으로는 므라빈스키의 리허설은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한 맹훈련을 통해서 ‘레닌그라드 피아노’라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약음과 단원들이 그 뉘앙스 안에서 믿기지 않는 다이내믹을 실현하게 됐죠.”
므라빈스키의 후임자인 테미르카노프는 단원들에 의해 직접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고 지휘봉을 쓰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테미르카노프는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습과 연주 활동을 하고 있고, 연주곡을 연습할 때는 먼저 단원들과 함께 작품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을 우선으로 한다. 그것이 바로 연습의 시작이며 연주의 기초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힐 만큼 단원들과의 호흡과 앙상블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마에스트로이다.최초의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은 ‘Academic & Honoured Orchestra of Russia’의 지위를 인정받은 첫 교향악단이고, 종전이후 해외 여행이 허가되면서 1946년에 외국으로 연주여행을 간 러시아 첫 교향악단이기도 하다. 이후 최근까지 잘츠부르크, 빈, 런던과 같은 주요 음악도시는 물론이고 해외의 저명 음악제에서 그 기량을 과시했고,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의 자국의 작곡가들 외에 베토벤, 브루크너, 힌데미트와 같은 서구 작곡가들의 작품의 방대한 녹음을 남겼다.

하지만 이 악단을 여타 해외 저명 오케스트라에 비해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비롯한 러시아 음악 연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라는 평가이다.
여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레닌그라드 피아노’와 함께 이 악단을 대변하는 또 다른 고유명사인 ‘레닌그라드 편성’, 즉 저현악기를 무대 왼쪽으로 향하게 하고 금관악기를 오른쪽으로 바짝 붙인 독특한 편성에서 비롯되는 ‘두텁고 진중하며 웅장한 느낌의 사운드’가 일조하고 있다.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이러한 악단의 특장을 십분 발휘하려는 듯 모든 프로그램을 러시아의 대 작곡가 차이콥스키 작품으로만 꾸미고 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연주회 프로그램의 대부분도 음악애호가들에게 친숙한 것들이며, 차이콥스키의 창작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인 1870년에 작곡된 걸작들이 포함돼 있다. 즉 「피아노 협주곡 제1번」(1874-75),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로코코 풍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1876),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1877~78) 중 ‘폴로네이즈’가 바로 그러하다. 여기에 셰익스피어에 의한 환상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1869), 1812년에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수도인 모스크바를 공격했으나, 러시아군과 추위 및 기아로 인해 완전히 패퇴한다는 내용을 묘사한 서곡 「1812년」(1880),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중에서 대중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교향곡 6번」(1893)이 더해진다.

첫날 공연에서는 「피아노협주곡 1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곡을 완성한 후 자신의 작곡 스승이자 당대 저명 피아니스트로도 명성이 높았던 안톤 루빈슈타인에게 헌정했으나, ‘연주 불가능’이라는 혹평을 받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곡은 곧 바로 한스 폰 뷔로우에 의해 미국에서 성공적인 초연이 이루어졌고, 이후 피아니스트들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 됐다.

양식사적으로는 ‘교향악적 협주곡’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라는 중요성을 가진다. 교향곡과 같은 각 악기(군)들의 악곡적 짜임새, 음향적 거대함과 폭발력 등에서 비롯된 장르사적 표현이다. 1.3악장에서의 우크라이나 민요 차용 또한 인상적이다. 

둘째 날의 프로그램 중에서는 「교향곡 제6번」에 우선 눈길이 간다. 이 곡은 일명 「비창(Pathetiqu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6일전 자신의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과 함께 초연한 곡으로, 이 악단과 깊은 인연이 있다. 또한 작곡가 스스로 이 곡을 ‘최절정의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비창’이라는 표제는 어느 특정 사건이나 개인의 감정을 묘사한 것이 아니고 인간 일반이 가지고 있는 비창과 연관된 정서, 즉 인생의 공포, 절망, 패배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걸맞게 곡의 피날레는 빠르고 활달한 악상 대신에 느린 템포(Adagiolamentoso)에서 진행되며. 지극히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주면서 절망과 체념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1악장 발전부에서의 러시아 장례식 합창곡의 인용, 2악장이 러시아 민요 특유의 5/4박자로 일관하는 왈츠로 된 점, 3악장은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면서 성격적으로는 스케르초와 행진곡의 혼합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특징적이다.   

 


음악공연은 흔히 ‘경험재’라고 말한다. 경험해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나아가 즐기게 되는 분야라는 얘기다. 덧붙인다면, 사전에 약간의 수고를 더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는 것이다. 해당 작품의 작곡가는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보고, 가능하다면 여러 연주자들의 음반을 비교하며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공연 당일에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공연장에 가서 프로그램 노트를 미리 정독한 뒤 공연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김용환 대전 예술의전당 관장·음악학

독일 마르부르크대 음악학 박사. 『서양음악사-19세기』등의 저서와, 「낭만주의의 주요 모티브와 심볼」등의 논문이 있다. 한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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