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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속의 인간소외와 고독 응시한 투명한 감수성
문명 속의 인간소외와 고독 응시한 투명한 감수성
  • 교수신문
  • 승인 2008.10.1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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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끌레지오의 작품세계

장 마리 귀스타브 르 끌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변의 아름다운 도시 니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니스의 태양과 바다는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니스대학과 엑상 프로방스대에서 앙리 미쇼와 로트레아몽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대신 방콕의 불교대학에서 2년 동안 프랑스 문학을 강의한 바 있고 최근에는 뉴 멕시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대부분의 생활을 여행과 집필에 바치고 있으며, 프랑스 현대문학의 ‘살아있는 신화’라는 평을 얻고 있다. 23살에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조서(Le Proces-Verbal)』로 르노도 상을 수상하게 돼 프랑스 문단에 ‘젊은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 후 『열병』 ,『홍수』, 『물질적 환희』, 『사막』,『 황금 물고기』, 『우연』등 문제작들을 발표해 현대 프랑스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는 대중과의 접촉이나 언론매체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신비에 싸인 비밀스런작가다. 대중적인 인기에는 무관심한채 여행과 은둔 속에서 자기 완성의 길을 찾고자 하는 작가이다.

첫 작품 발표 당시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장에게 밝힌 바와 같이 르 끌레지오는 전통소설의 기법을 표방하지 않음과 또 1950년대부터 새로운 문학과 예술 기법으로 등장한 누보로망(Nouveau Roman)과도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며 그의 독자적인 창작입장을 밝혔다. 그의 문체는 알랭 조프로와의 ‘카메라-펜’이라는 평처럼 객관적인 서술을 중시하며, 거울에 비치는 세계의 이미지들을 그대로 단순하고 투명하며 시적인 언어로 육화한다.

“나는 만들어 내지 않는다. 나는 옮겨 쓸 뿐이다.” 그의 소설에는 다양한 소설기법들이 등장한다. 누보로망에서 흔히 사용되는 반복법, 예언적 돈호, 상징과 은유, 꼴라주 기법, 기사와 시진의 이용, 연극과 영화기법, 문장 지우기 등의 방법으로 사물을 진실에 가까운 근본적인 의미표현에 접근하려 한다. 
르 끌레지오의 작품은 문명 속의 인간소외와 고독을 주제로 한다. 첫 작품에서부터 1980년의 사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을 통해 현대문명의 거대한 폭력에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을 고뇌에 찬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첫 작품들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마련된 기나긴 조서이다.

23살에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조서』에 나타난 주제들은 다음에 올 그의 소설들의 원형이 된다. 이 소설은 ‘군대에서 탈영했는지 또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모르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아담 폴로는 전통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의 취향에는  맞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까뮈의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무정형의 무기력한 인물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일상적인 평범한 이야기들로 이뤄져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지중해의 어느 도시의 언덕 위의 빈집에서 혼자 햇빛을 즐기며 ‘괴물 같은 고독’ 속에 갇혀 산다. 유일한 여자 친구인 미셸 만이 가끔 그를 만나러 올뿐이다. 아담은 그녀와의 첫 포옹의 기억과 비 오는 날 나무 아래서 그녀에게 행한 성폭행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가끔 그는 시내로 내려가 담배와 먹을 것을 사기도 하며 동물원에 들리거나 개를 쫓기도 한다, 걷는 동안 그는 세계가 끊임없이 들끓고 소요하며 소음을 내는 것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그에게 낯설음을 주었고 그가 참여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는 무대 앞의 관객처럼 세계를 바라보고 그의 見者(Voyant)의 시선은 인간과 사물들이 서로 부딪치며 뒤엉켜진 혼돈의 세계를 투시한다. 그 세계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린다.

언덕 위 빈집에서 그는 삶과 죽음의 이중의 공포 속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마침내 광기는 아담 폴로에게 최후의 도피처가 된다.
경찰은 광장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외치는 그를 붙잡아 정신병원에 수용한다.

