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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은 인간 고유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도덕성은 인간 고유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 김성동 호서대·철학
  • 승인 2008.10.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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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는 진화론적 기원을 갖고 있는가

포획된 類人猿들의 사회에서 제휴와 억제라는 행위가 관찰됐다. 강자의 독재에 약자들이 연합해서 항거하고 있었다

 

윤리를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악설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윤리는 악한 생물학적 본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창조한 고유한 현상이라 할 수 있고, 성선설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선한 생물학적 본성의 인간적인 발현으로서, 발현의 고유성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존재들과 공유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성악설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 윤리의 기원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본성에 반해 선한 삶의 방식인 윤리를 창조할 수 있었는가를 답해야 한다. 윤리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했던 서양의 프로타고라스나 동양의 순자는 초인간적인 존재들인 제우스나 성인을 가정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존재들을 가정할 수 없는 오늘날 윤리의 기원은 성선설적인 입장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경향은 아니다. 19세기에 『진화와 윤리』의 문제를 다루었던 토마스 헉슬리는 인간본성이 더럽고 비정한 자연세계의 산물이기에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믿었으며, 도덕성은 진화과정에서 발생된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경향들을 조절하고 극복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고안된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근래에 『이기적 유전자』로 명성을 얻은 리처드 도킨스 또한 인간은 이기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에게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쳐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헉슬리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진화론을 옹호하는 연구자들이라고해서 모두가 윤리가 진화론적 기원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진화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유인원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까지 윤리가 진화론적인 기원을 갖는다고 결코 확신할 수 없었다. 심지어 20세기의 획기적인 유인원 연구자인 제인 구달조차도 침팬지 사회에 질서는 있지만, 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 말해서 윤리규범과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 세기에 진행된 많은 연구들은 유인원의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상당히 개선시켰다. 우리는 이제 유인원의 삶에 윤리규범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것들이 우리의 윤리규범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어떤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주장의 대표자들 중의 한 사람은 심리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이자 비교 행동학자이자 『침팬지 폴리틱스』의 저자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유인원들의 삶을 체계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도덕성의 요소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유인원들의 삶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이 그러한 요소들로 지적하고 있는 것들은, 베푼 것을 돌려주는 호혜성, 이러한 호혜성의 대표적인 예인 음식의 공유, 갈등이 있을 때 당사자들 간의 화해, 갈등에서 상처를 입은 자에 대한 위로, 가열되고 있는 갈등에 개입해 진정시키기, 이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갈등의 당사자들을 화해시키는 거중조정 등이다.

그들의 관찰에 따르면 유인원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개체들 간의 유대를 촉진시키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심해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하지만 유인원들이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유인원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다른 개체의 필요와 정서를 이해하는 감정이입이나 공감,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반응하는 공동체적 관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드 발과 그의 동료들은 주장한다. 

드 발과 더불어 윤리의 진화론적 기원을 주장하는 다른 대표적인 연구자는 문화인류학자이자 영장류학자로 『숲의 위계질서: 평등주의 행위의 진화』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보엠(Christopher Boehm)이다. 그는 윤리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인 측면인 사회윤리를 주목했다. 그는 다른 개체들과 제휴해 원하지 않는 개별적인 행동들을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인간 도덕성의 기초라고 파악했다. 일탈자들이 사회적인 환경을 교란시키면 모든 사람이 이익을 취하는 유용한 협동망이 심각하게 손상돼 구성원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는 것이 도덕성의 목표라고 보았다.

보엠은 이러한 인간의 도덕성이 물론 언어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적이라고 불릴 만큼 발달했을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특히 포획된 유인원들의 사회에서 제휴와 억제라는 이러한 행위가 관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유인원들은 강자의 독재에 대해 약자들의 연합적인 항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덕적 공동체가 단계적으로 성립됐으며, 인간의 도덕성은 인간을 다른 모든 종족들과 구별시키는 발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의 논의를 아주 단순화시킨다면, 알파 수컷이 암컷을 독점하는 것이 유인원의 생물학적 본능이라고 할 때, 하위의 수컷들이 제휴를 형성해 알파 수컷을 제거하고, 독재자가 독점할 암컷들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자신의 재생산에 성공하게 된 것이 인간의 도덕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특성의 단초를 암컷들의 제휴를 통해 알파 수컷을 제어하는 동물원에서 발견했으며, 이것의 언어화된 형태가 구석기적인 수렵채취생활을 이어가는 모든 부족에게서 발견되는 평등주의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 생물철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소버(Elliott Sober)와 진화생물학자인 윌슨(David Sloan Wilson, 사회생물학을 제창한 Edward Osborne Wilson과는 다른 인물)은 자신들의 공저인 『타자에 대해』에서 인간 윤리의 기원을 집단선택에서 찾았다. 이러한 입장은 일찍이 다윈이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전사들의 이타적인 행위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채택했다. 이러한 특성들은 개체선택의 수준에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집단선택의 수준에서만, 즉 집단의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기 때문에 집단 간의 적자선택이라는 원리에 의해서만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생명의 주체라는 생각이 도입되면서 이러한 집단선택은 그 효용을 상실하게 됐다. 집단선택의 정체는 이타적인 선택이 아니라 친족선택이라는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이해됐다. 즉 비록 자신의 유전자를 직접 전하지는 못하지만 친족을 통해 유전자를 전달하는 타산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진화론적 게임이론을 통해 강화됐다.

하지만 소버와 윌슨은 바로 그러한 진화론적 게임이론이 집단선택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액설로드가 수행한 유명한 진화론적 게임이론에서 라퍼포드가 제안한 팃포탯이라는 상호성 전술의 우월성이 드러났다. 소버와 윌슨은 ‘친족선택은 일종의 집단선택이기는 하지만, 친족선택이 아닌 집단선택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단일선택이론은 타당하지 못하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다층선택이론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윤리의 진화론적 기원은 바로 이러한 집단선택이며, 이는 인간에게 고유한 문화적 규범들에 의해 또한 강화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서 보면 윤리는 유인원과 수렵채취인들에 대한 조사연구나 게임이론을 통해서 볼 때, 비록 인간 고유의 어떤 특성들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게만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아닌 다른 생물들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들도 또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윤리는 진화론적 기원을 갖는 것이며, 인간 고유의 발명품이라는 이해는 이제 그 타당성을 상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리의 진화론적 기원을 따지는 문제가 생물세계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시적이고 신비주의적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과학적 연구, 특히 복잡 시스템들에 대한 새로운 과학에 의해 새로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형이상학에 따른다면, 윤리의 진화론적 기원은 생물세계를 넘어서 물질세계에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에리히 얀치는 일찍이 『자기조직하는 우주: 새로운 진화 패러다임의 과학적 근거와 인간적 함축』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전개했다. 최근에 이러한 입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진화는 환경에의 생물학적 적합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의 자발적인 창발성 또한 의미한다. 하지만 윤리의 다윈적 진화와 비교하면 이러한 떼이야르적 진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김성동 호서대·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주요 저서에는 『인간과 현대적 삶』이, 논문으로는 「윤리의 기원에 관한 한 연구」등이 있다. 옮긴 책에는 『윤리의 진화론적 기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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