정신병동의 네 개의 벽, 소독된 방에 수용된 그는 드디어 그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휴식과 평화 속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을 되찾게 된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랑스러운 여자와 산책하는 꿈과 환상들로 수놓인 자신만의 세계에 영원히 갇히게 된 그가 떠올리는 단어들 ‘어머니’, ‘가슴’, ‘배’, ‘구멍’, ‘조개껍질’, ‘바다’등의 이미지들은 모성적 공간의 다른 이름들이다. 르 끌레지오의 주인공들은 전통소설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들은 누보로망의 주인공들처럼 익명으로 존재하며 그들의 공간 역시 익명이다. 그의 소설은 각각 독립된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 속의 여러 이름을 가진 여러 개의 목소리로 구성된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이 문명사회의 한 모퉁이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세계를 떠돌다 도시의 혼돈 속에 소리 없이 소멸해 버리는 존재들이다. 다만 그들의 시선과 감수성이 읽어냈던 현대 문명 속의 비극적인 인간의 조건과 상황의 서술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르 끌레지오의 작품들은 두 시기로 구분된다. 첫 시기는 첫 작품 『조서』부터 1980년 『사막』에 이르기까지 그가 고른 숨결로 발표한 작품들로 이뤄져있으며 일관된 흐름을 안고 있다.
작가는 이 시기의 작품을 통해 현대문명이 인간에게 행사하는 거대한 폭력의 세계와 그 세계에 던져진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로서 이중의 역할을 안은 현대인의 초상을 통해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서를 작성하고 있다.

한편, 르 끌레지오는 현대의 상업주의와 물질문명이 인간에게 가하는 소리 없는 그러나 숨겨진 거대한 폭력과 그런 상황이 만들어내는 고독한 현대인의 운명을 그렸다.
문명 속의 인간의 비극적 상황을 고뇌에 찬 시선으로 그린 르 끌레지오의 작품세계는 1980년 발표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쓴 소설’ 『사막 』을 기점으로 제2의 전환기를 마련한다. 푸른 두건의 남자들의 광활한 대지인 사막에서 태어난 랄라는 고향을 등지고 문명세계인 프랑스로 건너온다.
그녀는 많은 경험을 하게되고 마침내는 사진 기자의 눈에 들어 유명한 모델이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주었던 문명세계는 그녀가 진정한 삶을 누릴 만한 세계가 아니었다. 사막의 딸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바닷가의 무화과나무 아래 그녀의 첫 사랑이었던 목동의 아이를 낳는다.
이 소설 이후 르 끌레지오 자신도 인간의 잃어버린 실락원의 꿈을 찾아 문명세계를 뒤로한다. 현대인들이 오랫동안 잊어왔고, 잃어버렸던 공간의 빛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찾아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끝없이 수많은 여행을 한다. 마침내 시인의 혼은 긴 여정 끝에 남미의 인디언들에게서 경이로운 침묵의 언어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발견한다. 지금까지의 작가의 서사적인 세계는 서정성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제 어린아이, 떠돌이 방랑자이며 도시적 공간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간인 자연과 바다가 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의 이미지는 그의 모든 시적 영감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어린아이는 빛 아름다움 순수 투명한 새벽 그 자체이며 신의 모습의 재현이다. 어린아이는 복잡한 비밀로 얽힌 세계의 문을 아무런 장애 없이 열며, 세계와 직접적이고 완전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이며 하늘과 땅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자연과 어린 시절에의 귀환은 황금시대의 아름다움과 순수함과 자유에의 복귀를 의미한다. 어린아이의 무소유, 인디언들의 침묵의 언어, 자연, 이것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가치의 힘과 단순한 삶의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

르 끌레지오는 무소유의 기쁨과 방랑자의 자유로운 영혼을 통해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과 자연 속에 인간과 태양과 동물들이 한 리듬으로 어우르며 사는 단순한 삶의 기쁨, 자연에의 귀의를 권유하며 우리들에게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인 자연, 녹색 낙원으로의 귀환을 재촉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이루고자 하는 지상에서의 자유롭고 행복한 진정한 삶의 약속이다. “지상의 삶은 그 어떤 꿈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다(La vie terrestre est plus surprenante que n’importe quel reve).”

정혜숙 전남대·불문학

필자는 프랑스 니스대에서 르 끌레지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프랑스 현대작가 작품론』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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